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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Oct 27. 2019

미국의 찜질방과 목욕탕, 트럼프

미국에서 목욕탕 다니며 든 생각

나는 사우나/찜질방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에는 그저 싫어하지 않는 정도였지만 30대 초반 정도부터 완전 사랑하게 됐다. 시설 좋은 사우나에서 폭포수나 물줄기 마사지를 하고, 머리가 쨍할 정도의 냉탕에 푹 담갔다가 온탕에 하반신을 담갔을 때 온몸에 피가 도는 느낌, ‘어어어어으으….’ 하는 아저씨 사운드가 나오는 것을 참기 힘든 그 느낌이 포인트다. 한국의 찜질방도 좋았지만 중국의 사우나는 더 환상이었다. 상해에 있을 때 소남국이라는 체인이 기억난다. 노천탕을 구비하고 있어서 겨울에 하반신은 뜨거운 탕에 담그고 상반신은 추운 겨울바람을 맞는 느낌이 일품이었다. 중국 사우나는 한국처럼 찜질하는 곳이나 바닥에 널브러져 쉬는 곳은 없는 대신 안마의자들이 즐비한 휴식공간이 있는데 사실 이게 더 내 취향이다. 안마의자에는 TV 스크린이 붙어 있고 내 자리로 음료나 음식을 마음대로 시킬 수 있는 것은 물론 마사지사도 바로 부를 수가 있다. 안마 의자에 뿌리를 내리고 수다를 떨면서, 또는 졸거나 tv를 보면서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아, 좋은 시절이었다. 생각만 해도 그곳에 다시 가고 싶다.


내가 미국에 온 후로 가장 아쉬웠던 것이 바로 사우나/찜질방이었다. 물론 여기도 있긴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도 대규모 한국 찜질방이 있기는 한데 차로 40분 운전해서 가야 할 만큼 멀었고 무엇보다 가격이 40불이었다. 찜질방 한 번에 47000원이라니!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시설이 좋다고 소문난 곳도 10000원 전후에 불과한데 이건 심리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가격이었다. 그래서 못 가다가 그루폰 같은 곳에서 27불까지 할인하는 딜을 발견했다. 그래, 내 몸이 그렇게 원하는데 30000원이면 가끔 한 번씩은 가 주자 - 하여 미국 버지니아주 패어팩스에 있는 찜질방에 입성했다.


한국인들이 절반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웬걸, 남탕에 있던 한 50명 중에 동아시아인이 나를 포함해 3명뿐이었다 (시간대에 따라 다르기는 할 것이다). 인종 구성도 엄청 다양해서 백인, 흑인, 인도인, 아랍인, 라티노 등 모든 인종이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었다. 사실 내가 미국에서 만나본 상당수의 사람들은 벌거벗은 채로 들어가는 대중목욕탕을 심리적으로 꺼리는 사람이 많았는데 막상 와보니 인종 불문하고 목욕탕 팬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지역에는 ‘미국 미국인' 보다는 다른 세계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어쨌든 30불 이상씩 내면서 벌거벗고 들어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하는, 나와 같은 취향의 사람들이 전 세계에 분포되어 있다니 흐뭇했다. 내부 시설은 훌륭한 편이었고 모든 것이 익숙한 광경이었는데 (목욕탕 문 앞의 수건들, 체중계, 정수기, 음료수 냉장고, 화장대 앞의 남성용 스킨/로션, 구내 이발사, 평상 위의 발톱깎이까지) 단지 TV에서 나오는 것이 한국 예능프로가 아니라 트럼프가 등장하는 미국 국내 뉴스라는 것이 묘한 이질감을 주었다. 


찜질방 휴게실에서 다양한 인종의 남녀가 찜질복을 입고 안마의자 그리고 바닥에 널브러져서 핸드폰을 보거나 수다를 떨거나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즐기는 생활 문화가 미국에 슬금슬금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처음에는 낯선 문화라 심리적 거부감이 있어도 일단 찜질방 몇 번 다녀 보면 취향 저격되는 사람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좋은 옷과 장신구, 화장 등 우리를 덮고 있는 것들을 벗어던지고 모두가 똑같은 파자마 같은 옷을 입은 채 편하게 등 지지며 널브러져 있어도 아무도 나를 평가하지 않는 곳. 자기도 모르게 세상 편하고 개운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활문화는 영상이나 음식처럼 쉽고 빠르게 전파되지는 않겠지만 좋은 것은 어떻게든 공유되고 전파되게 마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 찜질방은 시설은 좋지만 아무래도 멀고 비싸서 자주 가지 않게 되었는데 이후 현재 살고 있는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 목욕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들어보니 정말 작은, 한국 90년대 동네 목욕탕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곳인 것 같았다. 동네 자체도 한인 밀집 지역이고 해서 이번에는 다들 한국인 이용객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웬걸, 이런 곳에서조차 한국인은 나와 세신사 아저씨 그리고 한두 명 정도뿐이었다. 온탕 하나, 냉탕(+폭포수) 하나, 그리고 사우나실 둘이 전부인 아담한 곳에서 일부러 골라 놓은 것처럼 흑인 백인 동남아인 라티노 아랍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모두 옹기종기 않아 목욕을 즐기고 있었다. 


한국 목욕탕과 확실히 다른 점은 이들은 목욕탕 안에서도 수건을 들고 다니며 주요 부위를 슬금슬금 가리고 다닌다는 것이었다 (이전 찜질방은 욕탕에 수건을 갖고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는데, 여기는 동네 목욕탕이라 딱히 규정이 없었다). 한국인이라면 아마도 허리를 꽃꽂이 세우고 자랑스럽게 목욕탕을 활보할 것 같은 신체조건을 가진 흑인 아저씨들이 작은 수건으로 수줍게 주요 부위를 가리고 다니는 모습이 이색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인터넷 리뷰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빌어먹을 수건이 너무 작아!” 아마도 목욕수건을 두르고 다니려고 했는데 한국 사이즈의 작은 수건밖에 없어서 그걸로 주요 부위를 자꾸 가리고 다니려다 보니 순간 분노가 치밀어 올랐던 게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러다 그중 흑인 아저씨 하나가 세신을 받겠다고 했다 (“Body Scrub”). 덩치가 산만한 흑인 남자가 세신대 위에 올라가서 작은 체구의 아시아인 남자에게 오롯이 자기 몸을 맡기고 편히 누워 있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작은 수건으로 주요 부위만 계속 가리면서 바로 누웠다가, 옆으로 누웠다가 엎드렸다가 하는데 마치 잠을 자는 듯, 그 몸이 축 처진 것이 그 어떤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는 몸이었다. 낯선 사내에게 이렇게 무방비로 자신의 몸을 맡기고 자기 몸을 씻김 당하다니,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아닌가. 미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는 연일 분열과 증오를 조장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미국의 근간인 다인종 이민자 사회를 뿌리부터 흔들려하고 있지만, 백악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인타운의 동네 목욕탕에서는 이렇게 서로 다른 인종들의 사내들이 모든 가드를 내려놓고 하나의 탕에 몸을 담그며 편안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게다가 자신들에게는 분명 낯선 풍습일 세신까지 스스럼없이 시도하는 오픈 마인드, 그리고 낯선 이방인을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100% 신뢰한다는 것을 말이 아닌 몸으로 보여주는 모습.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 목욕탕에서 세신을 받을 수 있는 초대권이라도 하나 선물하고 싶다. 낯선 한국인 이민자에게 자기 몸의 곳곳을 훑으며 각질을 제거하도록 허용하고 나면, 개운한 기분과 부드러운 피부를 누리는 것은 물론 나와 다른 이들과 어울려 사는 데서 오는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깨달을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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