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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an 02. 2023

2022년 마지막 날에 김치국수를 먹었다

색연필 그림일기 2


수영장에 가려고 시동을 켜는데 며느리가 이불 빨래를 하러 빨래방엘 간다고 나온다. 음, 묵은 때를 정리하는군, 기특하군. 하는데  손님이 온단다. 연말연시 손님맞이 이불 빨래란다. 음, 그것도 기특하군. 운전 조심하라 이르고 수영장으로 향했다.


토요일 오전엔 사람이 적으니 한가롭게 놀아야지 생각했는데 수영장엔 평소보다 이용객이 많았다. 수영장 물이 자꾸 넘쳤다. 왜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지? 오라, 방학이군.  무시 마구잡이 영법의 초등생 회원님은 첨벙첨벙 위로 솟아오르며 거뜬히 레인을 왕복했다. 하, 녀석, 용한 걸. 저렇게도 헤엄을 칠 수 있구나. 그래, 폼은 나중에 교정하거라. 그래야 힘 덜 들이고 잘 가니까.


마지막  수영하고 나오니 아주 개운했다. 집에 오니 우리 집 개랑 남편이 함께 산책을 가자며 기다리고 있다. 4시가 넘자 무엇이 급한지 산 밑은 어두워지면서 해가 산을 넘고 있었. 햇님, 어차피 넘어갈 햇님이잖아. 8시간도 안 남았다고. 뭐가 그리 급한 거야. 산길을 걷느라 땀이 났던 몸이 해가 들어가자 한기가 들며 귀가 시렸다. 해가 졌다고 이렇게 즉시 어둠과 추위가 몰려오는구나. 아주 기다렸다 이거지. 모자 달린 옷을 입을 걸, 후회하며 코를 훌쩍이는 나를 우리 집 개가 돌아보았다.

  


어묵을 넣은 김치 국수

집에 돌아오니 작은 아들도 제 형네 가서 놀고 오겠다며 가고 다. 한 해 마지막날 저녁은 약속 없는 우리 집 개랑 남편이랑 셋이서 먹었다. 우리 집 개는 고기 국물에 사료를 말아먹었고 남편과 나는 치킨과 맥주, 어묵을 넣은 김치국수를 끓여 먹었다. 김치국수를 먹으며 남편은 온 사방에 카톡을 날렸고 나는 맥주를 더 마실까, 넷플릭스 영화를 볼까 생각하는 동안 슬그머니 12시가 되었다. 여행 프로그램을 보던 남편이 어, 12시 넘었네, 하고 말했다. 우리는 식탁을 치우고 보던 TV와 마당의 등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나를 따라와 침대 아래에 누은 우리 집 개에게 말했다.

  "엄마 60살이야. , 마이 갓! 세상에!!"

우리 집 개가 머리를 번쩍 쳐들고 꼬리를 흔들고 남편은 큭큭거린다. 잠이 확 달아났다. 시간이 내게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시간은 흐르고 오, 마이 갓이여, 부디 60의 내게 비로소 강 같은 평화가 흐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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