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환갑을 맞은 어머니는 연한 옥색 깨끼 한복을 맞춰 입으시고 경복궁 너른 잔디밭에서 아들, 며느리, 딸, 사위, 손자들을 거느리고 가족사진을 찍으셨다. 아버지와 우리들은 같은 한복을 떨쳐 입고 몇 대의 택시에 나눠 타고 갔는데 사진을 찍기 위해 모종의 장소까지 가는 길은 우왕좌왕 모였다가 흩어지고 다시 불러 모으며 소란을 떨어야 했다. 그 번거로운 행사에 싫증이 난 아버지는 다정한 포즈를 요구하던 사진사에게 결국 화를 내셨고 그 덕에 그날의 사진은 영 어색한 표정들을 담고 말았다. 그리운 기억이다.
사진관이 아니고 왜 하필 경복궁 잔디밭이었을까. 지금 생각하니 어머니의 작은 소망이었던 거다. 어머니는 큰 저택에나 어울릴 커다란 액자의 가족사진을 당신 방에 걸어놓으셨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樂山樂水(요산요수)의 액자는 지하실로 내려갔고 이틀인지 사흘인지 연신 손님들이 찾아왔다. 손님들이 오실 때마다 어머니는 가족사진을 자랑하셨고 사람들이 좋다, 부럽다 하는 소리를 기다렸다는 듯 만족스럽게 웃으셨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 뒤에서 개구진 표정으로 혀를 낼름 하시며 어머니를 놀리셨는데 그것은 '좋으냐? 이제 만족하지?' 하는 뜻이었다. 어머니를 놀리는 아버지의 마음은 아마도 사진을 찍던 날의 번거로움과 손님들 앞에서 호호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버지껜 귀여운 허영심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러나 어머니보다 먼저 환갑을 지내신 아버지의 생신도 그 못지않게 시끌벅적했으니 아버지 뒤에서 낼름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의 환갑잔치로 인한 최대 수혜자는 나였다. 선물로 들어온 양주가 꽤 많았는데 그 양주들을 몰래 가져다 마셨던 것이다. 어느 날 밤늦게 들어와 불을 켜니 책상 위엔 시바스 반 병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는 알고 계셨다. 아버지....
그때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60 생일을 맞은 나는 아버지처럼 회관을 빌리지도 않았고 어머니처럼 한복을 차려입고 가족사진을 찍지도 않았다. 두 아들과 며느리는 잔칫상 대신 우리말로 처음 공연된다는 유명 뮤지컬 티켓 두 장과 돈봉투를 주었고 남편은 갖고 싶은 접이식 자전거를 사 주는 것으로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친구부부가 축하한다며 인천에서 찾아와 동네 유명한 절집 앞에서 사준 산나물 보리밥이 내 60번째 생일상이었다.
생일에 먹은 보리 비빔밥 어린 날 보았던 60은 엄청난 나이였다. 60이 되면 인생의 안개쯤은 걷히고 '욱'하는 감정쯤은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일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고 너그럽게 뭐라도 하나쯤 내려놓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60쯤 되면 참을성도 좀 생기고 관계도 인품도 조금은 유연하고 나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했지만 착각이었다. 여전히 화나는 일과 어려운 일이 생기고 매 번 새롭고 낯선 상황 앞에서 허둥대며 관계에 서툴다.
60살쯤 되면 다른 것은 몰라도 현명해지고 싶었다. "나이 먹었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조심성이 많아질 뿐이다." 헤밍웨이의 말이 맞다. 그가 했다는 말을 되뇌어 보니 60살은 내 삶에서 처음이 아닌가. 그 어느 나이는 처음이 아니었던가. 어리석음은 영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부조리한 것은 삶이 아니라 인생이고 그 안에서 나는 늘 서툴고 성급하며 많이 미숙했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어떨까. 내가 저지른 시행착오와 실수들을 극복할 수 있을까. 다른 선택을 한다면 내 인생은 장밋빛 인생일까. 인생을 다시 살아도 나는 비슷한 실수를 할 것이고 시행착오는 여전할 것이 뻔하다. 그리고 인생은 장밋빛이 아니다. 60이라고 삶에 노련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도 60이 된 기념으로 조금만 어리석었으면 좋겠다는 바람 하나를 품어본다. 적어도 내 지난날 나의 어리석음을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을 터, 그 앎만큼 조금이라도 덜 어리석을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리석음의 진창에 빠져 혀를 깨물던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니 적어도 그 기억이 아주 조금이라도 내게 길을 보여주지 않을까. 나는 계속 나이 들어갈 것이고 내 몸이 더는 남루해질 수 없을 때까지 살아가겠지만 나는 안다. 그 어느 나이에 상관없이 그 나이의 생은 순간순간 특별하고 충만했다는 것을. 그렇기에 그 특별한 시간을 살아내는 우리 모두 또한 특별하고 아름답다.
60에 이른 지금까지 대부분 내 힘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 나를 버티게 해 준 가족들과 친구들,
한 줄기 삶의 비밀을 가끔씩 보여주며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게 하신 하늘의 섭리에 감사하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