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진지하고 심각한 얼굴. 보채진 않지만 한치의 물러섬도 없다. 자리를 지키고 앉아 언제까지고 저렇게 앉아 쳐다본다. 주변에서 큰 소리가 나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5분이 흐르고 10분이 흘러 저 무언의 강건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 약한 인간이 드디어 먹을 것을 입에 물려준다. 기다린 시간에 비해 삼키는 것은 순간이다. 맛을 음미하지도 않는다. 바사삭 꿀꺽 삼키고 언제 뭘 먹었냐는 듯이 무심하고 진지하게, 기다림의 끝을 알고 있다는 듯 집요하게 일관된 표정과 자세로 마치 처음인 듯 앉아 바라본다. 가끔 제 존재를 잊지 말라고 주둥이로 슬쩍 인간의 다리 어딘가를 쿡 찍어 인식시킨다. 세상 진지하다. '개진지'란 것이 바로 이거로구나. 투투를 보고 말의 어원을 짐작하겠다. 물론.... 농이다. '개진지'의 '개'는 명사가 아니라 강조의 접두사니까.
간식 앞에서 물러섬 없이 개진지한 하지만 투투는 쿨하다. 인간들이 식탁을 정리하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뜬다. 자신이 언제 먹을 것에 목숨 걸었냐는 듯, 더 이상 관심 없다는 듯 시원한 바닥에 누워 네 다리 펼쳐 들고 뒹굴거린다. 쬐끔 부끄러운 것은 인간의 몫일뿐 투투는 부끄러움이 없다. 무치다. 두려움은 알 지언정 부끄러움은 없다. 두려움을 알아 자신을 지키고 부끄러움이 없으니 눈치 보지 않고 쓸데없는 죄책감도 없다.
19 금 투투 ^^;; 님아....이 작은 동물도 제가 원하는 것과 싫은 것, 좋아하는 것, 두려운 것이 분명하다. 자신의 감정과 기분을 표현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 힘든 배려도 안다.
산책길에 흥이 오르면 나를 돌아보며 '헤헤' 하는 얼굴로 리드 줄을 입에 물곤 뛰자는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나는 뛸 수 없다. 몸이 무거울 뿐 아니라 무릎과 심장에 문제가 있다. 이건 변명이 아니다. 투투는 내가 뛰는 걸 힘들어한다는 것도 아는 것 같다. 제 기분에 취해 마냥 달리지 않고 중간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내가 가까이 가면 폴짝 뛰어 내 얼굴을 혀로 한 번 핥고(마치 힘내라는 것처럼) 다시 뛰자는 신호를 보낸다. 힘든 내가 줄을 풀어주면 마음껏 뛰어가다 문득 서서 나를 바라본다. 내가 움직이면 저도 천천히 움직인다. 이런 깊은 배려가 어딨나. 나 같으면 줄이 풀렸으니 앞 뒤 안 가리고 실컷 뛰어다닐텐데 투투는 날 기다려 준다. 내가 나무 그늘에 앉아 "투투야, 놀아."하면 그제야 신나게 뛰어다닌다. 이것은 훈련된 것이 아니니 믿으시라.
먹을 것 앞에서 진지한 투투. 그저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이 진지함은 녀석의 생존이다. 그러나 질척거리거나 함부로 탐식하지 않는다. 계산도 하지 않고 만족을 모르고 끝없이 먹어치우지 않는다. 남의 밥그릇은 일절 넘보지도 않는다. 나는 투투의 이 진지함을 존중한다. 함부로 웃음거리로 치부하지 않는다. 이해타산으로 때 묻은 나의 진지함을 돌아보고 조금만 웃음을 거두어도 '진지충'이라며 비웃는 가벼운 요즘 세태를 반성한다.
"투투, 간식 먹을까?"
엄마가 글을 쓰고 있는 사이 아주 심심했던 투투. 하릴없이 제 발을 핥고 있다가 머리를 번쩍 들더니 냉큼 냉장고 앞으로 가 대기한다. 기다릴 줄도 알고 질서를 지키는 투투. 음식은 생명이니 그 앞에서 진지한 투투. 어찌 이리 훌륭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