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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재희 Oct 23. 2018

유태인 친구의 명절 증후군

"I think I can be a Korean."

우리 가족 모두와 친하게 지내는 미국인 여자 동창이 있는데 유태인이다. 싱글이다 보니 외로움을 좀 타고, 그래서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는데 재미있는 패턴을 하나 발견했다. 일단 이 친구는 Thanksgiving 등의 명절이나 유태인 명절 또는 가족행사가 있을 때 가족들이 있는 보스턴에 갔다 돌아오는데 돌아오는 첫날 항상 우리 집에 온다. 와서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내 와이프와 주로 회포를 푸는데 내용은 가족들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다.

명절 때마다 친척 어른들과 사촌들을 만나는데 평소에는 그리 친하지도 않은 친척 어른들이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으며 압박을 줘서 너무 듣기가 싫고, 사촌들과 비교하는 것도 짜증나고, 최근 오빠의 새언니는 하는 짓마다 밉상이라 꼴보기 싫고 등등...듣다 보니 친숙함과 낯섬이 동시에 느껴졌다. 이건 완전 한국 친구 이야기 같잖아! 너는 분명 미국인인데...


특히 명절 스트레스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지금 이 친구는 학교도 잘 나오고 취업도 잘 되었기에 결혼 외에 다른 압박은 적지만 일반적으로 가족 친지들이 모이면 공부, 취업, 결혼 등의 질문이 쏟아지고 친척들끼리의 비교 압박이 몰려오는 것 자체가 스트레스라는 것이다. 내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국인들은 이렇게 오지랖을 부지리 않고 부모들조차 자식들의 인생에 이러쿵 저러쿵 하는 것을 조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렇다. 미국인 중에서도 유태인은 그냥 다른 것이다. 이 친구 이외에도 나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동네에서 (어쩌다 보니 현재 유태인 동네에 살고 있다) 제법 많은 유태인들을 접했는데 보면 볼 수록 느끼는 것은 이들은 한국인과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바로 떠오르는 점들을 적자면 다음과 같다.


자기 문화에 대한 강한 인정 욕구

자기 문화에 대한 자부심은 누구가 가지고 있지만 색깔은 조금씩 다르다. 예컨대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자기 문화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부심을 갖고 있는데 이유야 어찌되었든 그들은 진심 그렇게 생각하는 듯 하다. 미국인들은 겉으로는 미국에 비판적인 경우도 많지만 미국이 당연히 세계최고라는 의식이 은연 중에 드러난다. 유태인의 경우는 자신들의 명절이나 풍습 (Kosher 음식 등)을 알림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데, 강한 인정욕구와, 조심스럽지만 약간의 자격지심이 섞인 느낌이랄까...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힘들었던 역사도 있고 해서 그런 것 같다.


근로 윤리가 높음. 즉, 기본적으로 열심히 살고 열심히 일함

이곳에서 사람 쓸 일이 있어서 계속 여러 출신배경의 사람들을 써 보는데 유태인은 히스패닉이나 흑인, 다른 백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단 일을 꼼꼼하고 착실하게 잘 해서 일반적으로 한국인이 생각하는 기준에 잘 맞는다. 다만 돈을 지불한 만큼에 대해 이러이러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라는 기준이 에누리 없이 확고하다. 나의 업무는 여기까지이고 이러한 것은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기대하면 안 된다는 말을 미리 확인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점은 한국인보다는 (중국) 상해인에 좀 더 가까운 듯 하다.


강한 교육열

이건 워낙 유명하지만 솔직히 한국인으로서 유태인의 교육열이 한국 강남의 교육열보다 강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도 교육열이 높은 곳 중의 하나인데, 여기서 강한 교육열로 본래 미국의 여유롭고 느긋한 학교 분위기를 경쟁적인 분위기로 흐리고(?) 있는 대표적인 민족이라고 하면 인도인, 중국인, 한국인 그리고 유태인이라고 하는 것 같다. 이들 모두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학교 가고 출세해야 한다'는 기본적 사고방식이 장착되어 있다.


배우자 선택시 조건 많이 따짐 / 신상 털기

내 친구는 온라인 데이팅 앱으로 항상 소개팅을 잡고 있는데 예외없이 항상 유태인 의사 아니면 변호사, 그리고 가끔 공무원과 만난다. 남자를 만날 때 이렇게 일관적으로 특정 직업군으로만 필터를 걸어 만나는 사례는 한국, 그리고 중화권에서는 자주 봤지만 미국에서는 다소 낯선 느낌이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유태인들은 주변 사람들의 출신 학교나 직업 등에 대한 관심이 많고 신상 털기를 자연스럽게 한다. 많은 한국 사람들처럼, 사람 자체를 겪기 이전에 조건을 보고 그 사람이 어느 정도/수준인지 재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전에 단기간 일했던 회사에서는 유태인 직원이 내 이력서를 보고는 내 한국 출신 대학교를 열심히 검색해 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번외로 유태인 친구들이 했던 이야기 중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유태인 부모들은 어린 자식들에게 항상 뭘 많이 먹이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건 사실 인류 보편적인 행동일 수도 있겠으나 듣는 순간 나는 우리 집에 계실 때 냉장고를 뒤져 나에게 항상 뭘 먹이려 하셨던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이미 충분히 통통한데도 잘 먹어야 복 있다며 급기야 나의 입으로 떡을 밀어넣으시던...

 

이런 이야기를 그 유태인 친구와 종종 했기 때문에 그녀도 한국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들어서 익히 알고 있는데 듣고 나서는 "음...나는 한국인도 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유태인 하면 마치 미국의 모든 금융 문화 권력을 잡고 흔들며 밀실에서 시오니즘을 전파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기득권 중의 기득권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여기서 보는 유태인 보통사람들은 그저 미국에 좀더 먼저 온 우리 (한국인)같은 사람들처럼 보인다. 미국에 와서 열심히 악착같이 돈 모으고 잘 살아서 자식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보내고, 그러다 보니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생기고 이제는 좀더 자신들의 목소리가 좀더 커지길 바라는. 이런 모습이 앞으로의 한국계 미국인 나아가 아시아계 미국인의 미래라고 보면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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