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절반은 집을 떠나 살고 있다. 혼자서도 잘 놀지만 가족이 없는 저녁시간은 적막하다. 우쿨렐레 영상을 보다가 예전 생각이 났다.
대학을 졸업하던 해 사고가 나서 무릎을 다쳤다. 병원에서 3개월을 지내고 재활 치료 하느라 또 3개월을 보내고 나니 실업자가 되어있었다. 집에 있기 민망해 후배 작업실에 놀러 다니며 기타를 만졌는데 그때 느꼈던 순수한 기쁨이 떠올랐다. 팔이 아파 기타는 부담스럽고 우쿨렐레를 해보자. 추진력 갑인 나,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 악기를 검색해 보니 가격도 종류도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할지 깜깜했다. 온라인 클래스를 찾아 들어가니 교재뿐 아니라 원하면 악기까지 추천, 구매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이 짜여 있었다. 즉시 수강신청을 했다.
개인 연주용으로 많이 쓰인다는 콘서트 우쿨렐레 바디를 주문했고 곧 악기가 배송되었다. 기타에 비해 작은 우쿨렐레는 다루기 쉽다고 여겼으나 오산이었다. 어라, 이 우쿨렐레 귀여운 외모와 다르다.
우쿨렐레는 기타와 달리 몸통이 작아 왼손으로 네크 부분을 받치고 오른팔 안쪽에 악기를 안듯이 감싸야한다. 그런데 왼손은 바디의 네크를 받쳐주면서 동시에 줄을 누르는 운지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손가락이 완전 폴더가 되어야 한다. 왜 안되지? 특히 CM7을 누를 땐 검지에 쥐가 나 손이 네크를 떠나면서 악기가 흔들려 이도 저도 되지 않고 우왕좌왕했다. Bm7. 일명 바 코드는 검지를 이용해 네크의 두번 째 마디 전체를 전부 눌러줘야 한다. 이런, 역시 소리가 나지 않는다. 중지로 덮어 힘을 줘도 소리가 안 난다. 에휴, 쉬운 게 없다. 바디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 주면서 기본 코드를 운지하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더 큰 난관은 따로 있었다. 줄을 눌러 소리를 내는 악기 특성상 손가락으로 꾹 눌러야 하는데 말랑한 손가락으로 누르자니 아팠다. 고통 속에 손가락 지문을 가로지르는 개울이 생겼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틱, 턱'소리가 나면서 특유의 맑고 명랑한 소리는 없었다. 또 서너 개의 코드를 누르면 손가락 끝이 아파 자꾸 멈춰야 했다. 코드 암기는 어렵지 않지만 자연스러운 코드 진행은 먼 나라 남의 일이었다. 어찌어찌 코드를 잡고 소리가 난다 해도 주법을 담당하는 오른손은 '나는 누구? 여긴 어디?' 하며 헤맸다. 왼손과 오른손은 각자의 사업에 바빠 전혀 협력하지 않았다. '자, 여러분, 쉽죠? 이건 어렵지 않습니다.'라는 온라인 강사의 말을 들으며 심각하게 나의 뇌와 신체의 결함을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장점이 있지 않던가.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나. 어느덧 손가락 끝엔 굳은살이 생기기 시작했다.
4비트 '꼬부랑 할머니'와 3박자의 왈츠 '에델바이스'를 거쳐 칼립소, 커팅 주법을 익히고 지금은 셔플을 배우고 있다. 칼립소와 이를 변형한 주법은 쉽게 익혔는데 셔플은 어렵다. 리듬을 타야 한다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게다가 부족한 노래실력은 연주를 방해했다. 궁리 끝에 노래를 다운로드하여 익힌 후 연주를 하니 조금 수월해졌다. 두 달이 지난 지금은 '벚꽃엔딩'이나 '제주도 푸른 밤', '비와 당신' 같은 곡을 연주할 수 있는 경지?에 다다랐다. ㅋㅋㅋㅋㅋ 기쁘다. 그리고 저녁시간이 후딱 간다.
산다는 것은 가볍지 않다. 그러나 무겁지도 않다고 우쿨렐레를 치며 생각한다. 인생은 늘 "Somewher over the rainbow" 아니던가. 무지개를 찾아 나선 소년의 비극을 알면서도 우리는 여전히 무지개를 쫓는 쓸쓸한 실존이다. 그러나 이 쓸쓸함을 견디도록 손에 쥘 수 있는 작은 무지개를 허락하는 것 또한 삶이다. 작지만 결코 소소하지 않은 이 악기가 내게 작은 무지개가 되어 아픈 팔과 언짢은 말싸움과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적막한 시간을 오늘도 슬쩍 넘어서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