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내리는 날 친구들과 수제비를 먹으러 갔다. 친구들은 생일을 앞둔 내게 미리 밥을 사주겠다고 했다. 뭘 벌써~~ 많이 남았는데, 왜?? 비가 오잖아. 두 눈에 물음표 가득한 나를 보더니 그냥 가자며 나 먹을 밥값은 내지 말란다. 그래? 그렇다면 가야쥐~~근데 궁금해서 그러는 건데 내 생일하고 비하고 뭔 상관이여? 상관없어. 비 오니까 수제비를 먹어야지. 간 김에 미리 생일 축하나 하자고. 크크크.
식당 메뉴엔 수제비와 함께 해물파전이 보였다.
"비 오는데 파전도 하나 먹어야지."
"그려."
"사장님, 동동주 한 동이도 주세요."
친구들은 생일을 축하한다며 어머니 젖빛 같은 뽀얀 동동주를 들이밀었다.
"축하해!"
"헐, 자기 환갑이야."
"... 그러네... 헐~.... "
60살 축하해!
친구들은 파전에 동동주를 맛있게 먹었지만 생일 축하 당사자인 나는 목만 축이고 마시지 못했다. 하필 내가 운전을 했기 때문이었다. 동동주 한 잔에 빈정이 상한 나는 집으로 오면서 친구들에게 물었다. 생일이라고 내가 축하받은 것이 맞냐. 해물파전의 기름기가 아직도 입안에 남아있어 느끼하다. 동동주를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일이면 동동주 한 동이는 내가 마셔야 하는 것 아니냐. 친구들은 까르르 웃었다. 친구들이 웃으니 까짓 동동주 한 잔 제대로 먹지 못한 것 따위 억울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60세 생일 축하는 수제비 한 그릇으로 끝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60이라고 어수선하게 불 붙이기 어려운 초를 잔뜩 꽂아주며 노래 불러주지 않아 좋았다. 저 좋아 사 주는 선물을 주지 않아 더 좋았다. 다만 "60년 사느라 고생했어." 한 마디가 훅 마음에 들어왔다. '오다 주웠어'하는 투의 무심한 말이 마음에 들어와 지금껏 오래도록 남아있다. 60년 아니 70년 혹은 그 이상 다들 사느라 고생하지 않는가.
그렇게 말하는 친구들도 역시 사느라 힘들게 걸어온 60년의 시간이 곧 다가온다. 친구들 생일에 나 역시 "사느라 고생했어."라고 무심하게 어깨 두드리며 말해줄 것이다. 친구들의 60년 기념일은 겨울이니 그땐 눈 오는 날을 잡아 뜨끈한 동태탕을 먹어야겠다. 시린 동동주 한 동이도 잊지 말아야겠지. 그때도 내가 운전을 하리라. 친구들이 동동주 한 동이 다 비울 수 있도록, 그들의 남은 길도 무사하도록. 아주 조금 마음에 위로로 남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