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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Dec 29. 2018

10. 나는 공감 장애인, Made in Korea

Arts of Communication 수업과 인생 최대의 당혹스러움

어느 학교나 마찬가지겠지만 HKS에도 수강 신청 때마다 많은 학생들이 몰리는 유명한 수업들이 있다. 이 중 다양한 배경과 목표를 가진 학생들이 다 관심을 가지는, 소위 ‘Soft Skill’을 가르치는 수업 3개가 있다. Arts of Communication, Negotiation and conflict resolution, 그리고 Heifetz 교수의 Leadership 수업이 그것이다. 모든 학생들은 수강 신청에 앞서 일정량의 ‘경매 포인트’를 받고 자신이 수강하고 싶은 수업에 그 포인트를 걸어 수강 권리를 따내야만 수업을 들을 수 있는데 이들 수업은 상당량의 경매 포인트를 요구하기 때문에 한 학생이 이 수업들을 재학 중에 모두 듣기는 어렵다. 나는 Arts of Communication과 Leadership 수업에 경매 포인트를 사용했고 나머지는 Column writing 수업을 듣는 데 사용했다.


Arts of Communication은 Public speaking, 즉 대중연설을 공부하고 연습하는 수업이었다. HKS에는 정치인이나 언론인 등 대중연설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기에 이 수업은 다양한 배경의 수강생들로 구성되었다. 나처럼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외국인 학생들에게는 다소 장벽이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욱 도전해 보고 싶었고 실제로 외국인 학생들의 비중도 높았다. 처음 두 시간 정도 스피치에 대한 일반 이론을 배우고, 그 이후에는 바로 실습으로 들어가 학기가 끝날 때까지 다양한 주제의 연설 비디오들을 보고 연구하고, 나의 연설문을 작성 및 발표하며 다른 수강생들의 연설을 평가하는 과정이 반복되는 수업이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스피치를 하게 되기 때문에 수강생들 사이의 실력 차이가 잘 보이는 수업이기도 했다. 네이티브 학생들 중 과거에 연극을 했다던 어떤 학생은 지금 바로 TED에 나가 연설을 해도 될 정도로 연설문 내용, 속도 조절 및 전달, 제스처와 표정 등이 완벽했다. 다른 학생 하나는 직업이 의사였는데도 타고난 미소와 여유롭고 자신 있는 눈빛을 가지고 모두를 부드럽게 사로잡았다. 물론 네이티브 학생들 중에서도 무대 공포증이 있거나 전달이 다소 딱딱한 친구들도 있었다. 인터내셔널 학생들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매끄럽진 못했다.


나는 처음에 연설문을 외워 잊지 않고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개요만 작성하여 그걸 살짝씩 보면서 부드럽게 이야기를 덧붙여 나가는 것이 정석이었지만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 연설문 전체를 마치 대본 쓰듯 써서 달달 외웠다. 그렇게 해야 조금이라도 여유를 갖고 대중을 바라보면서 말을 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나서는 아이컨택도 조금씩 신경을 쓰고 대중의 반응도 살피며 호흡도 고르면서 스피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의 사건은 Bad News Speech수업 사이클에 일어났다. 2주에 한 번씩 스피치의 테마가 정해 지고 그에 맞는 발표 내용을 정해야 하는데, 그 주의 테마는 ‘정리해고와 같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소식의 전달’이었다. 나는 가상의 정리해고를 가정하고 연설문을 써 나갔다. ‘나도 예전에 실직한 적이 있습니다’ 같은 가상의 내용을 집어넣고 나서 나머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내가 실직했다면 나는 어떤 말이 듣는 것이 좋을까...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으니 그저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좋겠고 어파치 진심도 아닌 어쭙잖은 위로는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으며 회사가 월급을 연장해 주는 몇 달 동안 여행이나 다녀와서 머리를 식히고 다음 스텝을 고려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 생각대로 연설문을 작성했다. 연설문을 수강생 두 명과 함께 미리 연습했는데 그녀들이 내 연설을 들어보더니 ‘와, 좀 세네.”라고 말했다. 나는 표현이 좀 거칠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빨리 현실을 받아들이는 편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이윽고 수업시간이 되었고 나는 계획대로 스피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이하던 관객들 반응이 내가 ‘우리 회사에서는 이러이러하여 정리해고를 하기로 결정했고 이 결정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투박하게 던지자 곳곳에서 실소가 터져 나왔다. 일부는 짜증 난 표정과 함께 저게 진정 회사의 발표 자세란 말이냐 라는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는 점점 히스테리컬 해졌다. 실소를 터뜨리는 그룹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화가 났던 사람들도 덩달아 실소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이윽고 내가 계획대로 “가족과 함께 여행이나 다녀오세요”라고 이야기하자 교실 안은 폭소로 도배되었다.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웃었고 연설이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일부는 내 연설을 끊고 나에게 물었다. “너 일부러 코미디 대본을 쓴 거지? 넌 정말 천재야!” 나는 사실 다 계획된 코미디였다고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진지하게 말했다. “아닙니다. 사실 진지하게 생각해서 쓴 건데…” 그러자 분위기는 정말 차갑게 식었다. 담당인 Danziger교수는 고개를 크게 가로저었다. “이 스피치는 뭔가 좀 잘못되었고, 자세한 이야기는 내 연구실에서 따로 합시다.” 나는 다른 수강생들에게 최저 평점을 받았는데 아마도 이 수업 사상 최저점일지도 모른다. 교수는 나에게 ‘이런 종류의 스피치는 청자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고 마음을 달래 주는 메시지를 언어적 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전달해야 한다. 그것이 수업의 중심 과제였는데, 너의 경우는 완전히 공감이 결여된 연설을 했고 이것은 네가 좀 더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라고 말했다.


이 트라우마적인 경험 직후, 가장 먼저 생각났던 것은 가끔씩 터지는 한국 정치인들의 실언 퍼레이드였다. 한국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가끔씩 상상하지도 못한 실언과 분위기 파악 못하는 발언들을 해서 국민들의 분노와 실소, 조롱을 사는데 물론 나도 그런 감정을 느끼는 국민들 중 하나였다. “저들도 다 잘 배우고 똑똑한 사람들인데, 어떻게 하면 저런 헛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그들은 뭐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비로소 깨달았다 - 바로 내가 one of them이었다는 것을! 나는 정치인도 사회 지도층도 아니지만 한국에서 교육을 잘 받고 나름 사회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며 사회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연령계층으로 성장하였는데 내가 바로 저렇게 청자를 황당하게 만드는 발언을 진지하게 할 수 있는 공감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이건 내 개인적인 자각과 반성의 계기가 됨과 동시에, 한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성공하고 사회 지도층이 되려면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 아니, 사회적 성공의 경우는 공부를 못 해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사회 지도층 - 정치, 경제, 사법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국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판단을 내리는 사람들로 한정하겠다 - 이 되려면 반드시 공부를 잘하고 시험을 잘 봐야 한다. 그런데 공부를 잘하는 것은 IQ의 문제이지 EQ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아마도 EQ가 낮았겠지만 아무도 그것을 측정하지도 않고 배양하려는 노력을 하지도 않아서 나 같은 사람은 그저 명문대를 나오고 시험을 잘 보는 똑똑한 사람 취급을 받아 온 것이다. 나는 사회에서 나보다 더한 공감 장애인들을 많이 봤는데 (그때는 나는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대부분 공부를 잘한 사람들이었고 논리적 사고에 능한 사람들이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이 사회 지도층으로 계속 성장할 것이다.


이날 사건 이후로 나는 커뮤니케이션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글짓기와 중학교 일기 이후로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Column writing수업을 듣는 데에 영향을 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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