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 코스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걷기를 시작한 지 6주가 지나고 있다. 나는 그동안 다니지 않았던 동넷길을 모두 섭렵하고 있다.


우리 동네는 서울에서 가깝고 나름 유명한 공원과 둘레길, 라이딩 코스가 있어서 활동하기에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곳은 지역 특성상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아 자동차를 이용하다 보니 오히려 걷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남들은 일부러 찾아오는 이곳의 자연도, 문화적 환경도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 동네를 걸으며 이런 곳이 있었구나, 아, 이렇게 이어지는 길이었구나, 하는 것들을 느끼며 소소한 재미를 느끼는 중이다. 나는 4가지 길을 정해 나만의 걷기 코스로 이용하고 있다. 이 길들은 대부분 만보에 가깝거나 만보를 넘는다. 보통 8km~ 11km의 거리로 90분에서 2시간을 넘지 않는 거리다.

걷기 코스

1. 동넷길 ; 70분 소요, 약 7600보

집을 나와 중심 도로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동네 끝까지 갔다 오는 코스다. 이 길은 걷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처음에 주로 이용했다.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 좋고 동네 예쁜 집들을 구경할 수 있다. 길 끝에는 작은 공원이 있고 운동기구들이 갖춰져 있어서 스트레칭을 하기에 좋다. 말 그대로 동넷길이라 편할 거라고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 완만하지만 서서히 올라가는 지형이라 조금씩 헉헉대기 시작하며 땀이 난다. 반대로 되돌아오는 길은 표 나지 않는 내리막길이라 편하게 걷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 어쩌다 참지 못하고 아들이 먹다 남은 치킨 한 조각을 먹거나 맥주 한 잔을 마셨을 때도 이용한다.


2. 양수역 주차장~ 두물머리 공원~다시 주차장으로 ; 75분 소요, 약 8500보

낮동안 기타 등등의 이유로 걷지 못했을 땐 두물머리 공원을 간다. 역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두물머리 공원까지 걷는 길은 밤에도 환해서 걷기에 좋다. 공원은 또한 잘 가꾸어진 산책로가 있어서 걷기에 최적이다. 낮에 비해 밤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 조용히 걷기에 집중할 수 있다. 돌아오는 길의 커피우유는 최고의 보상이다.


3. 숲길을 지나 산을 넘어 옆 동네 역까지, 자전거길을 이용하여 양수로. 혹은 반대로 걷는 길

; 1시간 50분 소요, 약 12,000보 (11km)

내가 제일 좋아하는 코스다. 숲길이 있고 산속엔 약수터도 있다. 숲을 즐길 수 있고 적당히 가팔라서 운동 효과가 좋다. 산을 넘으면 자전거길이 나오고 자전거길 옆으론 남한강이 흐른다. 다섯 개의 터널을 지나는 재미도 있으며 중간에 쉼터도 있어 차 한 잔 하기에도 좋다. 변화되는 풍경을 느끼기에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다. 숲을 빠져나와 시작되는 동네에서 작은 강아지가 자꾸 꼬리를 흔들며 따라와 애를 먹을 때가 있다. 처음엔 멀거니 쳐다만 보더니 몇 번 보았다고 자꾸 따라온다. 묶여있는 어미개가 돌아오라고 짖는 것도 아랑곳 안 한다. 이놈을 돌려 보내는 것이 매 번 어렵다. 동행이 있을 땐 역 앞에 딱 하나 있는 식당에서 도토리묵과 막걸리를 한 잔 하는 재미가 있는 길이기도 하다. 양수로 돌아오는 5km의 길이 남아 있으니 막걸리 한 잔은 훌륭한 연료이다. 더구나 그 도토리묵이 전혀 기대하지 않은 훌륭한 맛이어서 여러모로 좋다. 양수에 도착하면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데 어느 날은 의욕이 지나쳐 물소리 길을 지나 집까지 내쳐 걸은 적이 있다. 그 날 나는 사망했다가 다음 날 부활했다. 걷기의 내공이 좀 더 필요하다.


4. 물소리길 ; 90분 소요, 약 11,000보

동네를 빠져나와 양수로 가는 방향으로 걷는 이 길은 양평군에서 조성한 물소리길이다.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기 전부터 근방의 인구가 이용했던 옛길로 숲길로 이어진다. 비교적 널찍한 길 옆으로 낮은 산이 이어지고 그 산자락 아래에 물이 흐른다. 작지 않은 하천이고 제법 산자락의 운치도 느낄 수 있다. 길의 높낮이가 없이 평탄하지만 걷는 내내 물 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두 번째로 주로 이용하는 길이다. 물소리가 끊기는 역 근처까지 갔다가 되돌아온다. 갈 때는 물소리를 들으며 묵주기도를 하고 돌아 올 때는 음악을 듣는다. 특히 노을을 보며 듣는 90년대 가요는 행복하다. 여름 햇살이 뜨거울 때는 각오가 필요한 길이기도 하다.

살면서 요즘처럼 걸어 다닌 기억이 없다. 체중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한 이 걷기는 이미 그 목표를 달성했다. 입지 못하던 바지를 입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계속 걸을 것 같다. 어느새 걷기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간신히 다시 문을 연 수영장이 또다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겨우 6주의 걷기는 습관적인 불면증을 사라지게 했고 아침마다 티슈 한 통을 다 써야 끝나는 비염 증상을 완화시켰다. 유명 연예인인 박진영 씨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무 하기 싫은 일인데 평생 해야 하는 것이 답이다."라고. 오늘은 나가지 말까, 자주 갈등하지만 평생 해야 하는 것이 답이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내일도 4가지 코스 중 어느 한 길에서 걷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