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이 하얗다!첫눈이 제대로 왔다.
기상예보대로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5cm가 넘었다.
봉은 서둘러 마당의 눈을 치우고 차를 집 아래 도로변에 두고 올라왔다.
숱 없는 그의 머리 위에 눈이 듬성듬성 쌓였다.
집 안은 적막하고 아무도 듣지 않는 파가니니가 흐른다.
산책을 나갈까, 어쩔까...
내리는 눈과 함께 생각도 흐른다.
' 어머니, 동생과 집짓기, 등뼈탕, 괘씸한 별채 세입자, 산책....'
아 참, 오늘 봉과 함께 산에 가기로 했는데...
머릿속으로 냉장고 안을 스캔한다. 김치밖에 없군....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올해 첫 고립이군. 히히히
고립이란 생각을 하자 급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고립이 좋다. 눈이 온다는 예보를 들으면 다음 날 고립되길 바라는 나는 철이 없는 것일까. 철이 없다고 해도 좋다. 눈이 와서 쉽게 외출할 수 없는 하루나 반나절 동안의 고립은 삶을 단순하게 한다. 간편하게 먹고 그저 책이나 보거나 멍밖을 한다.(멍하게 밖을 보는 것) 그래 봐야 기껏 반나절이나 채 하루가 안 되는 시간이지만 겨울 동안 내가 누리는 사치다. 눈은 그쳤다가 흩뿌리다가 싸락눈이다가 다시 굵어진다. 산 봉우리는 눈과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고 세상은 오늘 하루 무채색이다.
봉이 등산화를 꺼내 닦으며 나가자고 한다.
채비를 하고 산에 오르니 또 다른 세상 -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다.
* 별유천지 비인간 (別有天地非人間): 이백의 <산중답속인> 중 한 구절.
다른 세상에 있어 이 세상이 아니란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