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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색연필 그림일기 2

by Eli

나무들 끝 하늘 언저리가 가물가물 연둣빛이다. 연둣빛 물이 오른 걸 보니 그간 나무들이 바빴겠다. 개나리도 생강나무도 목련도 양지바른 산기슭 진달래도 이제 바빠지겠구나. 라일락이 뒤를 따르겠지.


개나리, 진달래, 목련, 라일락 가만히 소리 내 불러본다. 입안이 미끄럽다.

모두 'ㄹ'이 들어있구나.


작은 공원엔 사람 하나 없이 적막했지만 뭔지 모를 분주함이 가득했다. 나무들 몸속에서 물씬물씬 물 밀어 올리는 소리, 가지 끝에 다다른 물과 양분을 받아 꽃봉오리들 벌어질 소리, 작은 웅덩이엔 올챙이알 데굴데굴 와글와글.


허물을 벗고 세상으로 나온 흰나비 몽실거리는 연둣빛과 향긋함에 이끌려 팔랑거리고 우리 집 개는 흰나비를 쫓아 달리고.


살랑거리는 바람이 폐 속으로 들어오고 정수리와 등언저리에 햇살이 다정히 앉아 산책 내내 따라온다. 따뜻한 바람에 옷깃 젖히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분주한 작은 공원에서 저 혼자 바람 날 것 같은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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