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 Jan 28. 2024

멈춘 시계

색연필 그림일기 2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갔다. 어머니 좋아하시는 게 뭐지? 알고 있으면서도 매 번 묻는 것은 조금 다른 걸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선뜻 다른 것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머니는 평소 조기 같은 생선을 좋아하셨고 돼지고기는 안 드셔서 소고기를 드셨는데.... 이가 안 좋으시니 부드러운 간식을 준비합시다. 이것도 늘 하는 말. 현관 인터폰으로 방문 목적을 알리니 어머니 성함을 묻는다. 작은 방에서 어머님을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 이름이 입가에 맴돌았다. 남의 집 귀한 딸을 가리키는 "영애". "영애"가 어머니 이름이다. 귀한 따님 "영애"는 이제 기억하는 게 별로 없으시다. 


 "똑똑"

휠체어에 탄 어머니를 요양원 봉사자가 모시고 들어 왔다. 어머니는 잠이 덜 깬 듯한 눈으로 어리둥절해하셨다. 어머니 앞에 선 우리는 아들, 며느리가 아닌  낯선 사람들이다. "어머니"하고 어머니를 부르니 당신이 우리의 어머니인가 보다 하지만 모르시는 눈치다. 들고 간 우유와 카스텔라를 드리니 야금야금 끝까지 다 드시고 한 말씀하신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생각이 안 나요."

"괜찮아요. 어머니, 우리가 어머니를 알잖아요."

"엄마, 저 막내 00이에요. 이 사람은 엄마 막내며느리."

아들과 며느리를 천천히 훑어보시는 어머니,

"..... 네에....."

자신 없는 목소리.


무릎이 안 좋아 굽힐 수 없는 어머니의 왼쪽 다리  체어의 발판에 놓이지 못하고 앞으로 뻗어 나왔다. 삐죽 드러난 발목이 유난히 가늘다. 흘러내린 양말을 올려주며 다리를 쓰다듬던 남편의 얼굴이 벌게진다. 마르고 건조한 어머니 손을 잡고 검버섯 핀 어머니 볼에 얼굴을 대고 아들은 사진을 찍었다. 며느리는 버릇없이 어머니 머리를 쓰다듬으며 연민도 꾹꾹 쓰다듬는다. 빨개진 눈가를 자꾸 훔치는 남편을 피해 먼 곳을 더듬던 눈이 흰 벽에 걸린 시계에 꽂혔다. 12시? 핸드폰 시계를 확인한다. 3시가 넘었는데.... 시계가 멈췄구나.... 어머니의 시간도 멈췄고.... 이 방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네.... 어머니 흐린 눈을 본다. 그 눈은 시간과 기억이 멈춘 텅 비고 컴컴한 공간처럼 보인다. 92세의 어디쯤에서 멈추기 시작한 어머니의 시간은 95세의 시간에서 더 이상 흐르지 않는다. 


*물리학에서는 모든 물체가 자기 주위의 시간을 늦춘다고 한다. 산꼭대기보다 평지의 시간이 더 느리게 가고 우리 몸의 머리보다 발밑에서의 시간이 더 느리다. 지구 중심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시간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고 공간 속의 모든 지점마다 다른 시간이 적용된다. 우리가 말하는 시공간은 없다고 한다. 시간은 연속된 선이 아니라 흩어진 점이라고. 그래서 시간이 흐른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벽에 걸린 시계는 아들과 며느리가 시공간에 놓인 것이 아니어서 멈춘 것일까. 어머니는 요양원이라는 행성에서 시간을 잃어버린 채, 아니 더 이상 시간이 흐르지 않는 곳에서 살고 계신 건가. 어머니의 기억은 연결되지 않고 흩어졌기에.


자꾸만 아들이라며, 아무개라며 주입하듯 자신의 이름을 말해주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00이, 00이"

하신다. 잘 모르겠지만 당신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다고 칩시다, 하는 듯이 "00이, 00이" 하신다. 아들은 그제야 웃는다. 엄마가 자신을 알아보았다고, 자기 이름을 안다고, 기억하신다고 눈물 찬 눈으로 웃는다.

아들 이름을 불러주던 어머니, 곁에 선 여자에겐 미안한 얼굴이시다.

"집이는 어디서 봤는데 기억이 안 나요. 미안해요."

아들은 자꾸 제 이름을 말하고 기억 안 나는 여자는 '누굴까? 누굴까?' 흐린 눈으로 자꾸 쳐다보신다.


늘 조용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말수가 적으셨다. 단 한 번도(정말이다) 시어머니임을 앞세워 며느리들을 꾸중한 적이 없으시다. 때로 동서형님은 그런 어머니께 자식들 야단 좀 치시라며 오히려 뭐라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미안해요."라고 하셨다. 한 번은 무엇이 미안하냐고 여쭈니 가난한 집에 시집와 당신 아들들과 살아주는 것이 고맙고 미안하다고 하셨다. 절에 어머니를 뵈러 갔다 돌아올 땐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오셔서 "고마워요." 하셨다. 어머니는 며느리들에게 하대하지 않으셨다. 그날 신문은 꼭 보셨고 음식을 만든 며느리들에게 커피 타 주라시며 소파에 누운 아들들을 밀어내시던 어머니셨다. 그런 어머니께서 기억을 잃으시고 이젠 기억을 잃은 것이 미안하다고 하신다.


면회시간이 끝났다며 봉사자가 휠체어를 나가려는데, 어머니 몸을 돌려 내게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이렇게 살고 있어요.... 너무 오래 살고 있어요. 휴~~"

"어머니, 괜찮아요. 주변 사람들 너무 힘들게 하지 않으셔서 감사한 걸요. 잘 잡숫고 잘 지내고 계세요..."

"네에.... 안녕히 가세요...."


어머니와 함께 있는 동안 30여분의 시간이 흘렀는 어머니와 만난 방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무심한 흰 벽에 걸린 시곗바늘은 방을 나설  때도 여전히 12시였다. 차의 시동을 켠 남편은 우두커니 앞을 보며 말했다.

"우리 엄마 참 똑똑했는데...."




12시에서 멈춘 시계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카를로 로벨리, 쌤&파커스  출판, 2019 참조


매거진의 이전글 "눈 오잖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