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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Nov 22. 2018

#.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상형이 변하는 것처럼, 일 역시 그렇지 아니한가

우리는 언제부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으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확실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한국에서는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는 거야.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살 수는 없어' 같은 말을 꽤 들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바뀌었다. 아마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연설의 영향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애플이 가장 핫하던 시기의 아이콘으로서, 대학 중퇴자라는 이력을 가지고 명문 대학의 졸업 연단에 서서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Keep looking, don’t settle.”을 되뇌던 그는 당시 많은 대학생들과 사회 초년생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런데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이란 대체 무엇인가. 자꾸 그걸 찾으라고 하는데, 마치 결혼 상대자를 찾는 것처럼 그 일을 찾으면 어느 순간 ‘나는 이 일과 결혼하겠소’라는 확신이 오는 것일까? 만약 그런 확신이 없으면 인생을 잘못 사는 것일까? 일단 20대 초중반이 그걸 알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처럼 책상에만 앉아 남들 하는 것 따라가느라 정신없다가 대학/사회에 나가게 되는 환경에서는 더더욱 모른다. 아마 내가 뭘 모르는지도 모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이란 무엇인지 개념 정리부터 해 보자 - 그것은 변호사, 의사, 뱅커 등 직군을 의미하는 것인가? 변호사만 해도 기업 변호사도 있고 인권변호사도 있고 로펌 변호사도 있고 개인 변호사도 있는데, 이들 모두 변호사라고 불리지만 벌이와 노동시간과 노동강도와 라이프스타일이 다 다른데 어떤 것이 좋아하는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직군이 아니라면 안정적인 직업/도전적인 직업 등 그 일이 가져다주는 라이프스타일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연구직, 영업직, 현장직처럼 그 일의 형태와 일을 하는 장소와 방식 등을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좋아하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즐겁게 하는 일이 최고라는 것처럼 어떤 정서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이 이들 중 2개 이상 또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하는 개념이라면 나는 과연 어떠한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을까? 


20대, 환상과 돈

나는 한국 평균에 비하면 항상 원하는 것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대학생 시절에 나는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왜냐고 물으면 비스마르크를 예로 들며 국제무대에서 조국을 위해 전략적인 판단을 내리는 일이 멋져 보인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런 멋진 위치에 가려면 먼저 한국의 답답한 공무원 사회에서 한 20년 정도를 버티며 살아 남아 높은 자리를 쟁취해야 가능하다는 전제는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그 직업의 가장 멋진 부분만을 보고, 그 직업의 일상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비스마르크는 법률가/정치인에 가깝지 외교부 관료도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단지 외국에 나가 살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경험해 보고, 그러면서도 뭔가 중요하고 멋져 보이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었지 꼭 국가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전략적 결정을 내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한국적인 관료 조직이 잘 맞지도 않고 성격이 외교적이지도 않은 데다, 내가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기 위해서는 외교관이 딱히 좋은 선택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직업에 대한 환상을 가졌고 그것이 되길 원했던 것이다. 


복학 이후에는 월스트리트의 투자전문가라는 다른 환상을 가지고 금융계로 들어왔는데 나는 원래 숫자 다루는 데 크게 소질도 없고 (아직도 큰 범주 내에서 Finance를 업으로 삼고 있지만 나의 평범함 내지 소질 없음이 드러날까 항상 조심스럽다) 그전에는 금융에 큰 관심도 없었다. 단지 내가 대학 졸업이 가까울 무렵 당시에는 금융투자업종이 가장 잘 나가고 돈 잘 버는 섹시한 분야였기 때문에 (당시 IB, M&A, 골드만삭스, 월스트리트, 뉴욕 같은 단어들은 지금의 tech, start-up, 구글, 팔로 알토, 베이 에어리어 같은 느낌이었다) 자연스럽게 이쪽 분야에 대한 환상이 커지고 내가 이쪽 일을 좋아한다는 자기 최면이 걸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회계법인의 금융섹터에서 일했는데 당시 나는 젊었고, 딱히 지켜야 할 것도 잃을 것도 없고,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할 수 있는 신체적 정신적 상태였기 때문에 곧 “나에게는 이런 자문 또는 ‘백 오피스' 업무보다는 직접 최전선에서 투자를 이끄는 ‘프론트 오피스' 업무가 맞다"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돈도 돈이지만 직접 투자에 참여하는 프론트 오피스 업무가 내가 진정 좋아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경험을 쌓을 기회를 더 중시하게 되었다. 그러다 야심 차게 출발하는 헤지펀드 스타트업을 보고 이게 내 길이라고 생각하며 앞뒤 안 보고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빛만 보면 쫓아가는 불나방처럼, 제한된 정보 하에서 좋아하는 일이라고 스스로 세뇌된 일을 향해 뛰어들었던 것이었다.


30대, 일의 의미  

그러다가 30대가 되고, 경력이 좀 쌓이게 되면서 나는 그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좀 더 자신과의 솔직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당시 중국에서 High Net Worth Individual과 Institutional clients를 위한 자산관리 서비를 제공 - 한 마디로 말하면 중국 부자들(대부분 고도 성장기에 탄생한 벼락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주기 - 하고 있었는데, 투자 일 자체는 재미있었지만 그밖에 고객들 상대하는 일, 그리고 그 일로 인한 결과가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해서는 딱히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고객들에게 돈을 벌어다 주면 거기에서 나오는 콩고물을 회사가 먹고 그다음에 회사가 내게 떨어뜨려 주는 부분을 내가 먹는데, 내 몸과 마음을 갈아 넣어 일해서 고객들과 회사의 주머니를 채워주지만 그쪽에서나 이쪽에서나 계좌의 숫자가 조금 바뀔 뿐 그리 크게 티가 나지도 않는, 그런 나의 삶이 별로 보람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싫었고, 평생 이런 일을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업계 특성상 돈을 몇십억, 몇백억씩 번 사람들을 봤는데, 그들의 인생이 딱히 부럽지가 않았다. 아예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확실했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가장 큰 욕구는 무엇인가? 


자신과의 대화를 해 보니 나는 많은 돈을 버는 것이 전부인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나는 적당히 자유로울 만큼의 돈을 원하지만 내 멋대로 막 지르면서 살기에는 부족한 만큼의 돈을 버는 것이 내 성격을 고려했을 때, 또 인생을 길게 보는 관점에서 가장 좋겠다고 느꼈다. 가장 중요한 자원은 돈이 아니라 시간이기 때문에, 젊은이로서 길게 남지 않은 시간을 단순히 돈 벌기 위해 쓰기보다는 다양한 경험으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나는 물욕이 상대적으로 적은 대신 은근히 명예욕과 사회적 인정 욕구도 있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서인지, 아니면 금융계에서 고수익 고위험 라이프에 대한 회의를 느껴서인지 모르지만 생각보다 안정적인 직업이 끌린다는 것에 놀랐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은 젊었을 때는 재미있지만 나이가 들 수록 스스로도 피곤함이 커질 것이고, 무엇보다 가정을 꾸리기에는 좋은 라이프스타일이 아닐 텐데 나는 인연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잘 이해하게 되니 비로소 좋아하는 일에 대한 대답도 의미 있는 수준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아빠가 된 후 - 우리 가족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한 고민 끝에 나는 미국으로 유학을 오게 됐고 우여곡절 끝에 현재의 나는 아내+아이들과 함께 이곳에 사실상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얼마 전에 나는 ‘지금의 내가 가장 좋아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그에 대한 답은 예전에 비하면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달랐다 - 일단은 먹고살고 애들 가르치기에 크게 부족함 없는 월급을 주면 좋겠고 그에 비해 퇴근 시간이 확실하면 좋겠다. 가족이 쏠쏠한 혜택을 볼 수 있게 복지도 좋으면 좋겠다. 그리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역동적인 환경보다는 내가 이번 달에 뭘 할지 알고 언제 바쁘며 언제 좀 여유가 있는지 아는 환경이면 좋겠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 있겠지만 1년에 출장을 3-4번 정도 가는 일이라면 심심하지 않고 좋겠다. 일의 티가 잘 안 나고 성과 측정이 어려운 분야라면 사무실에 정치꾼들만 득실 할 테니 아웃풋이 적당히 정해져 있고 성과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분야면 좋겠다. 그렇다고 너무 성과가 눈에 보이는 결과로만 측정되면 내 삶이 피폐해질 테니 그보다는 약간 여유가 있는 곳이면 좋겠다. 그리고 나이와 경험이 쌓일수록 내 능력이 쇠퇴하여 결국 뒤로 물러나게 되는 직업이 아니라 경험이 쌓일수록 쉽게 얻기 힘든 비교우위를 갖게 되어 눈치 안 보고도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이면 좋겠다. 이 모든 것을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직업은 없거나 있다면 아마도 내가 가질 수 없을 테니 이중 다수를 만족시키는 직업이라면 뭐든 땡큐 하고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 -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그 일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나의 관심이 매우 적어졌다는 것이다. 어떤 업계든 상관없고 (이미 업계를 바꾸기는 힘들 정도의 나이가 되었지만) 직종도 상관없으며 프런트 오피스든 백 오피스든 크게 상관없었다. 그저 나와 가족이 잘 살 수 있게 위에 언급한 조건들을 가장 많이 만족시켜 주는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생긴 후에 나의 우선순위와 가치체계가 급격히 재편되는 것을 보면 나 스스로 놀랍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하다. 결국 인간이란 이렇게 유전자를 남겨 후대에 잘 전달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기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거라면 지금까지의 내 인생은 무엇이었나 라는 생각마저 든다 (너무 나간 것일까. 육아 스트레스로 인한 일시적 감정의 오버슈팅일 수 있다). 어쨌든 일 자체가 나에게 주는 의미, 그리고 내 인생과 행복이라는 좀 더 큰 주제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은 다소 줄어든 느낌인 것이 사실이다.

어쩌면 이런 현상은 나 개인적인 인생의 단계와도 관련이 있지만 요즘 세상의 흐름과도 관련이 있는지도 모른다. 작년에 NBA 최고 스타인 르브론 제임스가 결승에서 2년 연속 패하고 나서 어느 팀으로 이적할 것인가가 농구팬들의 최고 관심사였는데 그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 달리 명문이지만 현재는 약체인 LA 레이커스로 이적했다. 이유는 바로 애들 교육 문제였다 - 르브론 제임스의 아들들 역시 농구를 하는데, 농구선수로서 성장하기 가장 좋은 도시가 LA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르브론 제임스도 결국은 본인의 커리어와 승리보다는 자식과 가족을 위해 맹모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고 결론을 내린 것인데 이는 미국에서도 80-90년대의 올드 스쿨 정서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다는 반응이 꽤 있었다. 한국이든 미국이든 커리어와 성취의 중요성은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은 반면 소위 ‘워라밸’과 가족의 중요성은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결론

20대에는 어차피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니 뭐든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한다고 가정하는 일에 뛰어들어 열심히 살아 보면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살고 있는데 누군가가 예를 들어 ‘돈이나 이미지만 보고 일을 하지 말고 네가 진정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라고 한다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 말을 하는 사람뿐 아니라 나 자신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무엇을 진정 좋아하는지 모른다. 만에 하나 알더라도 나중에는 바뀔 확률도 높다. (아니면 돈과 이미지를 쫒아 살았는데 알고 보니 나는 진정 돈과 이미지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결론이 나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렇다면 잘 된 것 아닌가!

만약 어떤 사람이 20대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알고 선택한 후 평생 그 일을 같은 마음으로 즐겁게 할 수 있다면 아마 그는 억세게 운이 좋거나, 아니면 20대에 성장이 멈춘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 20대에는 크게 부담 갖지 말고, 자기가 좋아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쌓아 가는 게 좋을 것이라고 본다. 다만 열심히는 해야 한다. 이 시기에 쌓은 지식과 경험은 앞으로 (커리어 어느 시점이든) 분명히 영향을 미치고 도움이 될 테니.


30대에는 지금까지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을 객관적으로 관찰해 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살면서 여러 불편한 상황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좀 더 나라는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 나라는 사람의 근원적인 공포 그리고 욕구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게 된다. 부모나 사회의 선호가 아닌 내가 선호하는 것이 무엇이고 내가 기피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이고 희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나 자신에 대해 쌓인 데이터와 경험을 토대로 나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알 수록 내가 좋아하는 일에 대한 고민은 쉬워질 것이다. 질문에 대한 해답이 보이기 시작하는 그때, 방향을 돌릴지 살짝 틀지 아니면 그대로 유지할지 결정해야 할 텐데, 해답이 보일 무렵에 이미 방향을 돌리기에는 너무 많이 왔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는 각자의 선택인데, 나는 방향을 트는 것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 확실한 금전적 그리고 경력상의 손실과 함께 꽤 긴 시간 동안 불확실성에서 오는 심리적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 대신에 얻은 것은... 장기적으로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막연한 안정감과 원하는 대로 해 봤다는 후회 없음 되겠다.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나의 인생이 나도 모르게 가정과 자식을 위해 달려가는 삶으로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이전까지는 주로 나만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다는 사실 자체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경험은 솔직히 낯선데, 내가 좋아하는 일과 내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약간의 희생은 필요하겠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위해 싫어하는 일을 하는 것도 답은 아닐 것이다. 내가 하면서 어느 정도 즐거운 일을 해야 나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그것이 가족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상형 찾기

이렇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내가 진정 좋아하는 일이란 마치 이상형 찾기와 같다는 생각이 든다. 20대에는 겉모습이나 이미지가 더 눈에 들어오고, 이렇게 예쁜/멋진 이성이라면 몸과 마음을 바쳐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30대가 되면 점점 성격, 가치관, 라이프스타일이 나와 맞는 사람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러다 가정과 자식들이 생기면 그에 더해 월급 꼬박꼬박 잘 벌어 오고 애들에게 좋은 부모가 되어 주는 사람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된다. 어쨌든 우리는 인생의 어느 시점에 - 20대든 30대든 그 이후든 - 배우자를 찾아 이 사람이 내 인연이라고 생각하며 남은 여생을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의 일도 그러하지 않을까. 나도 지금껏 분야를 계속 바꿔 가며 나에게 맞는 일을 찾아왔지만 이제 지금 하는 일과는 아무래도 긴 시간을 함께 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무쪼록 오랫동안 행복한 동행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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