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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an 07. 2024

동네에 썰매장이 생겼다

색연필 그림일기 2


뭐지? 야시장이라도 열렸나? 도로 옆, 동네가 시작되는 곳에 보이지 않던 만국기가 나풀거린다. 어렸을 때 논에다 물을 대고 얼린 스케이트장의 만국기와 같다. 설마 스케이트장인가? 평소의 무관심한 태도와 르게 호기심이 생겼다. 주변에 차를 대고 내리니 "00리 썰매장"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예전처럼 논에다 물을 대고 얼린 썰매장이다. 얼핏 보아도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얼음은 아니다. 영상과 영하로 오르내리는 날씨 때문에 얼음은 풀렸다 녹았다를 반복했는지 표면이 울퉁불퉁하다. 썰매장엔 이용객이 별로 없다. 특히 설매장에 제일 먼저 달려와야 할 어린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옷을 잔뜩 껴입고 느릿느릿한 움직임으로 썰매를 탄다기보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만 예닐곱 명뿐. 간간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불어서 만국기는 쉴 새 없이 펄럭이는데 사람이 별로 없어서인지 썰매장이 쓸쓸하다. 옛날 생각이 다.


방학 내내 동네아이들로 북적였던 스케이트장이 집 근처에 있었다. 창문을 열면 저만치 만국기가 펄럭이는 게 보였다. 스케이트장의 얼음이나 눈을 모아 타원형으로 줄을 긋고 바깥 트랙은 스케이트, 타원형 안의 중심에선 썰매를 탔다. 있는 집 애들은 스케이트를 탔고 없는 집 애들은 형이나 아버지가 만들어 준 썰매를 탔다. 나는 둘 다 없었다. 둘 다 없는 주제에 썰매보다는 스케이트가 타고 싶었다.


세 살 위인 오빠에겐 순영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얼굴도 잘 생기고 키도 큰 부잣집 아들이었다. 순영이 오빠는 동네 고만고만한 남학생들 중의 짱이었다. 키도 작고 가난한 집 아들인 우리 오빠는 그토록 바라던 큰 키 대신 눈만 커다란 학생이었다. 순영이 오빠 패거리와는 어울릴 수 있는 공통점이 없었는데, 가만히 엿보니 순영이 오빠가 우리 오빠를 보호해 주고 있었다. 왜? 오빠는 자기가 근성 있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했다. 뭔 소린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오빤 그 당시 권투에 흥미를 느끼며 홍수환 선수 같은 권투 선수가 되어 돈을 벌고 싶어 했다. 집안의 장남 노릇을 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 오빠를 순영이 오빠는 의리 있고 근성 있는 놈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순영이 오빠를 곁에 둔 덕에 오빠는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


그 순영이 오빠는 우리 형제들에게도 잘 대해주었다. 7살이 많은 언니는 독서광이었는데(언니는 당시 할 일이 독서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 방에는 언니가 빌려와 읽는 책들이 늘 많았다. 상록수, 데미안, 무정, 광장, 김약국집 딸들, 유년의 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등등이 언니가 읽던 책들이었다. 순영오빠는 그런 우리 집을 가난하지만 정신은 가난하지 않은 집이라고 생각하며 약간의 존경심을 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책 한 권을 들고 훑어보더니 '이런 훌륭한 책을 읽는 집은 니네 집뿐'이라고 했다. 순영이 오빠는 동네 제과점에서 사 온 센베이 과자도 갖다주고 여름이면 아이스께끼도 사 주었다. 나는 순영이 오빠를 좋아했다. 그런 순영오빠가 어느 날 스케이트를 가져왔다. 본인이 신던 것을 가져왔다며 우리 보고 타라고 했다. 내가 신어보니 많이 컸다. 실망스러웠다. 그러자 오빠는 양말을 가져오라고 하더니 양말 두 개는 신기고 하나는 스케이트 뒤축에 넣어주었다. 그리곤 끈을 최대한 조여서 묶어주며 일어나 보라고 했다. 스케이트를 신고 일어서니 생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는 즉시 스케이트장으로 달려갔다. 눈이 큰 우리 오빠가 먼저 스케이트를 탔는데 그 타는 모습이 당시 엄마의 표현대로 옮긴다면 꼭 '미친놈' 같았다. 스케이트에 서툴었던 오빠는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무조건 뛰어나갔는데 마치 바람에 까불리는 주유소 인형처럼 팔을 휘젓는 모습이 엉망이었다. 그 모양을 본 엄마가 꼭 미친놈 같다고 한 것이다. 우리는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면서 허리를 젖혀가며 낄낄거렸다. 도저히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오빠가 하듯 미친놈처럼 탈 수는 없었다. 순영이 오빠 앞에서 웃음거리가 되는 건 더더욱 싫었다. 나는 스케이트 타는 사람들 중에서 잘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했다. 스케이트는 일자로 미끄러지지 않고 양 발이 V를 만들며 미끄러지는 거였다. 그러려면 허리를 숙여야 했다. 코너를 돌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 허리는 낮추어야 하는구나. 멈출 때는 스케이트날을 옆으로 돌려 브레이크를 거는구나. 오빠가 스케이트에 싫증이 나 내게 타라고 내주었을 때(오빠의 스케이트는 끝내 나아지지 않았다) 나는 이상하게 자신이 있었다. 비록 스케이트 신발이 컸지만 양말을 뒤축에 넣고 끈으로 최대한 발을 묶어서 제법 안정감이 있었다. 나는 처음 타는 사람답지 않게 허리를 숙이며 천천히 미끄러지면서 넘어지지 않고 무사히 트랙을 돌았다. 그러나 그 추운 겨울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만큼 힘들었고 발에 맞지 않는 스케이트 때문에 발목이 아팠다. 스케이트를 벗으면 발의 감각이 없어서 오히려 넘어질 것 같았다. 그해 겨울 방학엔 날마다 스케이트를 타느라 방학 숙제도 안 하고 일기도 쓰지 않아서 개학 하루 전에 벼락치기로 해치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스케이트를 제법 잘 탄다.


지난해 연말, 둘째 조카가 결혼을 했다. 결혼식에 가면서 우리 집 경조사엔 빠지지 않는 순영 오빠가 생각나 얼굴 한 번 보겠네, 싶었다. 식이 끝나고 벙글거리는 오빠에게 순영오빠가 보이지 않는다고 하자 오빠는

"너한테 말 안 했구나. 순영이 죽었어."

"뭐?.... 왜?"

"암이었어. 췌장암."

"언제?"

"1년 넘었어. 많이 아팠지."

".... 그랬구나.... 오빠, 뱃살 좀 빼~에. 삼겹살 그만 먹고 건강 관리 좀 하구~... "

"알았어~~^^"

오빠의 뱃살이 그만 걱정되었다. 죽은 순영이 오빠의 나이는 62세였다.


순영이 오빠는 이제 통증도 없고 편안하시려나.... 부디 그랬으면.... 썰매를 타던 할아버지 한 분이 썰매장 입구에 서 있던 나를 보고 들어와 타라고 다. 썰매도 공짜로 빌려준다고. 할아버지는 환히 웃으셨다. 썰매장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모두 웃고 있었다. 나는 고맙다고 말하면서 차로 돌아왔다. 스케이트를 처음 타던 날이 선명하다. 늙거나 병들지 않고 의리 있던 중학교 3학년 순영이 오빠랑 눈이 크고 착했던 우리 오빠의 앳된 모습이 보였다. 기온이 급강하 한 날, 썰매장을 천천히 지나며 보니 썰매를 타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차 안의 온도는 -14도. 추워서 손님이 없구나. 순영이 오빠가 다시 생각났다.


예전엔 동네마다 하나씩 꼭 있던 썰매장. 지금은 흔치 않은 썰매장이 올 겨울 우리 동네에 개장을 했다. 썰매장엔 만국기가 휘날리고 썰매는 공짜로 빌려준다. 올 겨울, 주변에 있을지도 모를 썰매장이나 스케이트장이 있다면 꼭 한 번 가보시라. 어린 날처럼 얼음을 지쳐 보시라. 돈 많은 기업에서 만든 스키장이나 실내 스케이트장과는 다른 정취가 있었음을 기억해 낼 것이다. 겨울 찬 바람에 볼이 빨갛게 되어도 이마와 등줄기엔 땀이 흘렀고 감기 한 번 앓지 않았던 그때.... 아, 스케이트 타고 싶다.... 미친놈처럼 달려 나가다 코너링을 하지 못해 넘어지던 울 오빠 모습과 그걸 보며 빙글빙글 웃던 순영이 오빠도 다시 보고 싶다.



동네 썰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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