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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짧은 생각

그렇지 않니? 개야

짧은 생각

by Eli


우리 집 개는 눈 뜨자마자

밖으로 나가 볼 일을 봐야 한다.

이 눈을 뜬다는 것은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다.

내가 눈을 뜨고 일어나지 않으면

우리 집 개는 진즉에 눈을 떴어도

눈을 뜬 것이 아니다.

이것은 습관이 되었고

이 습관은 하루의 시작이라는 일정한 리듬을 만들었기에

꼭 그 리듬대로 해야 한다.

만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개와 함께 나가는 것이 싫다면

눈 뜨는 것을 늦추면 된다.


이 리듬을 깨고 싶었던 나는

눈을 뜨고 일어나 거실을 어정거리고

테이블을 정리하며 커피를 내리는 등

시간을 끌었다.

우리 집 개는 아주 안달이 나서

끙끙거리다가 낑낑거리다가

급기야 "멍"하고 짖었다.

말 그대로 똥 마려운 개가 되어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했다.


그 모습을 보는데 왜 내 모습이 보이나.

나는 우리 집개에게 말하는 것인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하기 시작했다.


"개야, 때론 말이야.

매일 해 오던 것이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는 거야.

눈을 뜨자마자 나가는 것은

사람인 나에겐 좀 힘든 일이라고.

갑자기 생경한 일이 생길 수 있고

다른 생각이 날 수도 있는 거거든.

어제까지 늘 해오던 일상 속 리듬과

결별해야 할 때도 있는 거라구.


일상의 리듬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시간을 확인하고

이젠 없어진 시간에 쫓기며 불안해지기도 하고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내 시간과 관계,

나를 유지하던 생활의 리듬이 무너졌다고 생각할 때는

화가 나 돌멩이를 걷어차기도 하지만

그게 말이야, 또 익숙해져.


무엇이든 어떤 것과 결별할 때는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일이야.

그러니 그렇게 너무 안절부절못하거나

낑낑 대거나 큰 소리로 짖지는 마.

일상의 리듬은 언제든 리셋될 수 있는 거야.

세상에 고정된 것은 없어. 늘 변한단다.

그렇지 않니? 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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