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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Oct 09. 2018

한국의 교육열을 피해서 온... 미국?

You can run, but can't hide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은 국내외에 잘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 회사를 다닐 때, 아이들을 키우는 회사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가슴이 탁 막힐 때가 많았다. 어릴 때는 영어 유치원을 보내면 한 달에 얼마씩 깨진다는 말, 아이들은 이 학원이 끝나면 저 학원으로 학원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말, 아이들 학교를 위해서 어떻게든 강남 입성을 해야겠다는 부모들의 다짐... 여기서 조금 더 나가면 아이들을 국제 학교에 보내려면 일 년에 얼마씩 깨지는데 (사회 초년생 싱글 직장인이 듣기에는 정말 믿을 수 없는 액수) 유학을 보내는 비용과 비교하면 어떻다는 말, 최근에는 제주도에 있는 국제학교를 보내기 위해 제주도로 이사 가서 기러기 생활을 한다는 말 등등... 듣고 있노라면 설마 저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은 공포로부터 저분들은 참 극성이군 하는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자기부정을 거쳐 저런 고민은 전혀 하고 싶지 않다는 자기 도피로 귀결되곤 했었다. 


그래서 내가 미국에 정착하게 되고 아이들을 여기서 키우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을 때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기선 일단 영어 유치원을 따로 보낼 필요가 없으니 돈이 굳을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이른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을 학교에서 학원으로 빙빙 돌리면서 오직 공부만을 강조하는 지겨운 한국식 교육 시스템을 벗어나 자유롭게 체육 활동도 하고, 성적에 대한 압박이나 지나친 경쟁이 없는 여유로운 환경에서 학교를 다니며 창의성의 길러주는 교육을 받게 될 것 같았다. 아이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가 학교 다닐 때에 비하면 얼마나 좋은 환경이니... 너희들 나중에 아빠한테 고마워 하렴. 게다가 너희들이 만약 한국에서처럼 노력을 들인다면 여기서는 국제적으로도 인정받는 세계 유수의 대학들을 갈 수 있을 거야...'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내가 현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일단 내가 사는 지역 (DMV area - 워싱턴 DC 및 근교)의 어린이집 한 달 금액은 평균 2200불 정도였다. 영어 유치원 같은 비싼 곳에 안 보내도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유치원이 250만 원인 것이다. 학교를 안 보내고 내니나 베이비시터를 쓰면 돈을 좀 절약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들은 보통 시간당 20불 전후를 받는다. 하루에 8시간 쓰면 150불 이상. 일주일이면 750불 이상. 한 달이면 3000불 이상. 340만 원; 그래서 그냥 어린이집을 보내기로 하면 2200불이 끝인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이 감기라도 걸리면 완전히 나을 때까지 한 1주일 정도는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는데 어린아이들은 어린이집에서 감기 옮아 오는 게 일상이다. 그럴 때마다 백업 내니가 필요한데 이러면 결국 돈이 더 들게 된다. 여기에다 한국어는 따로 나와 와이프가 알아서 가르쳐야 하는데 이게 쉽지도 않고 집안일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피곤하기 때문에 잘 안 된다. 결국 돈은 돈대로 들고 아이 교육도 제대로 안 되는 것이다. 차리리 한국처럼 돈 주고 완전 아웃소싱 하는 것이 속이라도 편한 것 같다 (아이와의 연대감 형성은 논외).


그리고 이 지역은 공립학교가 좋기로 유명한 지역이라 부동산 가격이 좋은 학군 위주로 형성되어 있다. 사립학교를 보낼 돈이 없으면 좋은 공립학교를 보내야 하는데 그러면 더 작은 집을 더 비싸게 사야 하고 한 달 모기지가 그만큼 올라간다 (집값에 따라 모기지 자체가 가능 불가능할 수도 있다). 아니면 상당히 비싼 월세를 매달 허공에 날리며 살아야 한다 (DC 지역의 특성상 2-3년 파견 근무자 수요가 많아 학군이 좋은 곳은 집값에 비해 렌트가 더 높게 책정되어 있다). '그래 애들 학교가 중요하지 조금 작은 집에 살더라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지만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들은 바로는 여기서는 아이들끼리 숙제를 위해 주로 각자의 집을 돌아가면서 그룹 스터디를 한다는 것이다 - 한국에서는 학원이나 독서실을 빙빙 돌고 누구네 집에 가는 일은 드물지만 여기서는 공부나 숙제를 위해서는 주로 집을 도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래서 일단 아이들이 머물러 있을 공간 자체가 있어야 하고 애들이 조금만 커도 집은 금방 작아지기 때문에 너무 작은 집에 살면 여러 가지로 불편한 점이 많다고 한다.


그래, 생각과 달리 돈은 많이 들겠네... 그래도 여기는 한국처럼 아이들을 무한 경쟁에 내몰지는 않지 않는가...라는 생각 역시 곧 바뀌게 되었다. 몰론 미국 시골에 가면 아이들이 편하게 학교 다닌다고는 한다. 그런데 내가 사는 지역은 교육열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여기가 그리 대도시도 아니다. 한국으로 따지면 대전 느낌? 대도시인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학군 좋은 동네에서는 아마 더할 것이다). 특히 유태인, 인도인, 중국인 그리고 한국인들의 주도하여 경쟁 환경을 더욱 높여 가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여기는 애들 입시에 스포츠나 각종 과외활동이 중요하기 때문에 공부를 위한 사교육은 물론이거니와 악기나 스포츠 사교육도 '빡세게' 해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거기에다 한국이면 차라리 애들이 학원 버스를 타고 알아서 이동이라도 하지, 여기서는 모두 부모가 차를 태워야 하니 애들 픽업하여 데려다주고, 기다리다 끝나면 다시 픽업하여 다른 곳에 데려다주고 하는 기사 생활을 애들 대학 갈 때까지 해야 한다고 한다. 실상에 대해 알면 알 수록 나의 머리는 아파 왔다.


또한 한국에서는 한국인들과의 경쟁이지만 여기서는 각자 다른 출신 국가를 가진 미국인들과의 경쟁인데, 특히 중국인, 인도인들은 자국에서 더 치열하면 치열했지 한국보다 못하지 않은 경쟁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백인 아이들이 아시아 아이들에게 치이듯 한국 아이들도 이들에게 치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들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어떤 인도인 부모들은 매우 적극적이어서 학교 선생님에게 대놓고 '우리 아이는 이러이러하여 우수하니까 월반시켜 주세요. 월반시키지 못할 이유가 뭐죠? 없으니 월반시켜 주세요.'라고 요구하여 그 치열한 경쟁의 와중에서도 한 발짝 더 앞서 나갔다고 한다. 한국인들은 아무래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지 않나. 이들은 한국 예전 부모세대의 '헝그리 정신'이 아직 살아있는 데다 한국 특유의 튀지 않으려는 심리적 장벽 같은 것이 없으니 아무래도 우리가 한수 접고 들어가는 듯하다.


이렇듯 여기도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그런데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우리 아이가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했다고 치자. 얼마 전 뉴스에 나온 내용인데, 미국 주요 대학들이 입학 사정에서 아시아계 학생들의 수를 줄이기 위해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차별대우를 한다고 한다. 그러면 안되지 이 인간들이... 단체 소송이라도 해야 하나... 아, 너무 나갔다. 우리 아이는 이제 세 살인데. 나중에 생각하자.


... 하여, 나는 다시 머리가 아파온다. 이럴 때면 다시 '나는 과외 한번 안 받고 그냥저냥인 학군에서 자랐지만 공부도 나쁘지 않게 했잖아. 할 애들은 다 알아서 해'라는 레퍼토리를 되뇌며 다시 현실 도피로 간다. 그러면 와이프가 '순진한 소리 그만 하라' 라던가 '당신도 어렸을 때 조금만 잘 잡아주면 더 잘 될 수 있었는데 나는 그게 아쉽더라...'라는 말을 한다. 그러면 나는 "내가 뭐 어때서? 이 정도면 됐지 뭘 얼마나..." 라며 흥분을 하고 마는데...


아이고, 끝이 없다. 나는 이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는 쿨한 아빠가 될 줄 알았는데. 애를 낳아 보니 애와 관련된 일에는 더 이상 쿨한 건 없다. 이렇게 골치 아픈 와중에도 애들은 귀여운 짓을 하니 그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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