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 3일 그 후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작심 3일을 반복한 지 3주가 지나고 있다. 오전에 숲에 가지 않는 날은 해가 지기 직전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동넷길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적당히 있어서 걷기엔 아주 그만이다. 길이도 약 6km 정도라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이 소요되어 부담스럽지 않다. 앞산을 넘어 멀리 옆동네까지 간 다음 전철역 한 구간을 다시 되돌아 온적도 있다. 9km에 해당하는 거리를 질풍처럼 걸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와~~ ! 2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평소에 차로 지나다니던 길을 걸어 왔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걷기가 새 습관으로 형성되고 있다.


낮에 걷지 못하면 저녁에 차를 가지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으로 간다. 공원은 밤에도 환해서 비교적 안전한 생각이 든다. 걷다보니 공원 한 쪽이 조금 소란스럽다. 중년의 부부들로 보이는 커플 몇이 손뼉을 치며 통과했네,어쩌네, 하며 웃고 있었다. 사람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남자의 등 뒤에 숨는다.

공원 안엔 이런 것이 설치되어 있었다.


"당신의 건강은 안녕하십니까?"


통나무 인바디

사진을 찍는 남편과 가을을 즐기러 간 나들이에서 똑같은걸 본 적이 있다. 그때 남편은 '표준'구간을 여유롭게 통과했지만 나는 '표준'에서 걸려 빠져나가지 못했다. 남편은 재미있는 장면이라며 '통통'구간을 통과하는 내 모습을 킥킥거리며 찍었다. 살을 빼야겠다며 툴툴거리자 아프지 않으면 된 거라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저런 것은 누가 생각해 낸 걸까. 저기에 쓰인 기준은 합당한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은 모두 '날씬'을 선호하고 자신의 몸이 날씬 구간을 가볍게 통과하길 바랄 것이다. 나 또한 다르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적인 기준을 무시하지 못한다. 특히 건강이나 미에 관한 것은 더 그렇다.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시대마다 그 흐름이 다르긴 하지만 질병 없이 건강하게 산다는 것과 아름다움에의 추구는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건강의 필요충분조건이 '날씬'이라는 몸매를 요구한다는 게 문제다. '날씬구간'을 통과하지 못해도 충분히 건강하게 균형잡힌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은가. 내가 동의하지 않는 기준 앞에서 왜 얼굴을 가리며 부끄러워 해야 하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건강한 생활습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일상을 성실히 보내는 사람들을 한순간 부끄럽게 만들 수도 있는, 배려가 부족한 설치물이 아닌가.


떠들썩 하던 사람들이 가버리고 주위가 다시 조용해졌다. 통나무 인바디를 보며 '날씬구간'은 통과하지 못하겠지?' 생각하니 여러모로 입맛이 쓰다. 그 어느 구간에도 내 몸을 넣어보지 않는 것으로 통나무 인바디를 무시하기로 했다. 가벼운 몸이 되기 위해 나섰다가 조금 무거워진 마음으로 10시가 되어 귀가했다.

나는 아직 작심 3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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