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원 강사로 논술 지도로, 과외 선생으로 바쁘게 지냈다. 작은 아이가 생후 4개월에 감기에 걸려 기관지 천식을 앓더니 폐렴과 천식을 오가며 자주 아팠다. 아이가 10살이 될 무렵까지 병원 생활을 했고 우리는 돈에 쪼들렸다. 남편의월급으로는 병원비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무슨 자존심이었는지 생활비가 없어도 나는 친정에 손을 벌리지 않았다. 근면 검소한 남편 덕분에 우리는 큰 빚 없이 아이들을 키웠지만 힘든 건 사실이었다. 그런 나를 보며 어머니는 늘 고생한다며 안타까워하셨다. 고생하는 자식이 안타까운 어머니의 마음이야 알지만 어머니가 나를 안타까워하실 때마다 나와 내 아이들이 불쌍했고 내 삶이 남루했다. 이런 마음을 어머니는 아셨던 것일까. 그런 어머니가 "넌 고생한 게 아니고 열심히 산거야."라는 멋진 말씀을 하셨으니.... 어머니 말씀은 눈물이 날 만큼 큰 위로였고 치유였다.
우리는 점심으로 나온 고등어 한 토막을 사이에 두고 창이 붉게 물들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무분별한 감정의 소유자며 이성적인 대화는 어려운 분이라고 치부했던 나를 후회했다. 어머니는 내 취미나 습관은 모르실지언정 나를 잘 알고 계셨다. 그것은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통찰이었다. 단 한 번도 내 편이 아닌 적이 없었고 우리는 같은 엄마로서, 여자로서 삶을 견딘 동지였다. '넌 열심히 살아온 거야.'라는 말씀엔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들고 골목길을 걷거나 밤을 새워 한복을 짓는 젊은 날 어머니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어머니 또한 고생한 것이 아니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신 거라고, 날마다 고단한 삶을 견디는 투사였고 끝내 승리하셨다고, 그러니 아직도 철들지 못한 우리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감사와 존경을 받으시라고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나처럼 말없이 창밖을 보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부모 자식 간이라고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무조건적인 관계는 없다. 한 집에 사는 가족이라고 해서, 피를 나눈 혈연지간이라고 해서 사랑이 거저 실현되거나 자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습관적인 관계를 발전시키려면 순진한 애정으로 변덕스럽지 않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진심을 담은 언어로 자주 표현해야 한다. 도덕적 의무를 앞세우기 전에 한 인간에 대한 실존적 연민과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인내 그리고 관계를 부드럽게 이끄는 유머가 필요하다. 연민은 마음을 움직이고 인내는 실천할 힘을 주며 유머는 어항의 물을 갈아주듯 관계를 환기시킨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그렇게 성실히 가꾸고 돌봐야 한다. 우리의 행복과 불행은 그들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끝내 드시지 못한 고등어구이를 보며 관계가 어쩌고저쩌고 잘 알고 있으면서 어머니와 나 사이를 위해 애쓰지 않았다는 것이 마음 아팠다. 알고 짓는 죄가 더 크다고 하지 않던가.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께선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고 하셨다. 나의 사랑은 아직도 머리에 머물러 있고 이제야 가슴으로 내려 올 채비를 하는 듯싶다.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오기 시작하면 한 사람의 자잘한 인간적 결함들에 대해선 관대해진다. 나는 어머니를 오해한 것들에 대해 고백했고 다정한 딸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 니가 고등어를 못 먹는구나. 그래서 생선을 안 먹는 거였어. 나는 니가 까다롭다고 생각했어."
" 엄마는 안 드시는 거 없어요? 아, 엄마는 국을 싫어하잖아. 뜨거운 것도 싫어하고."
" 아니야, 이젠 안 그래. 나 국 좋아해. 뜨거운 건 싫지만. 너랑 니 아부진 술꾼이라 국 좋아하지. "
" 맞아."
" ㅎㅎ 너 술꾼인 거 동네에서 나만 몰랐어. 니가 멀쩡한 얼굴로 다녔으니."
" ㅋㅋ 아버지랑 맥주집에서 마주친 적도 있었어. 아버지가 술 값만 내고 나가셨어. ㅋㅋㅋ"
" 난 몰랐어. 윤씨들 술 좋아해. ㅎㅎㅎ"
" 내가 수녀가 안돼서 아직도 서운해요? "
" 아니야. 너 결혼 잘했어."
" 에이~ 가난한 남자라고 싫어하셨잖아."
" 그땐 그랬지. 내 새끼 고생하니까. 근데 ㅇㅇ아빠 훌륭한 사람이야. 진국이잖니. 말없이 다 손보고 치우고, 말없는 사나이야. ㅎㅎ. 너 존중하고. 주변 불편하게 안 하고, 그런 사람 없다~."
"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마워요, 엄마. "
" 아니야, 고맙긴. 내가 고맙지. "
" 자매님, 이젠 제 몫까지 고등어 다~ 드세요~."라고 말하니 " 네~. 제가 다 먹겠습니다~"라며 어머니가 웃으셨다. 아이처럼 웃으셨다. 당신보다 크고 힘도 센 자식을 여전히 염려하시면서 웃으셨다. 그놈의 고등어는 왜 그런 거냐며 애꿎은 고등어를 탓하며 고등어 대신 다른 걸 많이 먹으라고 자꾸 권하셨다. 조금 덜 먹어도 되는 몸이건만 어머니는 자꾸만 더 먹으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