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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라 Jan 18. 2022

벌새의 선물 1-철새들의 길목

벌새와 나의 이야기 12

벌새들이 떠난 후 유튜브에서 다른 지역의 벌새 피더들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채널들을 찾아냈다. 그 중에서 웨스턴 텍사스와 남부 캘리포니아에 설치된 벌새 피더를 라이브캠으로 보여주는 비디오를 모니터 한쪽에 열어놓고, 틈틈이 다양한 벌새들을 감상하면서 일했다. 루비뜨로티드 허밍버드뿐만 아니라 애나스 허밍버드, 루포스 허밍버드, 블랙친드 허밍버드, 알렌스 허밍버드, 코스타스 허밍버드 같은 다양한 종류의 벌새들이 피더에 모여들었다. 그 다양한 벌새들을 '나만의 벌새'와 비교할 수는 없지만, 존스노우에 대한 애틋함과 허전함은 어느 정도 사그러들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Xe8MpU7uzk


라이브캠 영상 속에서 가끔씩 벌새가 아닌 다른 새들도 넥타를 먹어보려고 묘기를 부렸는데 그 모습이 너무 코믹했다. 달콤한 맛을 좋아하는 동물이 사람과 벌새만 있는 건 아니다. 꿀벌, 나비, 파리 같은 곤충들도 수시로 벌새의 피더를 찾아오고, 곰은 벌꿀을 먹고, 강아지들도 달콤한 과자를 좋아하며, 오리올즈라 불리는 주황빛 새는 오렌지를 좋아해서 오리올즈 애호가들은 피더에 오렌지를 놓아둔다. 

    

온몸이 오렌지빛인 오리올즈. 이들도 철새여행을 한다. 


벌새들이 떠나자마자 나의 부엌 유리창 화면 속에는 다른 새(bird) 배우들이 출연하기 시작했다. 사실 봄에 벌새 피더를 설치한 직후에 기존의 새들이 벌새 피더를 공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새들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들의 영역에 어느날 갑자기 스탠드가 세워지고 설탕물이 걸리더니, 붕붕거리는 작은 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면서 특별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그게 못마땅했던지 브라운뜨래셔 한 마리는 빠른 속도로 피더 스탠드에 뛰어오르면서 피더를 흔들어서 벌새들을 위협하는 행동을 했고, 수시로 스탠드 꼭대기에 앉아서 망을 보는 장소로 활용했다. 나는 벌새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바닥에 놓아두었던 물그릇을 치워버렸고, 곡물씨앗과 해바라기 씨앗 제공을 멈추었다. 물그릇을 놓아두면 새들이 종류대로 찾아와서 물을 마시고, 볕 좋은 날에는 목욕을 하곤 했는데 말이다.     

     

벌새들이 떠난 후, 나는 다시 물그릇을 씻어서 깨끗한 물을 담아주고, 아침마다 한 줌의 곡물씨앗과 해바라기 씨앗을 뿌려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의 깻잎들에 들깨 열매까지 맺혔기 때문에 뒤뜰은 순식간에 다른 새들의 식당으로 변모했다. 미국인들이 살던 아파트 한 칸에 갑자기 이상한 동양인이 와서 살더니 수상한 냄새가 나는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깻잎을 심었던 첫해에는 새들이 들깨밭을 건드리지 않았는데, 다음해 가을부터 들깨맛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방부제도 없고 영양이 풍부한 들깨를 매일 매일 따먹는다면 새들의 건강 유지에도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옐로우럼프드와블러.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노랑궁둥이 휘파람새. 이 지역 사람들은 이 새를 '버터 벗(Butter butt)'으로 부른다. 버터색 엉덩이라는 뜻이다.


깻잎밭에서 카디널, 캐롤라이나 렌, 모킹버드, 하우스핀치, 그레이캣버드, 옐러우럼프드 와블러, 브라운 뜨래셔들이 한꺼번에 여러 종씩 튀어나온다. 내가 인기척을 하면 곧바로 도망을 친 다음 건너편 윈터베리 숲으로 날아가서 맛은 덜하지만 배는 채울 수 있는 새빨간 윈터베리 열매로 식사를 계속한다. 윈터베리 나무의 이름이 '윈터베리(winterberry)'인 이유는 열매가 워낙 맛이 없어서 새들이 가장 늦게까지 안 먹고 두었다가, 다른 먹거리가 다 사라진 겨울에 그 열매로 연명하기 때문이다.  


하우스핀치 수컷. 머리와 얼굴부분이 빨갛다. 

하우스핀치는 일가족들이 함께 오는 건지... 어떨 땐 수컷만 세 마리 오기도 하고, 수컷과 암컷이 고루 섞여 오기도 한다. 하우스 핀치 수컷들은 몸색깔이 더 붉을수록 암컷들에게 인기가 있다는데, 그러려면 몸을 더 빨갛게 해주는 열매를 먹어야 한단다. 하우스핀치 암컷들은 머리에 붉은 색이 없어서 참새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려면 적들의 눈에 띄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우스핀치 수컷. 머리와 얼굴 가슴이 모두 새빨갛다. 

하우스 핀치(house finch)들이 미국 전역에 퍼지게 된 사연이 재미있다. 하우스핀치는 원래 북미대륙에서 남서지역과 멕시코 지역쪽에 서식하던 야생조류인데, 1940년경 색이 아름답다는 이유로 마구 포획되어 뉴욕지역에서 '헐리우드 핀치(hollywood finch)'라는 이름으로 애완용으로 판매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발견한 야생동물 보호주의자들이 항의를 하자 펫숍 주인들은 벌금을 내기 싫어서 새들을 방생해버렸다. 뉴욕 지역의 버드와처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어느 날 갑자기 정원에 가슴이 붉은 새들이 나타났다고 기뻐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부지방에만 서식하던 하우스핀치는 북미대륙 전체에 골고루 퍼졌고, 토착 참새들과 경쟁하는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하우스핀치 일가족. 머리색이 갈색인 쪽이 암컷. 

내가 하우스핀치를 좋아하는 건, 미국 인디애나 주 블루밍턴에서 처음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살던 캠퍼스 아파트 '튤립트리' 앞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새가 하우스핀치였기 때문이다. 유리창 앞에 서 있던 거대한 스윗검 트리 속에 그들의 둥지가 있어서 자주 볼 수 있었다. 몸이 빨간 새로는 하우스핀치 말고도 카디널과 스칼렛 테니저(Scarlet Tanager)가 있었는데, 파란 몸색깔의 새들만큼이나 아름답고 신기해서 발견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결국 나의 유학생활의 시작과 끝에 새들이 있었다. 영어도 서투르고 아는 사람도 없었던 초기에 아무 말 없이 나에게 기쁨과 위안을 주었던 존재들이 새들이었고, 영어는 익숙해졌지만 유학생활을 끝낼 수 없어서 고통 받던 유학 말기에 역시 강력한 위로와 즐거움을 준 존재는 벌새들이었다. 그리고 놀라운 건, 내가 5년 동안 살면서도 블라인드를 내려두기만 했던 창문 밖의 나무들이 바로 수많은 철새들이 잠시 쉬었다가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다는 점이다. 인디애나주에 살 때는 다양한 종류의 철새들을 발견하기 위해 쌍안경을 들고 가까운 주립공원까지 나가야 했는데, 조지아주 우리집 부엌의 뒷문 유리창 앞에서 가만히 선 채로 철새를 포함하여 30종이 넘는 새들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벌새가 남기고 간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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