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M.O.S.C.O.W.!
우여곡절 아내가 모스크바에 도착하고 나서는 비슷한 과정을 거쳐 예비학부에 등록을 했고, 서서히 우리도 낯선 나라에 적응을 하기 시작했다. 기숙사에 1년간 거주하기로 했지만 가족기숙사가 아니었기에 아내는 다른 층에 2인실 방을 배정받았는데 다행히 오기로 했던 룸메가 오지 않는 덕에 혼자서 쓰게 되었다. 공부하는 시간도 많았지만 여가 시간에만 아내의 방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지만 서로가 서로를 의지했기에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아내의 옆 방에는 일본인 여학생이 살고 있었는데, 외국에서 일본인을 보는 것도 힘들었지만 특이하게도 그 학생은 속칭 '히키코모리'였다. 아내와 주방과 화장실을 같이 쓰는데 마주치는 일이 거의 없고 계단에서 마주쳤더니 '스미마셍'하면서 도망쳤다는 거다. 어쩌다가 먼 러시아까지 와서 공부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마치고 가길 바랐다.
나의 룸메는 나보다 몇 살 어린 친구였는데 (P군이라 칭하겠다),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좋았다. 영어도 무척이나 잘했고 사교성도 좋아서 나는 그 친구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그 외에도 공항에서 같이 만났던 일본어를 잘하는 S양이 있었는데, 자세한 이야기는 이후에 기술하겠지만 아내와 함께 그 친구들과 좋은 추억들을 많이 쌓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국 친구들도 사귀었고 (늦은 나이에 오느라 대부분 동생들이었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러시아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구글 대신 얀덱스(yandex)라는 사이트가 우리의 네이버와 같은 역할을 하고, vk(vkontacte)가 우리의 카카오톡과 비슷한 역할을 한다. 그 외에도 얀덱스에서 제공하는 각종 서비스들(얀덱스 택시, 얀덱스 지도)을 설치함으로써 러시아 패치를 서서히 해 나가고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아직까지 학생이라면 조금 하대를 하는 분위기가 있다. 물론 학생이기에 누릴 수 있는 혜택도 굉장히 많이 편이긴 하다. 대부분의 관광지에서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한 달에 만원도 안 되는 금액으로 모스크바 시내의 거의 대부분의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 경찰에게 차선 위반으로 걸렸는데도 학생증을 보여주니 할인이 되었다. 정말이지 우리와는 다른, 신기한 나라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면 학생이라는 신분을 아는 러시아 사람들은 학생을 그다지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지 않는다. 일례로 실수로 열쇠를 방에 두고 나왔고 룸메가 방을 잠그고 나가 방을 열어달라고 부탁을 하면 다그치듯 훈계를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 외에도 무언가 잘 못 된 것이 있으면 규정과 페널티를 들먹이는 대신 주로 혼을 낸다. 학부과정을 들어온 한국인들은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왔기에 그러려니 하는가 본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한 번은 별거 아닌 일로 또 훈계를 하려는 사감에게 대든 적도 있었는데 오히려 그 후의 삶이 더 편해졌다. 이런 러시아인들의 약강강약(약자한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태도는 러시아에 머무는 동안 나의 심기를 자주 건드렸다.
러시아에서는 이런 말을 사람들이 자주 한다고 한다.
Это Москва, (This is Moscow. )
이 말인즉, 좋은 뜻이든 나쁜 뜻이든 모스크바는 원래 그렇다. 그러려니 해라. 그만큼 다르다는 의미이자,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하는 거겠지만, 막상 살다 보면 나쁜 상황에 더 자주 쓰게 된다. 요즘 말로 바꾸면 "모스크바가 모스크바 했네." 정도라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