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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Aug 07. 2022

동네 카페

어반 스케치 그리고 쓰다


자주 가는 숲 입구에 겨우내 공사가 진행되더니 봄이 되자 동네 이름을 딴 카페가 문을 열었다. 아들에게 가봤냐고 물으니 친구와 파스타를 먹고 왔다며 그 맛은 평가를 유보하겠단다. 뭐지? 맛있다는 건가, 아닌 건가. 버스도 하루 5번밖에 안 들어오는 시골 동네에 그런 카페가 어디냐며 '심심하실 때 한 번 가 보세요' 한다. 이럴 땐 아들이 어른이다.


그래서 가봤다. 늘 지나다니던 곳인데 막상 들어서니 낯설었다. 평일 낮 천장 높은 카페엔 손님 하나 없이 조용하다. 둘러보니 나름대로 멋을 부린 카페에 부부로 보이는 젊은 사장 내외만 있다가 내가 들어서니 반색을 한다. 시원한 커피 한 잔 주문하고 앉아 노트북을 켜니 음악 소리가 슬쩍 낮아진다. 2시간의 알람을 맞춰놓았다. 안 그러면 시간 가는 줄 모르리라. 브런치를 열고 그동안 찜해 둔 글들을 읽기로 했다.


평소 브런치 읽기는 구독 작가님들의 알림이 뜨고 그때그때 올라온 글을 읽는 것이었다. 하지만 브런치는 때로 적극적인 읽기가 필요하다. 관심 작가님들의 브런치 북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거나 평소의 접근에서 벗어나 다양한 글아 읽을 때 '브런치를 읽는다'라고 할 수 있겠다. 물레길 단체 손님들을 겨냥한 것 같은 커다란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브런치를 읽으며 떠오르는 단상을 메모하며 읽는 것. 이것이 나에겐 브런치를 읽는 것이다. 


핸드폰에 저장된 Patricia Salas의  "Puerto Montt"를 들었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큼 손님이 없다. 음악은 나를 멀리 이국 칠레의 항구로 데려간다. 햇살이 쏟아지고 바닷바람과 햇빛에 검붉게 탄 어부의 모습이 보인다. 생존을 위한 소박한 배들과 새하얀 요트도 보인다. 그 요트 앞에서 행복한 기억을 남겨둔 채 이별하는 연인이 있다. 두 연인의 이야기가 "Puerto Montt (몽트 항구)"에 회자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카페 사장님이 쑥스러워하며 밭에서 금방 따 온 토마토를 건넨다. 따뜻한 토마토에서 여름 햇빛 냄새와 풀냄새가 났다. 껍질이 부드럽게 씹히며 단 맛이 가득한 토마토는 여름의 절정에서 완벽해지고 있었다. 나는 그 작은 완벽함을 꿀꺽 삼켰다.



파란색 난간이 예쁜 동네 카페. 파브리아노 14.8 ×21 프리즈마 색연필

사는  별  아니란 생각이 드는 때는 바로 이런 때다. 회사의 일로 스트레스가 가득한 아들을 지켜봐야 하는 근심, 정년 한 지 반년이 지나가며 더더욱 가벼워지는 은행 잔고에 대한 두려움, 숨겨놓은 비밀을 예고 없이 까발리는 배신처럼 한 번씩 삐걱거리는 내 몸과  정체모를 일상의 불안을 끌어안고 있다가도 지금 이렇게 동네 카페에 앉아 토마토 한 알 꿀꺽 삼키며 그 작은 물질 안에서 완벽함을 느끼는 그런 순간. '사는  별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여름 햇빛 냄새와 함께 입속 토마토를 따라 위장까지 갔다가 정수리로 치고 올라간다. 나는 갑자기 용감해져서 속삭이던 핸드폰 볼륨을 조금 크게 올렸다. "Puerto Montt (몽트 항구)"가 공간에 찬다.


커피값 계산을 하는데 바깥 사장님이 간판의 불을 끈다. "아직 해지기 전인데.." 했더니 오늘은 그만 문 닫고 들어간단다. 이런, 나를 기다려 준 것이다. 불편했다. "말씀하셨으면  일어났을 텐데..." 하니 손을 휘휘 저으며 아니라고 한다. 서로 미안한 감정의 눈빛이 오고 갔다. 돌아서 나오는 등에 대고  "언제든 또 오세요" 인사한다. 진심과 미안함이 들어있는 말. 나는 뒤돌아 웃어주었다.


돌아와 그림을 그리며 주머니에 남아있던 토마토 한 알을 만지작거렸다. '장사가 되려나... 남의 건물인가? 본인들 건가? 임대료는 나오려나... 어쩌자고 산골에 카페를...'  걱정이 꼬리를 문다. 파스타를 해 달라고 할 걸.... 밑그림을 그리는데 없던 욕심이 생긴다. 그 젊은 사장님들 보여주면 좋아할까, 어쩔까.... 색을 입히는 사이 이 생각도 저 생각도 사라지고 그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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