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 10-14
태풍이 오면 떨어져 나갈까봐 전날 존스노우의 보석 그네도 철거하여 집안에 걸어두었다. 존스노우의 발이 닿았던 그네를 만져보며 그나마 이렇게 추억할 물건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에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느라 '홰'의 기능을 하던 나무젓가락은 검게 곰팡이가 쓸어 있었다. 나무젓가락만 빼내서 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젓가락을 끼웠다.
밤새 천장이 뚫어질 것처럼 비가 내렸는데도 나는 단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바로 머리 위가 천장인 2층 침실에 누워있다보니, 둔해서라기보다 격한 빗소리가 주는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고 기절하듯 잠에 빠져버린 것이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 때는 거의 항상 저층과 고층 사이에 끼어 있어서, 지면에 내리는 빗소리와 천장에 내리는 빗소리가 어떤 것인지를 잊고 살았다.
실제 태풍이 몰고온 빗소리는 어찌나 요란한지 거의 난타 공연을 듣는 수준이다. 콩알보다 큰 우박까지 섞여 내리면 소리는 말할 것도 없고, 바깥에 세워둔 자동차 천장에 자갈을 맞은 듯 흠집이 나기도 한다. 그럴 때는 집안에 있어도 누가 내 머리를 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멍해지곤 했다. 비 때문에 전선 위의 나뭇가지가 부러지기 십상이어서 반드시 어떤 지역에는 전기가 끊기고, 낮은 도로에 물이 고여서 차가 다니지 못하게 된다. 복구도 금방 되는 게 아니라 며칠씩 걸린다. 도심에서 많이 떨어진 전원주택에 사는 존 선생님은 이럴 땐 완전히 고립되기 때문에 양초와 식량을 미리 충분히 준비해두신다고 했다.
아침에 눈 떠보니 여전히 비는 가늘어졌다가 굵어졌다가를 반복하며 내리고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 부엌창의 블라인드를 걷고 뒤뜰을 내다보니 잔디밭 위로 누런 흙탕물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 뜰과 건너편 아파트 사이에서 담장 역할을 하는 윈터베리 나무 울타리 아래에도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잔뜩 떨어져 있었다. 그 시간쯤이면 존스노우가 앉아서 망을 보던 위치의 돌출된 나뭇가지를 살펴보았다. 존스노우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여 10분 간격으로 계속 내다보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지난 몇 달 동안 아침마다 그곳에 앉아 나와 눈을 맞추던 작은 새가 사라진 것이다! 존스노우가 차지하던 자리는 작디작은 한 점에 불과했는데, 새가 떠나버렸다고 생각하니 눈앞의 공간 전체가 텅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전날 아침 존스노우가 부엌문 유리창에 부착된 넥타통으로 날아와 식사할 때 내가 문 바로 안쪽에 서 있었는데, 그게 존스노우를 본 마지막이 되고 말았다. 존스노우는 유리창에 부착된 넥타통이 인간의 공간과 너무 가깝다는 걸 알기 때문인지 내가 넥타통 바로 앞으로 다가가면 곧장 도망을 치곤 했었다. 그런데 어제는 내가 있는 줄 알면서도 가까이 다가왔고, 얇은 유리창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자신을 자세히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 것이다.
카메라로 당겨서 확대한 사진으로만 보던 존스노우의 눈동자와 목깃털을 그렇게 코앞에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나 작고 연약하지만 아름답고 단단했다. 물고기 비늘처럼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덮인 반짝이는 깃털에 홀려 감히 카메라를 가지러 갈 생각도 하지 못했다. 존스노우는 나름대로 내게 작별인사를 했던 건데, 그 순간에는 내가 알아듣지 못한 것이다. 태풍 때문에 잠시 피한 것이 아니라 태풍도 피할 겸 미루고 미루던 긴 여행길에 오른 것이다. 곧 닥쳐올 걸 알면서도 늘 두렵기만 하던 이별이 이별같지 않게 지나가 버리다니... 좀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더라면 오늘 덜 허전했을까? 그 작은 새가 도대체 뭐라고...
하루종일 창밖을 내다보았지만, 존스노우는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비 때문에 처마 밑에 걸어둔 세로형 피더와 부엌현관문 유리창에 부착해둔 가로형 피더에는 다른 청소년 벌새들과 암컷 벌새들만 찾아왔을 뿐이다.
태풍이 오면 떨어져 나갈까봐 전날 존스노우의 보석 그네도 철거하여 집안에 걸어두었다. 존스노우의 발이 닿았던 그네를 만져보며 그나마 이렇게 추억할 물건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에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느라 홰의 기능을 하던 나무젓가락은 검게 곰팡이가 쓸어 있었다. 나무젓가락만 빼내서 버리고, 그 자리에 새로운 나무젓가락을 끼웠다. 새로워진 벌새 그네를 보니 왠지 존스노우가 내년 봄에 꼭 돌아올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날 수는 없으니까... 기다림은 힘들겠지만, 어떻게든 살아질 것이고, 그러다보면 봄이 와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너를 기다리게 되겠지.
나는 그날 하루 종일 '러블리즈'의 '어제처럼 굿나잇'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리고 눈물도 꽤 흘렸던 것 같다.
내일부터 못 보면 너는 아무렇지 않을 거니
안녕이란 말로만 참 쉬운 것
매일 너의 목소린 내게 습관보다 무서운데
너 혼자서 준비하고 그런 얘기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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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처럼 굿나잇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이별대신 굿나잇 내일 니 맘 바뀔지 몰라
하룻밤만 안녕 내일은 다 괜찮을 거야
다신 안 볼 사람들 하는 그 안녕이
아닌 걸지도 몰라
https://www.youtube.com/watch?v=K8xpDBBuyJ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