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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ul 11. 2023

집에서 안 나간다

필사하며 나누며


"*이 매거진은 fragancia 작가님의 필사 모임에서 제공된 자료들을 토대로 했음을 알려드립니다."



<식물의 인간>  - 안희제


"향기는 그저 맡거나 먹기에만 좋은 게 아니다. 잘 자라는 식물에게선 강하고 좋은 향이 난다. 창가에서 은은히 풍겨 오는 향이 꼭 내가 점점 더 나은 반려인간이 되고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식물을 그저 살려두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식물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품이 필요하다. 식물을 기른다는 것은 결국 단순히 생명이 아니라 삶을 돌보는 일이다. 인간에게 더 나은 삶이 필요하듯, 식물에게도 더 나은 삶이 필요하다."






<질문 : 당신의 반려식물을 소개해 주세요. 없다면 키워보고 싶은 식물이 있나요?>



거실 한편에 탱자나무 한 그루가 화분에 담겨있다. 가구처럼 거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은지 8년이 넘었다. 남편에게 물으니 탱자의 나이는 열 살 정도일 거라고 한다. 어린 탱자를 가져와 남편이 화분에 심었고 마침 겨울이라 어린 탱자는 내내 집안에 있었다. 남편은 때 맞춰 물을 주고 영양제를 사다가 꽂아주고 햇볕을 쬐게 하며 돌보았다. 어린 탱자의 성장은 아주 천천히 이루어졌다고 말하고 싶지만 천천히도 아니었다. 시들어 버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자라는 거 맞아? 할 정도로 영 자라지 않았고 꽃도 없었다. 그러나 마치 살아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봄만 되면 뾰족뾰족 연둣빛 여린 가시를 서너 개 삐죽 내밀며 살아있음을 알렸다. 그럼에도 탱자는 자라지 않았다.


어느 날 안 되겠다 싶어 탱자를 큰 화분에 옮겨주었다. 화분에서 꺼낸 탱자의 뿌리는 마치 그물처럼, 오래된 실덩이처럼 엉겨 붙어 있었다. '여긴 너무 비좁아' 하는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고 남편이 말했다. 탱자는 기다렸다는 듯 며칠 동안 쑥쑥 크더니 한 뼘이 조금 넘던 길이에서 장장 90cm가 넘도록 자라났다. 놀라웠다. 재키의 콩나무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했다. 그러더니 거짓말 같이 크림색 꽃을 피웠다. 그동안 탱자에게 적절한 환경이 아니라서 자라지 못했음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봄을 맞은 탱자의 새로 난 연둣빛 잎과 연한 가시는 기존의 가지와 확연히 대비될 정도로 자라났다. 처음으로 식물인 탱자에게 미안했다. 


그런 탱자의 화분은 이제 다시 작아졌다. 탱자에게 물을 주는 남편에게 이젠 마당에 내다 심는 것이 어떻냐고 했다. 남편은 탱자를 바라보더니 오랫동안 집안에서 살았는데 좀 컸다고 갑자기 밖에 놔두면 혹 죽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망설였다. 특히 요즘은 햇빛이 너무 강해 탱자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설핏 웃음이 나오며 어이가 없었다. 탱자나무는 집 울타리로 심는 식물인데 밖에서 적응하지 못할 것이 어디 있겠냐며 탱자를 마당 적절한 곳에 옮겨 심자고 했지만 남편의 망설임으로 탱자는 결국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큰아들은 결혼해 분가했고 작은아들은 이제 졸업반이다. 군입대와 팬데믹을 겪으며 휴학을 몇 번 하더니 이제 4학년이다. 실상은 올 2월에 졸업했어야 하지만 학점이 부족해 졸업이 연기되었다. 졸업이 연기되었다는 말에 아들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짧은 욕 한 마디와 함께 학교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가 살라고 했다. 학교가 있는 안암동과 이곳 양평은 거리가 멀어서 아이가 힘들어했고 모르긴 몰라도 자주 수업을 놓쳤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아들은 집이 편하고 좋다며 거리가 멀어도 집에서 다니겠단다. 용돈을 버는 알바도 집 근처에 있고 생활비도 아낄 수 있는 집을 떠날 순 없다고 했다. 장학금을 받았으니 학비는 염려하지 마시라며 더 공부하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되도록 많은 강의를 들으려고 신청했다고 했다. 어이구, 이놈아, 참으로 고맙구나, 하니 뒤통수를 긁는다.


제 딴에는 실패를 만회하고자 하는지 열심한 모습을 보인다. 학생회 간부도 되었다고 하고 확인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긴 한다. 그러나 밤새 불을 켜두고 부스럭 거리며 들락거리는 아들이 신경 쓰여 잠을 설칠 때면 "나가, 이눔아!" 하지만 아들은 씩~  웃는 게 다다. 나갈 때 되면 어련히 나가겠냐며 있으라고 해도 안 있을 텐데, 그러지 말라고 남편이 한 마디 하자 아버지의 지청구를 듣게 한 것이 미안했는지 다가와 총각 냄새나는 몸으로 나를 끌어안았다. 


탱자나무도 많이 커서 마당으로 나가면 좋을 텐데 여전히 좁은 집안에 있다. 집안이 나은지 바깥 마당이 나은지 탱자에게 물어보고 싶은데 의사소통이 어렵다. 자고 있는 아들을 들여다볼 땐 마음이 훈훈하긴 하지만 곧 독립을 하겠지, 남편 말대로 나갈 때 되면 나가겠지, 하는 생각에 서운해진다. 나가길 바라면서도 벌써부터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뭔가. 식물을 사랑하는 남편이 탱자에게 갖는 마음도 이런 건가? 그래서 내보내는 것을 미루는 걸까. 어쨌거나 아직 때가 아닌 가 보다. 탱자나무도 아들도 아직 때가 아니어서 집에서 안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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