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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Aug 31. 2022

학암포 바다

어반 그리고 쓰다


오랜 벗과 함께 학암포에 갔다. 해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우리는 중. 고등학교와 대학을 함께 나왔다. 대학은 친구보다 한 해 늦게 들어갔으니 내가 후배다. 도스토예프스키, 레마르크, 까뮈와 헤세, 펄벅,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성복과 기형도, 박완서와 오정희, 아, 전혜린....

내 독서의 7할은 친구와 함께 고등학교 때 이루어졌다. 우리는 마치 사막의 오아시스에서 물을 마시듯 독서에 열중했다. 친구들 집에서 빌려온 세계문학 전집과 한국문학전집 등을 도장 깨기 하듯 수학 시간과 독일어 시간, 야자 시간에 읽고 자주 밤을 새웠다. 


미술 수업과 야자를 빼먹고 봉황기 고교 야구 결승을 보러 갔다가 반성문도 썼다. 친구는 한 장에 끝났으나 나는 100장을 써야 했다. 성의도 반성의 기미도 없다며 친구처럼 쓰라고 했다. 봉황기 결승을 보았는데 반성문 100장 그까이 꺼... 가 아니었다. 나는 도저히 마음에 없는 말을 쓸 수 없었다. 나중엔 괘씸죄까지 추가되어 10시가 넘도록 학교 교무실 바닥에 꿇어앉아 반성문을 써야 했다. 교무실 절반의 불이 꺼지고 내게 반성문을 쓰라고 했던 미술 선생님도 퇴근하고 나만 남게 되자 공포 영화가 자꾸 생각나면서 컴컴한 학교가 너무 무서웠고 자존심이 몹시 상했다. 꾹꾹 눌러두었던 반항심이 쑥 올라왔다. '수업을 빼먹어 죄송합니다' 한 줄로 100장을 채우고-이것도 힘들었다- 집으로 갔다. 혼날 각오를 하고 다음 날 학교에 갔지만 미술 선생님은 날 부르지 않았다. 그때 반성문 한 장으로 통과되었던 내 친구는 지금 소설을 쓴다.


난방이 되지 않던 동네 삼류 영화관에서 '차탈레 부인의 사랑'을 보던 일을 떠올릴 때면 우린 언제나 낄낄거린다. 이미 책을 읽어 줄거리를 알고 있었기에 야한 장면을 기대하고 갔는데 편집에서 잘라냈는지 기다려도 야한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결국 몸이 꽁꽁 얼어버려서 더는 버티지 못하고 영화가 끝나기 전에 나와버렸다. 어느새 10시가 되어 가고 있었고 9시가 통금이던 친구는 아버지 때문이었는지 추위 때문이었는지 벌벌 떨며 집에 갔다. 성인이 되고 이 영화를 우연히 다시 보게 되었는데 우리가 기다렸던 야한 장면은 뿌옇게 화면처리를 해서 결국은 보지 못했을 시시한 장면이었다.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를 읽고 일기도 함께 썼는데 세상 고민은 다 끌어안고 잦은 실수와 실패를 한 이야기들이 태반이었다. 우리는 밤낮으로 붙어 다녔고 많은 감정과 생각을 공유했지만 대학 졸업 후 사는 일이 바쁘다 보니 자주 만나지 못했다. 둘 다 서울에서 자랐으나 둘째 아이를 낳은 후 나는 양평으로 친구는 일산에서 청주로 옮겨 살았다. 일 년에 두어 번 살아 있다는 것만 확인하다가 정년을 한 후 스스로 안식년이라고 칭하며 우린 다시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동해로 영월로 정선으로 전주로 여행을 가고 서울 시내 궁궐과 박물관, 카페로 나들이를 간다. 


친구 남편은 내 소개팅 남자였으나 내가 바람 맞혔고 그 일을 주선했던 친구는 나 대신 사과하다가 그와 결혼했다. 친구와 남편은 같은 성당 성가대 단원이었고 남편과 친구의 남편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이렇게든 저렇게든 우린 서로 엮여 있었으니 함께 다니기 딱 좋은 멤버들이다. 우리는 1박 2일을 함께 하며 조개를 구워 먹고 바다에 들어가 수영도 했다. 바닷물은 놀랍도록 시원했고 나를 보며 웃던 친구의 웃음은 바닷물에 비친 햇살처럼 환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먼 데서 만나던 바닷물이 눈앞까지 들어왔다가 저 멀리 나가고 그 물이 다시 들어왔다가 나갈 때까지 우린 이야기하고 웃고 음악을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말에 사춘기 애들처럼 배를 잡고 웃었다.


학암포에 노을이 졌다. 슬픈 노을이 바다에 가득했다. 노을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우리가 노을 같다고 생각했다. 붉은빛이 사라지면서 해가 넘어가자 주변은 어두워졌고 노을이 만든 우리의 긴 그림자도 사라졌다. 우리도 남은 생애 반짝거리다가 조용히 가라앉다가 사라질 것이다. 그럴 것이다. 언제가 됐든 그 모든 것이 노을처럼 자연스러웠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서로를 지켜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밥 먹으러 가자" 누군가 말했다. 밥을 먹으며 가지지 못한 것과 앞으로도 가지지 못할 것을 놓아버렸다며 친구는 지금이 제일 편하다고 했다. 내 친구가 평안해서 나도 평안했다. 친구를 보며 *삶의 열쇠는 우리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아니라 자신의 태도에 있다고 한 책의 글귀가 생각났다. 


파란 하늘과 붉게 반짝였던 노을, 맑고 차가웠던 바닷물, 넓은 모래사장을 적시며 들어왔다 나가던 물과 그 물 따라 들어오고 나가던 사람들. 어디선가 들리던 아이들 웃음소리, 음악 소리, 장작 타는 냄새들이 학암포 바닷가의 공기와 바람을 타고 떠돌았다. '언젠가 학암포에 다시 가자'하는 바람은 품지 않는다. 삶이 주는 불투명함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어느 날 가고 싶으면 다시 가면 그뿐, 새로운 약속은 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암묵적 약속이다. 학암포에서 우린 즐거웠고 편안했다. 날씨도 바다와 하늘과 노을도 음식도 사람도 모두 다 좋았다. 학암포가 좋아서라기 보다 함께 한 사람들이 좋아서 학암포 바다가 좋았다. 이것으로 족한 것이다. 장소와 기억도 기억 속에 저장된  시간도 다 사람에 의해 좌우되는 '무엇'이 된다. 그 '무엇'이 가득했던 바다를 그리니 친구와 밤새 나눈 이야기와 함께 했던 이들의 눈빛이 다시 생생하다. 체크 아웃을 하고 우리는 글램핑 숙소 앞 데크에 서서 학암포 바다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밀려왔던 물이 다시 빠지고 있었다. 




글램핑장에서 바라본 학암포 바다. 파브리아노 14.8 ×21. 파버 카스텔 색연필




* 인생의 태도 , 웨인 다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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