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연필 그림일기 2
수영 친구들과 매일 수영하는 것은 나의 루틴이며 하루를 시작하는 중요한 일과다. 보통 80- 90분 정도 수영을 하는데 끝나면 배가 몹시 고프다. 과장을 좀 하면 눈이 퀭해지는 경우도 있을 정도다.
수영을 하고 나서 배가 고픈 데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고 한다. 수영은 고강도의 전신 유산소 운동이다. 체중 70kg의 사람이 자유형을 1시간 했을 때 보통 500~700kcal가 소모된다. 이는 같은 시간동안 하는 등산과 동일하며 달리기(400~800), 자전거 타기(500~900)와도 유사한 칼로리 소모량이다. 팔, 다리, 코어의 모든 근육을 사용하는 수영은 심박수를 빠르게 상승시켜 칼로리를 소모하는데 근육은 운동을 통해 에너지를 소모하고 이를 보충하기 위해 간과 근육에 저장된 글리코겐을 사용한다. 또한 수영은 보통 찬물에서 하게 되는데(더운 온도의 물에선 수영하기 힘들다) 물속 온도에 영향을 받는 신체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추가적인 칼로리를 소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용된 글리코겐은 탄수화물 섭취를 통해 다시 보충해야 하는데 이때 배고픔을 느끼는 것이다. 에너지 소비로 인한 배고픔은 소모된 글리코겐을 다시 채워 넣으라는 신호이다. 그래서 수영을 하고 나면 배가 고프고 밥이 그렇게 맛있는 거다.
샤워실로 향하면서부터 무엇을 먹을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그러다 누군가 점심을 내겠다고 하면 모두 환호하며 반기는데 그 누군가의 빈도가 제일 많은 사람은 강여사님이다. 같은 강습반 친구의 어머니 되시는 강여사님은 늘 손수 만든 나물이나 김치, 쌈 채소, 김치 찌개 등을 아낌없이 내놓고 대접하신다. 그야말로 집밥인데 이 강여사님 또한 음식에 진심이라 재료며 양념이며 허투루 만드는 경우가 없다. 그 맛은 또 얼~마나 맛있게요! 강여사님 집밥을 먹을 때마다 횡재하는 기분이 든다. 그뿐이 아니다. 음식이 맛있다고 하면 아낌없이 싸주시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그 댁에 가서 음식이 모자란 적이 없었다.
오늘도 수영이 끝나 배고픔에 허덕이는 중생들을 가엾이 여기신 강여사님, 나물을 해놓았다며 가자고 하신다. 예전엔 신세를 지는 것 같아 사양을 하곤 했지만 넉넉한 품을 지닌 강여사님을 익히 알게 되었기에 환호하며 댁으로 갔다.
그런데 이 강여사님, 오늘 내놓으시는 반찬이 심하기 그지없다. 무려 11가지의 각종 나물이 끝없이 차려진다. 두릅 무침, 궁채 나물, 흰민들레 무침, 머윗대, 돌미나리, 가시오가피순, 열무, 취와 참나물, 오래 끓여 흐물거리는 김치찌개까지! 아, 돌나물 물김치도 있었다. 연휴 동안 만드셨다며 내놓으시는데 입이 떡 벌어지면서 동시에 젓가락을 든다. 맛은 말해 뭐 해. 말하는 시간에 먹는 게 남는 거다! 특히 고추장에 무친 가시오가피순과 콩가루와 들기름 향이 진한 궁채나물은 진미였다. 체면도 없이 밥과 함께 흡입하고 배를 두드렸다. 신기하게 강여사님 밥은 많이 먹어도 속이 편하다.
잘 먹었다며 일어서는데 맛있게 먹어서 조금 쌌다며 가시오가피순 무침과 딸기잼을 주신다. 나뿐만이 아니라 함께 온 친구들 모두 조그만 봉지 하나씩 들고 있었다.
집으로 오며 생각해 보니 단순한 밥상이 아니다. 손수 캐서 다듬고 각 나물 특성에 맞춰 데치고 쓴맛을 빼느라 담가놓고 각기 다른 양념으로 무치고....사람들을 먹이겠다는 마음에는 흉내낼 수 없는 애정과 봉사가 있다.
강여사님,
오늘도 염치없이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