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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Oct 13. 2018

공부 잘하는 한국인에게 부족한 점

Korean Elites vs. American/Global Elites

내가 일하고 있는 워싱턴 DC에 점점 젊은 한국인들이 많이 보인다. 내가 다니는 회사만 해도 몇 년 전에 비해 한국인들의 숫자가 빠르게 늘고 있다. 대부분 한국에서 좋은 교육받고 능력 좋은 데다 훌륭한 직업윤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물론 다들 자기 자리를 잘 찾고 커리어를 잘 쌓아 가고 있기는 하나, 스스로의 능력이나 근면함을 봤을 때 좀 더 빨리, 더 많이 잘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미국인 및 세계 각국에서 온 동료들과 비교해서 전형적인 한국 엘리트, 소위 '공부 잘하는 한국인'에게 부족한 점이 무엇일까.


네크워킹

2006년 영화 비열한 거리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 깊은 대사는 이것이었다. (천호진 분 황 회장) “성공하려면 두 가지만 알면 돼. 너한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이 말이 내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역설적으로 나에게 별로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게 뭔지, 나 자신이 실제로 뭘 잘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황 회장은 나의 성공에 있어 타인과의 관계, 즉 네트워크가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데, 지금이야 나도 그 중요성을 공감하고 있지만 당시 내게는 그 대사가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와 닿지 않았다. 당시까지도 살면서 특정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로부터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 성공의 필수요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에서도 네트워크는 어디에서나 중요하고 모두들 그 네트워크의 혜택을 보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공부를 적당히 잘 했고 소위 엘리트 코스를 비스무레 하게라도 밟아 왔다면 그 모든 것은 거의 자동적으로 주어진다. 가만히 있어도 출신학교 같은 공적 네트워크나 (일단 내가 학교 어디 나왔는지 다 궁금해하거나 알고 있고, 동문회 등에 자동으로 명단이 올라간다) 사적 네트워크에 (한국사회는 좁아서 하나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다)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이런 네트워크 밖에 있는 사람들 (좋은 학교를 나오지 못했거나 다른 이유로 엘리트 집단에서 소외된 사람들)은 그 벽이 얼마나 공고한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 다양한 인맥을 쌓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지는 경우가 많을 것이나, 그 안에 있어 왔던 사람들이라면 그런 것들이 당연시되기 때문에 네트워킹 습관 또는 능력이 개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곳 미국에서는 그런 것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찾아다니고 쥐고 있어야 한다. 내가 새로운 일자리를 찾거나 조직 내에서 다른 기회를 찾고 싶으면 출신 학교 (보통 유학을 온 학교) 동문록을 뒤져서 이메일을 보내거나, 아는 동문을 통해 최소 몇 번 점프를 해야 비로소 나에게 필요한 정보를 갖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가 있다. 내가 동원할 수 있는 끈이 별로 없다면 각종 행사 등에 따라다니면서 내가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직접 얼굴을 들이밀고 네트워킹을 해야 한다. 1분 내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효율적으로 알리고 그 사람의 흥미를 끌어야 더 길게 대화를 가져갈 수 있고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거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건 마치 길거리 헌팅과도 같은데 '공부 잘하는' 한국인이 이런 능력도 갖춘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그렇게 흥미를 끈 이후 바로 연결되는 기회가 없더라고 지속적으로 어떻게든 연락을 하면서 끈을 유지해야 나중을 기약할 수 있는데, 별다른 일도 없는데 건수를 만들어서 안부차 연락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 있지 않다면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딱히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 및 직장생활 초반까지 잘 지낼 수 있었기에, 나 역시 살아오면서 이런 능력을 키울 이유도 의지도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대인 지능

조직에서 누가 실세이고 누구 쪽에 줄을 서야 하는지, 조직 여기저기에서 특히 윗분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등의 정보는 꽤나 중요하다. 이런 정보를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 내의 여러 사람들과 두루 친분은 쌓고 격의 없는 잡담을 자주 나누는 것이다. 정보를 아는 것과 그것을 잘 활용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윗사람의 성향, 기분 취향 등을 알아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은 타고나거나 연습이 잘 되어 있지 않으면 어렵다. 물론 한국에서도 이런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잘 하는 사람이 많지만 “공부 잘하는 한국인"으로 살아왔던 사람들 중 다수는 이런 것들에 신경 쓰는 것보다는 ‘묵묵히 내 자리에서 열심히 일을 잘 하면 결국은 인정받게 되어 있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이런 ‘곰 같은' 인간형이 한국에서는 선호되고 인정받는 경우도 많다.


부서에 따라, 섹터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서는 그렇게 곰 같은 자세로 있다가는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결국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어떻게든 윗사람이나 조직 내 영향력이 있는 실무자 눈에 들어야 하는데 그것은 미묘한 대인 지능에 달린 것 같다. 일도 잘 해야겠지만 동시에 윗사람에게도  잘 보이고, 밉지 않게 자기 공도 챙겨 먹으며 모든 사람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며 평판 관리를 하는 사람이 결국 기회를 거머쥐는 경우가 많다.


이런 대인 지능은 한국인 여자들이 한국인 남자들보다 일반적으로 잘 발달되어 있는 편이고 실제로 여자분들이 조직에서 자리를 빨리 잡는 경우를 많이 본다. 똑같이 공부 잘하는 한국인으로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남성 중심적인/이었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대인 지능 발달이 좀 더 요구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기 PR

이건 사실 미국 문화인 것 같다. 학교에서부터 느낀 것인데, 유럽 사람들도 너무 자기 자랑을 하고 말이 많은 스타일보다는 겸손하고 차분한 스타일을 좋아한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보통 겸손하면 자신감이 결여된 것으로 본다. 허풍을 떨거나 나대는 것은 아니라도 나 자신의 경력과 능력에 대해 객관적으로 보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좋게 포장을 해야 비로소 관심을 가진다. 마치 ‘내가 나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누가 나를 소중히 여기리'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미국에서는 거침없는 자기 PR이 어색하지 않다. 그 외 남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인들도 자기 자신에 대해 대체로 겸손보다는 자랑에 가까운 스타일이 좀 더 많은 것 같다. 유럽인들은 대체로 신중하고 겸손한 태도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이며 동아시아 역시 대체로 그러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신중하고 겸손한 것에 더해 윗사람 앞에서는 적당히 ‘쫄아'있는 모습을 보이거나 심지어 약간 부족한 듯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식으로 학습된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된다. 이런 식의 자기 포장은 미국에서는 그저 묻히기 딱 좋은 태도에 불과하다.


물론 겸손하고 배려심이 많은 스타일로도 위에서 이야기한 대인 지능이 좋은 경우 자기 자리를 잘 찾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나보다 딱히 능력이 좋다고 생각되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감 있는 태도로 크게 새로울 것도 없는 말이라도 적시에 명확하게 전달하면서 기회를 부여받고, 그러다 하나 제대로 걸리면 더욱 주목받으며 좋은 기회를 차지하게 되는 상황을 몇 번 보다 보면 한국 사회에 최적화된 개인 포지셔닝이 과연 이곳에서는 얼마나 유효한가 라는 생각이 든다.


커뮤니케이션 / 언어능력

예전에 어떤 교포 택시기사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이 하필이면 일본한테 식민지배를 당해서... 차라리 미국이나 영국 지배를 받았으면 다들 영어도 잘하고 얼마나 좋았겠어.” 이 말은 자조적인 농담에 가깝지만 오늘날 상황을 미시적으로만 바라보면 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미국에 엄청나게 밀려들어오고 있는 인도인들을 보면 (실리콘 밸리는 인도인들이 접수 중인 듯하고, 이곳 동부에도 각 지역에서 온 인도인들이 참 많다) 언어 장벽이 없는 것이 얼마나 유리한지 느낄 수 있다. 아프리카, 카리비안 지역 엘리트나 레바논 지역 엘리트들은 미국 외에 프랑스나 캐나다 퀘벡주로 유학을 가서 그곳에 정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어로 자연스럽게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식민 지배를 받은 과거는 불행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그들의 후손들은 선진국의 언어를 자연스럽게 획득하여 선진국의 교육이나 잡 마켓에 큰 접근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인들은 영어실력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부족하다. 물론 이 추세는 빠르게 개선되고 있어서 최근 한국의 젊은이들은 예전에 비하면 매우 훌륭한 언어능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그래도 토종 한국인으로서 심각한 토론 중에 할 말을 적시에 논리적으로 빠르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실 빠르지 않더라도 차분하게 정확한 어휘를 써서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표현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을 수 있는 정도면 많은 경우에 충분한데. 이 정도의 영어실력 역시 토종 한국인에게는 낮은 벽이 아니다.  


단순히 외국어 능력을 넘어,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조직생활에서 매우 중요하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는 말을 들으면 '나는 말도 잘 하는 편이고, 발표도 곧잘 하니 좋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졌지'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나이를 더 먹고 이곳 미국에 와서야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를 많이 느낀다. 상대방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언어적/비언어적 표현을 통해 잘 파악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상대방이 듣고 받아들일 수 있는 최적의 형식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전달하는 것은 그야말로 '아트'라고 할 수 있다. 청자가 누구인지, 그 사람은 어느 수준의 정보를 원하는지, 디테일과 핵심 요약 중 선을 어디에 그어야 하는지 등도 매우 중요한데 한국의 공교육이 이러한 점을 길러주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서 드는 생각

나의 능력은 내가 살아온 사회의 논리에 맞게 개발/퇴화되는 것 같다. 한국에 살 때는 항상 내가 평균적인 한국인과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다가 여기와 와서는 '나는 결국 한국인이구나'라고 자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도 모르게 한국 사회에서의 논리에 맞춰져 있는 내 자신의 사고/생활 패턴을 발견하게 될 때 그렇다. 몸에 밴 것을 바꾸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적자생존' 아니던가. 결국 상황에 잘 맞춰 가는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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