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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Mar 14. 2024

산책

색연필 그림일기 2


나무들 끝 하늘 언저리가 가물가물 연둣빛이다. 연둣빛 물이 오른 걸 보니 그간 나무들이 바빴겠다. 개나리도 생강나무목련도 양지바른 산기슭 진달래도 이제 바빠지겠구나. 라일락이 뒤를 따르겠지.


개나리, 진달래, 목련, 라일락 가만히 소리 내 불러본다. 입안이 미끄럽다.

모두 'ㄹ'이 들어있구나.


작은 공원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지만 뭔지 모를 분주함이 가득했다. 나무들 몸속에서 물씬물씬  밀어 올리는 소리, 가지 끝에 다다른 물과 양분을 받아 꽃봉오리들 벌어질 소리, 작은 웅덩이엔 올챙이알 데굴데굴 와글와글.


허물을 벗고 세상으로 나온 흰나비 몽실거리는 연둣빛과 향긋함에 이끌려 팔랑거리고 우리 집 개는 흰나비를 쫓아 달리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폐 속으로 들어오 정수리와 등언저리에 햇살이 다정히 앉아 산책 내내 따라온다. 따뜻한 바람에 옷깃 젖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분주한 작은 공원에서 저 혼자 바람 날 것 같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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