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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un 17. 2023

발차기 대회

색연필 그림일기 2


수영에 진심인 6명이 모여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발차기 대회를 열었다. 수영장 25m를 누가 빨리 가는가 하는 경기였다. 대회에 내 건 상품은 각자가 눈독 들이고 있는 이모티콘을 수여하는 대회로 이름하여 "이모티콘 배 발차기 대회".


우리 중 제일 빠른 기록은 1번(레인에서 제일 잘하는 사람을 보통 1번이라고 부름)이 보유한 24초였다. 우리는 이 24초가 목표였다. 내 기록은 30초. 며칠간 발에 쥐가 나도록 연습하여 5초를 줄인 기록이었다. 


수영에서 발차기는 기본이다. 팔과 손이 배의 노라면 발차기는 엔진인 모터라고 할 수 있다. 초급자들은 호흡을 배우고 발차기를 시작하는데 열심한 노동에 비해 잘 나가지 않아 싫어한다. 초급을 떼도 발차기는 급수에 상관없이 힘들다. 물속에서의 신체 역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기술과 경험 없이 힘으로만 하는 발차기는 잘 나가지 않을 뿐 아니라 자칫하면 허리에 무리가 갈 수도 있다.


발차기는 코어의 힘으로 해야 한다. 아랫배에 힘과 에너지를 모으고 팔을 곧게 뻗은 채 상체를 숙여야 다리가 가라앉지 않는다. 만일 이 자세에서 코어의 중심이 잡혀있지 않으면 힘은 힘대로 들고 허리가 아프다. 발목은 곧게 펴고 코어에 집중하면서 다리 전체를 이용하는데 무릎은 조금 구부려 주는 것이 요령이다. 당연히 연습이 필요하다. 


이때 정말 중요한 것은 물을 차면 안 된다는 것이다. 발등으로 지긋이 물을 눌러주면서 뒤쪽으로 걷어차듯 보내주어야 한다. 수면 위에서 물이 다 튀도록 첨벙거려서도 안 되고 다리가 물에 잠긴 채 차도 안 된다. 다리와 발이 살짝 잠기게 한 상태에서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고 빠르게 물을 누르며 걷어 차 주어야 한다. 뭐라는 거야? 그냥 발을 차면 되지 뭐가 이렇게 어려워?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다. 용서하시라. 원리가 그렇다. 


물은 유동의 액체지만 단단하거나 묵직하게 손이나 발에 걸리는 물질이다. 물은 묵직하게 몸에 걸리고 또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거나 몸을 타고 흐르기도 한다. 물은 몸을 가로막기도 하지만 몸을 밀어주기도 한다. 압력을 가하기도 하고 부드럽게 미끄럼을 타게도 한다. 물을 눌러 주어야 한다는 것은 물의 저항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물을 눌렀을 때 마치 탄성을 지닌 물체가 누른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물체를 튕겨내듯이 물도 그렇다. 물의 성질을 모르고 힘으로만 하면 물은 저항하고 가로막지만 지그시 누르며 그 저항을 이용하면 나를 자유롭게 풀어주고 밀어주며 물고기처럼 한 마리 고래처럼 유영하게 해 준다. 


보통 수영은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지 않는 운동이라고 말하지만 이 역시 오해다. 쉬운 방법으로만 수영을 하기 때문에 다이어트가 되지 않는 것이다. 수영에 조금 익숙해지고 초급을 뗀 사람들은 대부분 발차기에 소홀해지는데 각 영법을 익히기 위해 노력하면서도 발차기는 하지 않는다. 수영의 기본인 발차기는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든지 간에 항상 기본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야 근력도 생기고 물에 대한 감각을 익히며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꾸준히 제대로만 한다면 당연히 체중 조절도 가능하다. 발차기를 하고 나서 넓적 다리와 종아리를 아우르며 다리 전체가 뻐근한 느낌을 받아야 제대로 발차기를 했다고 할 수 있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세상 원리가 수영에선 발차기라고 하겠. 사설은 이쯤 하자.


회원들과 함께 초를 재가며 며칠을 연습했는데도 기록은 단축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터득한 비법을 얻어 들으며 아무리 쥐가 나게 발을 차도 24초는커녕 30초에만 머물러 있었다. 이런, 꼴찌는 맡아 놓았지 싶었다. 기록이 비슷한 사람이 있긴 했지만 그녀는 40대의 젊은 피니 굳이 해 보지 않아도 내가 꼴찌가 될 것이 뻔했다.


막상 약속한 날이 되자 이게 뭐라고 두근거렸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우리 오늘 대회 열어요"광고를 했다. 사람들이 키득거리며 즐거워했다. 나를 비롯한 회원들은 모두 최선을 다 했다. 평소보다 더 크고 요란한 물소리가 회원들의 마음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제1회 이모티콘배 발차기 대회"는 회원들의 탄식과 웃음으로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예상대로 24초의 기록이 1등을 했고 나는 1초를 단축한 29초로 4위를 했다!! 한 사람은 무릎이 아프다며 기권을 했고 남 모르게 견제했던 40대의 젊은 그녀가 꼴찌를 다. 핫핫! 그녀는 너무 힘이 없어 막판 스퍼트를 내지 못했다. 회원들은 대회 당일 1초를 단축한 나를 칭찬해 주었다. 부상인 이모티콘은 24초의 그녀뿐 아니라 모두에게 주어졌다. 첫 대회를 기념하여 회원 모두에게 참가상으로 선물을 한 것이다. (우리는 이모티콘을 선물하느라 회비의 50%를 지출했다. 우리의 월 회비는 5,000원이었다. 와우, 플렉스!)


중년 이후의 삶은 권태로워지기 쉽다. 새롭게 흥미를 끄는 일도 없고 주변 관계도 소원해진다. 적극적인 성향의 사람이 아니라면 사회 활동이 줄어 체력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숨 쉬는 것 자체가 피곤해지기만 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은 지루하고 사는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그랬다. 일에 치여 살 때는 몰랐지만 일에서 놓여나니 무기력이 몰려왔다. 그것은 차라리 늪이었다. 내게 수영은 이런 것들로부터 다시 일어서게 했다. 늪에서 빠져나왔고 기분이 환해졌다. 중년엔 누구나 건강을 염려하고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되는데 다행히 좋은 운동을 찾았으니 이 아니 행운인가. 건강을 위해서든 일상의 활력을 위해서든 변화를 찾고 싶다면 수영을 시작하시라. 물에 대한 특별한 트라우마가 없다면 대부분 수영을 즐기며 일상의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가까운 수영장을 찾아 등록을 하고 어서 발차기를 시작하시라.


다음 대회는 2인 1조 경기라는데, 흠..... 먼저 이모티콘을 봐둬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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