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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그래요"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한 달여 전부터 오른쪽 윗니가 심상치 않더니 급기야 음식을 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주변 사람들이 발치를 할 것이고 종내는 임플란트를 해 박아야 할 거라면서 혀들을 찼다. 겁쟁이인 나는 두려움과 공포로 잠을 자지 못했다. 며칠 동안 왼쪽으로만 음식을 먹고 버티니 왼쪽 치아의 피로도까지 매우 심했다.


어머니가 다니시는 치과에 예약을 하고 찾아가는 길은 얄팍한 친분에 기대 아쉬운 부탁을 하러 가는 것처럼 괴로웠다. 그 무엇이든 가지 않아도 되는 명분을 찾고 싶었지만 야속하게도 치과엔 너무 쉽고 빠르게 도착했다. 몇 가지 조사와 스케일링, 잇몸 치료를 거쳐 나는 결국 이를 빼야 했다. 의사는 한껏 긴장을 해 딱딱하게 굳은 나 때문에 치료에 애를 먹었고 치료 후 반쯤 정신이 나간 채 집으로 돌아온 나는 몸살이 났다. 바야흐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긴 치료의 서막이 오른 것이다. ㅠㅠㅠㅠㅠㅠ


무서운 치과 도구들

부모님 덕으로 건강한 이를 갖고 태어난 나는 32개의 치아를 충치 하나 없이 보존했다. 32개의 치아가 온전한 모습으로 건재한 사람을 오랜만에 본다고 의사는 말했다. 그런데 그런 이가 왜 갑자기 망가져 뺄 수밖에 없었을까.


"나이 먹어 그래요"

"???? 네????"

"이제 여기저기 고장 나는 연세예요. 그래도 충치 하나 없이 훌륭하시네요.

다만 연세드셔서 오래 사용하다보니 잇몸질환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뿌리가 상해 흔들리는 거예요

옆 치아에 영향을 주기 전에 빼버려야 합니다. 어금니가 없으면 사랑니도 필요없으니 함께 빼시죠, 뭐."


'나이 먹다', '고장 나다', '연세'라는 단어들이 이토록 비현실적일 수 있을까. TV 드라마의 잘생긴 주인공이 '나이란 책임져야 할 양'이라고 그 얼굴만큼 멋지게 대사를 던지더구만, 이제 나에게도 '책임져야 할 양'이 서서히 나타날 모양이다. 문제는 이것이 시작이란 거고 내 나이는 잘생긴 드라마의 남자 배우처럼 멋진 대사를 품고 있진 않다는 거다.


젊은 외모가 변해 주름이 생기고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해가는 것 같은 늙음에 대해 나는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자신감이 아닌 타고난 무심함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에 집중할 여유 없이 살아가느라 바빴다. 학생들과 한 학기를 기준으로 그 해의 수능을 향해 살다 보면 계절이 바뀌었고 30대, 40대가 후딱 지나가더니 어느새 정년의 나이가 되었다. 이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 마음먹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돈을 벌기 위한 출근이 중심이 되던 시간은 절실했지만 젊었고 정년이 된 시간은 늙었으나 감사했다.


그런데 치아의 사용연한이 끝나간다는 의미의 '나이 먹어 그래요'라는 의사의 말은 예의 무심함으로 넘길 수 없는 엄연한 나의 현실이다. 이 현실에선 육체적 변화가 먼저 감각적으로 다가온다. 멀쩡하던 무릎이 어느 날 갑자기 계단을 올라가지 못한다거나 갑자기 뛰어가려고 했는데 발목이 꼬여 넘어진다. 큰 노동 없이 지낸 하루였는데 침대에 누우면 여기저기가 불편하고 어깨가 삐걱거린다. 육체의 사용연한이 끝나가고 있으며 더는 보너스 타임이 주어지지 않는 시간에 내가 살고 있는 것이다. 평소 관리를 못해 그렇다는 어설픈 죄의식은 갖고 싶지 않다. 육체의 관리에 소홀했을진 몰라도 내 일과 가족의 삶에선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가 살아온 시간의 결과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난다는 것이 인생이 품고 있는 진리가 아닌가. 치아가 흔들리고 썩는 것도 무릎이 아픈 것도 어깨가 덜그럭 거리는 것도 얼굴의 주름살도 살아온 시간의 결과다. 태어난 지 60년이 되어가는데 처음처럼 온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그래,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아니 나의 몸이 늙기 시작했다.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억지로 조금씩 깨닫는다. 이왕 늙는 거 훌륭하게 늙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갑자기 이 두 개가 빠져버린 잇몸은 어느 날 폭삭 가라앉은 싱크홀처럼 돌이킬 수 없이 허전하다. 허전한 그곳을 혀가 자꾸 확인하려 든다. 훌륭하게 늙는것에는 이 허전함도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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