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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Mar 16. 2023

우아하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색연필 그림일기 2


수영을 다시 시작한 것은 6년 전이었다.


당시 나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늦은 밤 떨어지는 나뭇잎 소리도 선명히 들을 수 있을 만큼 예민했다. 의사는 일을 놓고 왕비처럼 쉬라고 했다. 


무슨 원더 우먼 소머즈도 아니고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를 듣다니. (이 대목에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어떤 소리냐고 묻는 이가 꼭 있다. 별 거 아니다. 그저 "툭" 이거나 "사락~"이다.) 게다가 왕비는커녕 왕비 비슷한 처지도 아닌 나는 의사의 권유대로 운동은 해야 하는데 뜀박질은 못하고(뛰기에 적합한 심장이 아니라고 했다) 헬스는 싫고 에어로빅은 더 싫었다. 지인이 권한 요가도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프고 몸살이 나 그만두고 말았다. 그러다 수년 전 음파만 배우고 그만둔 수영이 생각났다. 그래, 수영이야. 다시 시작하자. 나는 수영장에 전화를 걸어 강습 시간을 문의했다.


당시 내가 사는 지역엔 수영장이 없었다. 이용할 수 있는 수영장은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있었다. 초급 강습 등록을 하고 열심히 출석했다. 6개월 후 나는 함께 시작한 사람들보다 먼저 중급반을 거쳐 상급반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막 접영을 익히기 시작했을 때 전염병이 돌았고 수영장은 문을 닫았다.


생활은 빠르게 예전으로 돌아갔다.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 잠을 설쳤고 쉽게 지쳤으며 체중은 다시 늘어났다. 거기에 오묘하고 끔찍한 갱년기까지 찾아와 우울했다. 뭐라도 해야 살 것 같았다. *빌 브라이슨의 책을 읽으며 수영 대신 걷기를 시작했다. 걷기는 단순한 육체 활동이 아니라 일상 성찰과 명상, 철학적 사색을 동반하는 정신적 활동이었다. 걷기로 인해 새로운 기쁨을 얻은 나는 가능한 날마다 걸었다. 집에서 옆 동네까지, 숲길을 지나 고개를 넘고 다시 고개를 넘어 집으로 오는 모든 경로의 길과 숲과 산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걸었다. 그런데 이런, 무릎과 골반이 아팠다. 아, 허접한 육체여! 수영이 그리웠다.


마침내 전염병은 누그러졌고 수영장은 다시 문을 열었다. 그것도 내가 사는 동네에 이름도 멋진 '에코 힐링센터'라는 새 수영장이 들어선 것이다. 양평군 만세!  88 올림픽 여자 농구 결승을 보기 위해 줄을 섰던 이후 처음으로 3시간의 기다림 끝에 센터 등록을 했고 강습을 신청했다. 수영복을 챙기며 수영가방을 싸는 일이 설레는 일이었던가. 나는 수영을 앞두고 설레고 있었다. 최근 어떤 일에 설레는 일 없이 살았다는 자각이 전두엽을 지나 측두엽을 스쳐갔. 쯧쯧, 설레는 일 없이 살았구나...


데이비드 호크니, 1967, <더 큰 풍덩> 인터넷 자료

그때 알았다. 아, 나는 수영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구나! 호크니 그림처럼 "풍덩" 물에 뛰어들 때 물이 몸에 와닿으며 둥실 떠오르는 느낌과 온몸에 닿는 물의 감촉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흐름과 관련된 모든 것이 그렇듯, 수영에는 본질적인 선(善), 말하자면 리드미컬한 음악 활동이 내재한다. 그리고 수영에는 부유(buoyance), 즉 우리를 떠받치고 감싸는 걸쭉하고 투명한 매질 속에 떠 있는 상태가 주는 경이로움이 있다."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올리버 색스, 양병찬 옮김, Alma 출판)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의 책을 읽다가 발견한 이 구절들은 내가 물속에서 느낀 바로 그것이었다. 알고 보니 올리버 색스는 수영광이다.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아기 때부터 수영을 시작했고 수영을 몹시 사랑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수영할 수 있기를 바랐는데 그건 바로 내 바람이기도 하다. "우리를 떠받치고 감싸는 걸쭉하고 투명한 매질 속에 떠 있는 상태가 주는 경이로움". 이것이 바로 수영이다! 아, 내가 먼저 이런 글을 썼어야 했는데.... 아쉽도다! 그의 글을  읽어보자.


"수영쟁이는 물속에서 움직이기도 하고 물과 함께 놀 수도 있는데 공기 중에서는 그와 비슷한 활동을 할 수 없다. 수영쟁이는 물의 역학과 흐름을 이모저모로 탐구할 수 있고 손을 프로펠러처럼 휘젓거나 작은 방향키처럼 조종할 수도 있으며 작은 수중의 선(hydroplane)이나 잠수함이 되어 흐름의 물리학을 몸소 체험할 수도 있다." ( 같은 책 p.14)


"수영은 극단적 기쁨과 행복감을 선사하기 때문에 나는 때때로 일종의 황홀경에 빠지곤 한다. 나는 스트로크 하나하나에 매번 몰두한다. 그러면 마음이 자유롭게 둥실 떠오르며 넋을 잃어 *트랜스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같은 책 p.13)



수영장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인터넷에서 퍼 온 사진을 보고 그렸다. 내 모습과 비슷? 할 거라 착각해  봄.

올리버 색스(Oliver Wolf Sacks)가 말하는 물속에서의 '몰입'이 무엇인지 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수영에 대한 그의 통찰에 대해 나는 격한 공감을 느꼈다. 그런데  경험하지 못한 것이 내게 있다. 그가 경험을 했지만 발표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으나 아무튼, 그가 미처 말하지 않은 것을 내가 말할 수 있어 즐겁다. 그것은 바로 물속에 나타나는 글에 대한 것이다.  소리야? 글이 물속에 나타나다니. 먹었나? 꿈인가? 하겠지만 이건 사실이다.


수영쟁이들은 수영장 레인을 15바퀴나 20바퀴(750m나 1000m) 돌며 장거리 수영을 할 때가 있다.  역시 레인을 돈 횟수를 세며 천천히 스트로크를 하는데 10바퀴(500m)쯤 되면 약간의 무아지경? 에 이른다. 레인을 돈 횟수도 가물거리고 규칙적인 동작만 반복하바로 그즈음 수영장 바닥에 글이 나타난다! 때론 완성된 문장으로 때론 한 단어로 나타나는 글은 오선지에 그려진 음표처럼 곡선을 따라 나타나기도 하고 물을 따라 흐르기도 한다. 환상이 아니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수영장 바닥에 나타난 글을 읽으며 스트로크를 하는데 그때의 기분은 정말 이상하다. 내가 물속에 있다는 것을 잊는. 호흡은 편하고 수영장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찰박찰박" 팔이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들린다. 나는 찰박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마치 타자기를 두드리듯 물속에서 글을 엮는다. 글자들은 새끼오리들이 어미 오리를 따라 일렬로 걸어가는 모습으로 줄지어 선채 굴절된 빛을 따라 흐르기도 하고 바닥 타일에 흔들리며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얼마 전엔  커다랗게 "단풍나무"라는 글자가 마치 나무가 바람에 나부끼듯 출렁거렸다. 단풍나무가 뭐 어쨌다고? 아! 집 앞 단풍나무! 그래서 쓴 글이 바로 "단풍나무 몸속엔 강물이 흐르고(색연필 그림일기 2)"이다. 이 글의 초고는 물속에서 썼다고 해야 옳다. 심지어 브런치에 저장해 둔 글을 물속에서 수정하고 집으로 와 퇴고를 하기도 했다. 앞으로는 글감이 떠 오르지 않거나 글이 막히면 수영을 가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물속에서 글을 쓰다니. 이 또한 수영이 주는 나만의 경이로움이 아닌가. 수영에 대해 멋진 통찰을 한 올리버 색스도 이건 미처 생각 못했을 것이다. (미안해요. 올리버. 뜬금없는 1패를 안겨 드려서... 크크크)


한 번은 같이 수영하는 친구가 나를 불렀는데 듣지 못한 적도 있다.  친구는 내게 아주 수영에 푹 빠졌다고 했다. 이 글의 제목도 수영을 하다가 나타난 글을 보고 잊지 않고 메모해 둔 것이다. 나는 수영장 친구와 차를 마시며 이 제목에 관해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자신도 우아하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면서 박수를 치며 좋아해 주었다. 


70세나 80세에도 수영을 할 수 있을까. 그러길 바란다. 이왕이면 우아하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이것은 아주 확실하고도 실현 가능하며 낭만적인 희망사항 아닌가. 이 바람은 거의 이루어지기 직전이다. 나는 60이 되었고 완벽하진 않지만 접영을 하기 시작했으니까.


오늘도 나는 빗물이 수영장 유리창에 부딪쳐 흐르는 것을 보며 수영을 하고 왔다. 빗물이 유리에 흐르는 것을 보니 수영장 전체가 물속에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수영장이라는 독립된 행성에서 물과 내가 섞이며 물이 내 몸 구석구석을 타고 흐르는 것을 느꼈다. 물은 단단하게 나를 받쳐주기도 하고 부드럽게 나아가도록 밀어주기도 다. 나는 미끄러지는 흐름을 타며 앞으로 앞으로 나아간다. 물을 잡기도 하고 누르기라도 하면 물은   전완근에 묵직하게 걸리거나 발등 아래서 눌리며 다시 튕겨 올라 내 몸을 이동시킨다. 어느덧 목이 마르고 몸이 따뜻해지며 기분 좋은 피로감과 함께 느끼는 개운함은 수영이 덤으로 주는 즐거움이다.


들어가면 나는 세상을 잊는다. 전나무 숲에서 살랑거리는 바람을 바라볼 때나 해지는 붉은 석양 아래 뛰어오르던 물고기들을 볼 때처럼 물속에서 나는 세상을 잊고 그 일부가 된다. 물이 되거나 바람, 물고기가 될 수는 없어도 그 일부가 될 수는 있다.


이제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잠에 푹 빠지기 때문이다. 전염병의 위협은 가라앉았고 함께 수영을 즐기는 크루들까지 있으니 더할 나위가 없다. 나는 수영을 하며 나날이 젊게 나이 먹고 있다. 우아하게 접영 하는 할머니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 



 나비처럼 날아올라~ 촤하~ 미래의 근육질 할머니.





*빌 브라이슨 : 여행 작가. 미국. <나를 부르는 숲>

* 올리버 색스 : 1933년 런던 출신. 신경과 전문의. 작가. 대중적 저서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가 있다.

*트랜스 : 몰입경이라고 한다. 최면 상태나 히스테리 상태에서 나타나며 외계와 접촉을 끊고 깊은 명상 상태에 들어가 특수한 희열에 잠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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