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바비' 온던 밤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왠지 조금 어리숙해 보일 것 같은 이름 바비. ( 바비 이름의 사람들에겐 미안!)

한반도를 향하고 있다는 태풍의 이름이다.

밤이 깊어지자 가슴을 졸이게 하는 바람. 가까이 왔나 봐. 인천에 닿았다는 소식이 들린다.

앞산이 통째로 심하게 흔들린다. '어닝은 접었나?' , '화분은 치웠고.... 뭐 날아갈 것은 없나..'

잠이 오지 않는다. TV를 켰다가 끄고 전원을 내린다. 공연히 휴대폰만 켰다가 끄는 것을 반복한다.

아, 올여름은 참 살기 힘들다. 애들에게 전화를 하려다 참는다. 새벽 2시. 다들 잘 거야. 설핏 잠이 들었다.

이런 소파에서 잤네. 남편의 낮은 코 고는 소리. 역시 멘탈 갑이야. 창을 닫아놓았는데도 쏴 ~ 아 하는 소리 점점 더 커지고 캄캄한 밖은 엄청나게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쏴 ~아, 스르륵 쿵, 트륵, 쏴~ 아~~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가 자꾸 위로 까불린다. 얇은 가지가 곧 부러질 것 같다. 다시 설핏 잠.

하늘 한쪽이 밝아온다. 나무는 더욱 까불리고 있다. 까무룩 불안한 잠. 띠리리릭 현관 닫히는 소리. 출근하는 남편. 까불리던 나무는 잠잠하다. 창을 여니 조용한 하늘과 산. 검은 먹구름이 두껍게 깔린 채 서쪽 하늘로 흐르며 비를 흩뿌리고 있다. 바비는 어리숙한 태풍이 아니었어. (다시 한 번 바비들에게 사과함)

온통 어지럽혀진 마당. 누군가 한바탕 성질을 피운 모습이다. 뒤따라가지 못한 바람에 날리던 낙엽이 다리에 붙는다.


강풍을 동반한 태풍은 여기저기 생채기를 내고 북쪽으로 갔다고 한다. 아침이 되자 모든 걸 흔들어대던 세상이 적막하다. 풀벌레들도 매미도, 아랫집 닭들과 거위도 조용하다. 시간이 멈춘 느낌.

잔뜩 흐린 산은 시름에 잠긴 듯하다. 군데군데 어둠을 안고 있는 산. 조용히 낮은 소리를 내며 천천히 흔들리는 산. 나는 그런 산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