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저녁을 먹고 편안한 옷차림으로 동네를 어슬렁 거리는데 살던 집을 다시 리모델링하여 모습이 바뀐 집들이 눈에 띄었다. 밋밋한 크림색 페인트로 색을 칠했던 집이었는데 벽돌로 다시 외벽을 바르고 대문과 철제 펜스로 말끔하게 새 단장을 했다. 처음엔 새로 집을 지었나 했는데 예전에 있던 집이었다. 대문 한쪽에 노란 루드베키아가 한 무리 소담하게 피어있고 빨간 우체통이 '나 새것이에요'하며 서 있다. 해 지기 전 담벼락에 비친 노을 때문에 꽃이 환했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와 그렸다.
요즘은 수채로 채색하는 것보다 더 시간이 걸리는 색연필 작업이 좋다. 밑그림을 그리고 색연필로 색을 입히다 보면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오로지 색을 입히고 색을 통해 표현하려고 하는 것 밖에 없으니 흔치 않은 몰입이다. 이 그림의 채색은 힘을 빼고 무겁지 않게 그렸다. 회색 벽돌이 맑은 느낌을 주었는데 그 느낌을 살리고 싶어서다. 부족하고 맘에 안 드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어서 생략한다. 다만 거듭 생각해도 그림을 그리는 것은 참으로 복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