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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Nov 06. 2018

사람 값이 싼 사회, 대한민국

사람이 물건처럼 이동하는 사회가 올 것인가

유학 시절에 거시경제 정책에 대한 수업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지금보다는 거시경제에 대한 관심이 더 있기도 했고, 한국에서 경제학 공부는 좀 했으니 수업 참여도 좀 하면서 점수를 따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하루는 수업 중에 구매력 평가 GDP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에 대한 자료를 보다가 한국과 일본이 일인당 명목 GDP로는 차이가 꽤 나지만 구매력을 기준으로 보정한 GDP로는 차이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적인 경우보다 이런 현상이 양국 간의 비교에서 더 두드러졌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교수에게 다가가 질문을 던졌다. 이러한 현상이 왜 양국의 비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고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요?


내가 무슨 답변을 기대하고 질문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무의식 중에 “맞아, 구매력으로 보면 한국은 선진국에 가깝지. 사실 일본이랑 차이가 없어.” 같은 말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일까. 젊은 브라질 교수의 답변은 그보다는 훨씬 건조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교수는 이내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소득이 낮은 국가일수록 서비스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구매력 평가 GDP가 높게 나오는 경향이 있다.”


아 네. 그렇군요. 한국이 후진국이라 그런 거였어요 허허. 뭔가 생각했던 대답이 아니어서 당황했는데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것은 내 머릿속을 정리해 주는 아주 명쾌한 답변이었다. 배워서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깨닫지는 못하고 있었던 것들을 순간적으로 쭉 연결시켜 주는 기분이 들었다.


물건 값과 사람 값, 그 상대적 가치

미국과 한국의 일인당 GDP는 현재 각 5만 7천 불, 2만 7천 불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그럼 한국이 미국보다 두 배 이상 못 산다는 말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 않은 이유는 한국은 서비스의 가격이 저렴하기 때문에, 소득은 절반이라 해도 종합적인 삶의 질로 보면 그 정도의 차이가 나지는 않는 것이다. 이를 다른 각도에서, 경제원론 이론을 가지고 바라보면 아래와 같다.


한 국가의 일인당 GDP는 국내에서 한 사람이 생산한 재화(상품)와 용역(서비스)의 가격의 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이 생산한 휴대폰이나 한국 사람이 생산한 휴대폰이나 그 가격은 같다. 국제 무역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과거에 한국이 1차 산업 비중이 높았을 때는  미국인이 생산하는 상품들이 한국인이 생산하는 상품들보다 부가가치가 높았겠지만 지금은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다. 그렇다면 저 두 배의 차이는 결국 미국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와 한국 사람이 제공하는 서비스 가격의 차이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경험적으로 맞는 이야기다 - 예컨대 내가 워싱턴 DC에서 머리 한 번 자르려면 팁 포함 최소 30불은 줘야 하지만 서울에서 동네 미용실에 가면 만원 조금 넘는 정도로 할 수 있다. 심지어 친절하고 솜씨도 훨씬 좋은 데 말이다.


이는 미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사람 노동력의 가치가 물건의 가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는, 즉 사람 값이 물건 값보다 싸다는 말이다. 이는 지식 노동자건 육체노동자건, 또는 고급 노동자든 단순 노동자든 똑같이 적용된다. 맥킨지 컨설턴트도 한국 오피스에서는 전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일한다. 시간당 가격이 싼 것이다. 게다가 컨설팅 업계에서는 클라이언트들의 ‘갑질’도 빈번하다. 합의된 업무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추가 용역을 계속 요구한다던가, 컨설턴트들을 하대한다던가... 돈과 서비스의 등가 교환이 아닌 돈 주는 사람이 서비스 제공자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것이다. 단순 서비스직의 경우 상황은 더 나쁘다. 급여는 같은 일을 하는 미국인보다 훨씬 적은데 생활필수품인 집과 차는 심지어 한국이 더 비싸다.


물질 만능주의 - 건물주가 최고인 이유

물건의 가치가 사람 가치보다 높으니 물질 만능주의 사회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귀결이다. 노동력을 팔아서는 필수품이든 사치품이든 사기가 버거우니 애초에 물건을 소유한 사람 (명품, 집, 차, 나아가 건물주, 땅부자)이 최고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반대로 보유한 물건으로 돈을 벌어 서비스를 사용하는 입장에서는 이보다 좋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친절하고 기본이 잘 잡힌 서비스를 (집안일 도우미, 콜센터, 외식, 나아가 의료 서비스까지) 절대적, 상대적으로 싼 값에 사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빈번하게 들어온 “돈 있으면 한국이 제일 살기 좋아”라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이렇게 경제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말이었다.


물론, 북미 또는 북/서유럽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지 한국이 물질 만능주의 현상의 정점에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이보다 더하고, 개도국 중 부의 편중이 심한 국가에서는 그보다 더 극단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중국에서 일하던 시절, 상해 여성들의 결혼 조건 4가지 (남자가 갖추어야 하는)가 무엇인지를 듣고 놀랐던 적이 있다. 1) 집 2) 차 3) 집이 있되 대출을 낀 집이면 안된다(!) 4) 차가 있되 상해 번호판을 단 차여야 한다 (상해에서는 자동차 수를 제한하기 위해 번호판 경매를 하는데 현재 한화로 약 1500만 원 정도이다. 외부 번호판을 단 차량은 특정 도로 출입시간이 제한된다. 상해 번호판을 달았다는 것은 그런 불편을 감수하느니 1500만 원 정도는 더 지불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신호가 된다). 그만큼 물질주의가 한국 강남보다 더 심한데, 이것 역시 당연하다. 집과 차는 한국보다 더 비싸고 (내가 상해를 뜰 무렵 푸동 지역의 아파트 가격이 이미 너무 올랐다고 했는데, 이후 두 배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 값은 더 싸니까 (마사지, 청소 서비스, 육아 도우미 등 기초 인건비는 한국보다 훨씬 싸고, 그간 별로 오르지도 않았다).


사람도 물건처럼 자유롭게 국경을 넘을 수 있을까?

사람 값이 싼 곳에 사는 노동자는 삶이 고단할 수밖에 없다. 그럼 모아놓은 돈과 부동산이 없는, 주로 노동력을 파는 개인으로서 물질주의 사회에 신물이 난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람 가치가 더 높은 곳으로 가면 된다. 물건이 국제무역을 통해 이동하는 것처럼 사람도 이동하면 된다. 그런데 불행히도 사람은 쉽게 이동할 수가 없다. 일단은 언어/문화 장벽도 있는 데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외국인은 적절한 근로 허가 비자를 받지 않으면 일하고 돈을 벌 수가 없다. 게다가 사람이 이동하면 그 사람들이 들어오는 쪽의 국가에서는 일자리를 빼앗기는 사람들이 생기니 모두들 더욱 문을 걸어 잠그려고 한다. 트럼프는 멕시코에 벽을 세우려고 하고, 우리도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반감을 가지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나가고 싶은 사람 입장에서는 이동을 하기만 하면 훨씬 사람 값을 더 쳐 주는 곳으로 갈 수 있으니 가능할 때 어떻게든 나가려고 하고, 따라서 한국에서 그렇게 이민 열풍이 부는 것도 당연하다. 물론 한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미국, 유럽, 호주 등지로 의욕에 찬 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인들이 지속적으로 몰려드는 것도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면 이런 개인들의 선택에 대해 국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단 사람들이 외국으로 유출되면 그만큼 ‘나갈 능력이 되고 (그게 본인의 경쟁력이든, 의지든, 갖고 나가 수 있는 돈이든) 상대적으로 진취적인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는)’ 개인들이 나가는 것이니 국가 입장에서는 일단은 손해일 것이다. (반대로 보면, 미국의 힘이 여기서 나오는 것 같다. 상대적으로 능력이 있고 진취적인 이민자들이 계속해서 밀려 들어오니 경제/사회가 활력을 잃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어떨까? 나는 이러한 인력의 해외 유출이, 길게 본다면 국가에게 반드시 손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먼저 국외에서, 예컨대 상대적으로 능력 있고 진취적인 한국인들이 다양한 국가에 나가 자리 잡게 되면 해당 국가와 한국 간의 경제/문화적 교류의 양과 질이 늘어날 것이고 해외에서 한국의 인지도 및 영향력에서도 순기능이 있을 것이 (유태인은 본의 아니게 전 세계로 퍼졌고, 미국에서도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데 이스라엘은 그 덕분에 정치경제적 이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국내에서, 인력 유출로 인한 타격은 단기적으로는 피할 수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생각만큼 크지 않을 수 있다. '남겨진' 이들 중 상당 수의 능력 있는 사람들이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며 나라는 또 그렇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력 자원의 효율적인 이용으로도 볼 수 있다. 각자 자기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자리로 배분되는 셈이니.


하지만 사람이 물건처럼 자유롭게 이동하는 세상이 과연 올까? 실제 가치가 높은 사람이 사람 값을 높게 쳐 주는 사회로 계속 이동해서 결국 사람 값에 대한 Arbitrage (시세차익)가 거의 없어지는 사회가 올까? 현재로서는 거의 SF 소설에 가까운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 모두의 외부인에 대한 동물적인 반감, 영역 침범에 대한 두려움, 언어/문화 차이 극복의 어려움, 떠나는 자들에 대한 냉소와 편 가르기, 변화에 대한 피로, 그리고 정치인들의 이해관계 등 모든 것이 얽히고설켜 그러한 사회가 오기는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더 좋은 생활환경을 향한 인간의 이동은 어떠한 형태로든 항상 존재해 왔다. 게다가 오늘날은 교통 통신의 발달로 정보에 대한 접근과 물리적 이동 자체는 그 어느 때보다 쉬워졌다. 역사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종종 현재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빨리 변하기도 하니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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