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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ul 09. 2023

마리아의 언어

색연필 그림일기 2



"나 해탈했잖아."

마리아는 자주 자신은 해탈했다고 말하곤 한다.


남편이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어 진종일 UFC를 보아도, 그래서 홀로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고 여러 번 언덕 위를 오르내리며 처리를 해도 "그러려니" 한다. 600평 너른 마당의 화초와 나무들을 돌보느라 가녀린 몸으로 영화의 빌런처럼 큰 전지가위를 들고 사다리에 올라가 부들거리며 소나무 가지를 잘라도 그 일을 하지 않는 남편이 섭섭하지 않다. 그런 남편을 바꾸려고 에너지를 쓰지 않는다. "그러려니" 한다. 남편이 심어놓기만 하고 돌보지 않는 화초와 나무들을 마리아는 돌보고 가꾼다. 바뀐 거 아니냐고 주변이 물으면 덤덤히 "자기 몫"이라고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까닭을 물으면 늘 해탈을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탈이 무엇인가. 원효 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했다는 그 해탈? 그래서 오랜만에 찾아봤다.


[해탈 - 解脫. 해방과 탈출. 굴레의 얽매임에서 벗어남. 속세의 속박이나 번뇌 등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는 편안한 경지에 도달함. deliverance ( deliver 전달, 배달, 분만, 인도하다  + ance 행위, 사실, 성질, 상태 )]


한 번은 얼굴이 핼쓱했다. 그 넓은 마당의 잔디를 이틀이나 깎았다고 했다. 남편이 여기저기 심어놓은 화초들을 요리조리 피하느라 몹시 힘이 들었다고 했다. 깎아놓은 잔디를 보니 마리아 답게 반듯하고 깨끗했다. "그런 건 남자가 좀 해야지." 하니 "에이, 내 일이에요." 한다. 그게 남자의 일이지 어찌 여자의 일이냐, 남편은 뭐 하고 있었냐, 하니 자기가 하는 것이 편하단다. 할 수 있는 사람, 할 마음이 있는 사람이 하는 거란다. "저 사람은 조금 모자라다 생각한다. 그래야 편하다."고 했다. 그렇게 해야 그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어서 편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고 마음이 고단하지 않단다. 뭐지? 이 경지는?


"당연한 게 어디 있어요?  없어요. 약한 사람이니까 보호해야지요. 너무 잘하려고 하지 마요. 아이처럼 즐겨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러려니~~ 해요. 그냥 좀 부족하구나~, 좀 모자라는구나~, 받아주세요. 그건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니에요. 그 사람 일이에요."  해탈한 마리아의 언어들이다.


나이 탓인가. 집중력이 떨어진 걸까. 자꾸 무언가를 잊는다. 어딘가에 지갑을 두고 오고 커피 마신 자리에 핸드폰을 두고 오는 일은 다반사다. 단어도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며 스스로 자조했더니 한 손을 들어 괜찮다는 손짓을 하며  "그럴 수 있어요. 그거 갖구 뭘~" 한다. 이쁘고 좋은 것을 보면 "어머~~" 감탄을 한다. 남이 가진 좋은 것이나 재주를 보면 부러워 하는 대신 "어머~~ 세상에~~ 어떻게 그런 재주를 가지셨어요?" 하며 감탄을 아끼지 않는다.


해탈하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하니 그냥 무시하면 된단다. 무시하고 신경을 쓰지 말란다. 상대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과 그 상황을 만들어내는 상대에게 마음 쓰느라 내 에너지를 쓰지 말라는 뜻이라고 해석되었다. "그러려니 해요", "그럴 수 있어", "나는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아"라고 생각하란다. "이건 특정한 누구의 일이다" 하며 따지지 말란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고자 원하는 사람이 하면 된단다.


식사를 하고 난 후 며느리가 아닌 시아버지가 설거지를 하는 것도 불편할 일이 아니란다. 훌륭한 시아버지라며 칭찬을 했다. 일하느라 늦게 퇴근한 며느리가  설거지를 하는 것보다 집에 있던 시아버지가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고 했다. 누구든 덜 약한 사람이, 힘이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했다.



마리아, 예쁜 모습을... 재주가 한스럽네요.


마리아는 체력이 좋거나 에너지가 많은 사람이 아니다. 팔과 다리는 길고 손목과 발목은 가늘다. 좋게 말하면 늘씬하지만 마른 사람이다. 마당일을 하고 나면 체중이 내려간단다. 주변에서 길쭉한 몸매를 부러워 하자 한 마디 한다. "남의 거 보지 마세요." 큰 키와 늘씬한 몸이 부러워서 그런다고 하니 남의 거 부러워하지 말고 자신에게 있는 부러운 모습을 보라고 한다. 당신이 얼마나 이쁜 모습인데 남의 모습을 부러워하냐, 하니 부럽다고 말하던 사람은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화장도 하지 않고 본인 머리도 스스로 자르며 흰 머리카락을 그대로 둔 채 염색도 안 하는 마리아.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신은 두 가지에서 자유로워진 것이라고 했다. 화장도 머리 염색도 안 함으로써 그 두 가지 일에서 해방된 것이란다. 단 것을 피하는 그녀는 달달한 아이스크림과 팥빙수를 좋아한다. 왜? 아이스크림은 단 것이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이라며 아이처럼 해맑게 맛있다고 몇 번을 감탄하며 먹는다. 그런 마리아가 나는 참 예쁘다.


그녀의 해탈은 포기일까. 체념일까. 그녀만이 터득한 회피일까. 그녀의 말 그대로 해방일까. 이런 의심은 그녀의 언어들이 일상안에서의 행동과 일치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해소된다. 마리아의 해탈은 말 그대로 해탈, 벗어난 것이다. 욕망과 번뇌, 갈등과 질투, 서운함과 의심하지 않는 당위에서 빠져나온 것이다. 그녀의 해탈은 특별한 상황에만 적용되는 편의적인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그녀 삶의 구체적 내용이다.


 "그러려니 해"는 아, 내가 옹졸했구나를,  "그럴 수 있어."아, 또 내가 속이 좁았구나로 이끈다. "부족한 사람도 있는 거지." 아, 내가 교만했구나를,  "당연한 게 어딨어?"에서는 아, 내가 타성에 젖어있구나를 깨닫게 한다. "힘이 많아서가 아니고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예요." 아, 나는 편견에 갇혀 있구나를, "그 사람이 제일 약하잖아요."라는 말에선 아, 내가 권력자구나. 그런데 배려가 없었구나,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몰래 부끄럽고 아팠다.


매일 대하는 가족과 친구들 사이의 관계, 어른과 아이 사이의 질서, 힘 있는 사람과 약한 사람 사이의 배려, 도덕적 당위의 정당성 등 일상의 질서는 매우 중요하다. 해탈한 마리아는 이 질서를 뒤집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초월한다.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에서, 모난 편협함에서 한 발 벗어나 바라보고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넘어선다. 그것들을 마리아는 내면화했고 그 내면화가 일상에서 지혜로 반짝인다. 그러니 그녀는 그녀 말대로 해탈한 것이 맞다. 반복되는 부정적인 감정과 습관, 일상성에 매몰돼어 함부로 질서라고 당연시 했던 것들로부터 벗어났으니 해탈이 아니고 뭔가. 해탈을 감히 입에 올리면 안된다는 금기와 옛날 이야기 속에서나 가능한 전설이라고 여기는 그것 역시 속 좁은 편견이 아닌가. 마리아는 이것 역시 가볍게 넘어선다. " 나 해탈했잖아."하며.


나는 마리아 곁에서 자주 부끄럽다. 타성과 편견에 빠져있는 나를, 경박한 나를 자주 들킨다. 그녀 덕분에 때때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의 언어들은 나를 일깨우고 내가 변화되도록 이끈다(delivery). 부정적인 감정과 타성에서 벗어나도록 이끌어준다(ance). 더불어 나의 내면에도 마리아의 언어들이 자리 잡으며 어제보다는 덜 묶인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 나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으로 묶어두지 않고 나 역시 나의 경계를 넘어서기에, 어제의 모자란 나를 넘어섰기에 이것 또한 나의 해탈이 아닌가. 


마리아, 마리아의 언어들이 내겐 스승이네요. 해탈한 그대와 함께 할 수 있어서 나는 참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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