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 직장의 아침 인사는 많이 다르다
한국어로는 안녕하세요, 중국어는 니 하오(你好). 우리가 알고 있고 실생활에서 매일 사용하는 기본 인사말이다. 영어로는 이게 Hi나 Hello라고 생각하고 살았는데 미국에 와 보니 아니다. How are you 다. 어제 보고 오늘 또 마주쳤던 오랜만에 마주쳤던 모두 How are you를 한다. 그냥 Hi 만 하는 경우는 드물다. 바로 여기서 나의 반복되는 어색한 일상이 시작되었다. 자주 보는 상대방이 오늘 아침 ‘How are you?’를 하면 나는 ‘Hi’만 하고 그냥 쌩 지나갔던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의 어색한 표정이 내 뒤통수로 와 박히는 것이 느껴진다. ‘저 녀석은 나와 말 섞기가 싫은 걸까'라는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내가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냥 ‘안녕하세요' 하고 눈인사 정도 한 후 그냥 지나치니까, 그게 습관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How are you?’라고 물으면 ‘‘Fine, thank you. And you?’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맞다. 진짜로 해야 한다. 저렇게 교과서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Great, thanks. How are you?’라고 하거나 최소한 ‘Good, thanks. You?’ 정도는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이게 습관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너무 어려웠다. 특히 길에서 지나가다 마주치는 경우, 지나치는 순간에 잘 지내냐고 물어보고 대답을 기다리거나, 반대로 나는 잘 지낸다고 대답하고 너는 어떠냐고 물어보고 응 그렇구나 하려면 지나가던 속도를 유지해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그럼 가려면 가던 길을 살짝 멈추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럼 그 말만 달랑하고 싱긋 웃고 나서 다시 가던 길을 가야 하나? 아니면 계속 그래서 어제는 뭐했니 등등의 스몰토크를 이어가야 하나? 결정을 빨리 내리기가 쉽지 않다. 스몰토크를 한다면 오늘 마주친 10명 모두를 붙잡고 해야 하나? 그럴 수는 없으니 몇 명만 골라서 하면 다른 사람들은 싫어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을 이 나이에 하고 있다니 내가 이토록 사회적 지능이 부족한 인간이었나?
이 이야기를 중국인 동료와 한 적이 있는데, 그녀도 적극 공감했다. ‘니 하오’도 잘 지내냐고 묻는 말이지만 실생활에서는 서로 ‘니 하오’ 하면서 지나가고 말지 실제로 ‘나는 잘 지내. 너는? 나도 잘 지내.’ 이렇게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How are you에 일일이 대답해야 하니 그게 적응이 잘 안된다고 했다. 내가 미국에 산 지도 이제 5년이 넘다 보니, 이제는 특별히 바쁘지 않을 때나 실제로 누군가를 봐서 반가울 때에는 나도 How are you에 적극적으로 답하고, 다시 물어보면서 스몰 토크를 길게 이어 나가기도 한다. 어느덧 I’m great, thanks, how are you 같은 말도 툭 치면 1초 만에 주르륵 나오는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바빠서 신경 쓸 틈이 없거나 긴장이 풀어지면 관성처럼 가벼운 목례와 함께 Hi 하고 쌩 지나가는 한국 스타일로 회귀하고 만다. (최근엔 Good morning의 경우 딱히 말을 이어 나갈 필요가 없이 인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애용하고 있다)
가만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사실 안녕하세요, 니 하오, How are you 모두 사실은 질문 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석적으로는 그렇다 아니다 대답을 해야 하는데, 이것을 실제로 묻는 말로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대답을 하는 건 미국이 유일하다. 왜일까. 동아시아에서는 사람들이 말 자체보다는 상황이나 화자의 의도를 좀 더 파악하는 편이니까, 문장 자체가 질문 문이라도 그냥 하는 인사말로 해석해서 넘어가는 반면 미국에서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좀 더 생각해 보면 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안녕하세요'와 ‘니 하오'는 모두 ‘너 잘 지내지?’는 말로서 상대방이 이미 잘 지낸다고 가정하고 물어보는 말이다. 그래서 그냥 ‘네’ 또는 ‘응' 하면 그냥 잘 지낸다는 말이 되니 더 이상 대화를 끌어갈 필요가 딱히 없다. 반면 ‘How are you’는 그런 가정을 하지 않고 중립적으로 물어보는 말이다. 그러니 잘 지내는지 잘 못 지내는지 대답을 해 줘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생각보다 원초적인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상대방의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서 말을 하기보다는 나는 상대방이 어떤지 당연히 모르니 상대방이 말을 해야 알 수 있다는 심리가 깔려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수업시간이든 회사 미팅 시간이든 일상생활이든 내 생각은 어떻다고 말을 하지 않으면 그냥 아무 생각이 없거나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으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미국에서의 인사가 한국에서의 인사와 확실하게 다른 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이다. Hi Jake, how are you? 이런 식으로 웬만하면 이름을 꼭 부른다. 이것 역시 나는 버릇이 되어 있지 않아서 상대방은 항상 안녕 누구야 라고 인사를 하면 나는 응 안녕~ 하고 또 지나가 버리는 무례한 녀석이 되고 만다. 몇 번 이걸 깨닫고 나도 이름을 불러줘야지 라고 생각해서 시도한 적이 있는데 웃기는 건 인사를 나누는 짧은 시간에 사람 이름이 바로 생각이 잘 안 난다는 것이다. 그래서 Hi um... Patricia 이런 식으로 하면 상대방에게 마치 ‘너는 내가 힘들여 생각해야 겨우 이름이 기억나는 사람이야'라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더 싫었다. 우리는 회사에서 그냥 안녕하세요 또는 안녕하세요 과장님 이런 식으로 하기 때문에 나의 뇌 자체가 인사할 때 그 사람의 이름을 빨리 기억하도록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생각해 보면 이렇게 이름을 부르는 문화는 좋은 것 같다. 상대방이 나를 좀 더 인간 대 인간으로 친근하게 대한다는 느낌이 든다. 그저 주변 인물 1, 2 가 아닌 나라는 사람을 대하고 있다는 느낌, 좀 더 존중받고 있다는 기분이랄까. ‘이름을 불러 주니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도 있지 않나. 그러고 보니 한국에서는 이런 문화를 도입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약간 애매하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 오 과장님' ‘어 장대리 잘 지내나' 이런 대화를 ‘안녕하세요 오상식 과장님' ‘어 장그래 씨 잘 지내죠' 이렇게 바꾸면 좀 나으려나. 조금 낫긴 한데 뭔가 크게 바뀐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오상식 과장님'은 너무 긴 느낌이라 입에 잘 붙지 않는데, 그러면 아예 미국식으로 ‘안녕하세요 상식 씨' ‘네 그래 씨 잘 지내죠' 이런 건 어떨까? 상상해 보면 실소가 나올 만큼 파격적이다.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누군가 이랬다가는 이 소식이 메신저로 모든 부서에 퍼져 점심시간의 화제가 될 것 같다. 하지만 실제 이렇게 된다면 훨씬 친근하지 않은가! 또한 직원들 간에 업무적 위계질서 이외의 불필요한 ‘인간적 위계질서'가 생기는 것을 어느 정도 저지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말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의식과 무의식에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나를 ‘오 과장님'으로 부른 ‘부하 직원’이 아니라 ‘상식 씨'로 부른 ‘직장 동료’에게 사적인 일을 시킨다던가, 비인격적인 모욕을 한다던가, 기타 불합리한 일을 시키며 직위를 이용해 찍어 누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아침 인사와 같은 인간 생활에서의 매우 기본적인 일에도 이렇게 문화적 맥락이 고려되고 그 차이도 생각보다 크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아니, 어쩌면 이런 기본적인 행위들, 너무 당연한 듯 반복되어서 별생각 없이 습관으로 굳어진 행위들에서 문화권 간의 차이가 오히려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