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와 나의 이야기 11
실내에서 생활하는 반려동물에게 인간 동반자의 부재는 어떻게 인식될까? 그 사람이 시야에 보이고 그 냄새를 코로 맡을 수 있고 숨쉬는 소리를 귀로 들을 때 살아있는 것으로 인식하지만, 몇 시간씩이나 시야에서 사라져 냄새도 나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죽은 것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시야에서 사라져도 여전히 살아 있고 단순히 외출을 했으며, 조금만 기다리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한다는 건 상당히 높은 단계의 인지능력이자 믿음일 것이다. 젖먹이 어린 아기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 엄마가 옆에 계속 있어줘야 하는 이유도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의 벌새 존스노우는 사라졌지만, 존스노우가 죽지 않고 남쪽으로 떠났으며 내년 봄이 오면 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은 기본적인 인지 능력에 긍정적인 믿음과 상상이 보태진 것이다. 결국 정을 주던 존재의 상실에서 오는 외로움과 허전함으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사고 방식이다. 사실은 존스노우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음을 알고 있지만, 지금 당장 어떻게든 견뎌보기 위해 가장 위안이 되는 방식으로 합리화하는 것이고, 이런 합리화는 실제 효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한두 달이 지나면 허전함은 다른 것으로 채워져서, 내년 봄 벌새들이 돌아올 무렵이 되면 내가 기다리던 존스노우가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크게 상처받지 않게 될 것이다.
머물던 벌새들이 모두 떠난 후 간혹 나그네 벌새가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10월말까지 피더는 계속 걸어두었다. 다만 기대감을 품고 창밖 풍경 속에서 벌새를 찾는 행동은 멈추었다. 12월이 한참 멀었는데도 마트에 가서 크리스마스용 줄전구를 사서 식탁 옆 유리창 둘레에 장식했다. 내가 요리를 하거나 밥을 먹으면서 벌새와 눈을 마주치던 유리창이었다. 창밖 토마토 지지대를 감고 오른 나팔꽃 덩쿨에는 여전히 보라색과 분홍의 나팔꽃이 번갈아 피어나고 있었다. 부엌에서 뒤뜰로 통하는 출입문 위에도 커다란 유리창이 붙어 있었는데, 그 유리창에는 줄곧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었다. 처음엔 그 문을 통해 도둑이 침입하거나 집 내부를 들여다볼 것이 두려워서 블라인드로 덮어두었고, 나중에는 내 존재를 들키지 않고 벌새를 관찰하기 위해 블라인드 뒤에 숨어 있었다. 이제 벌새를 관찰할 필요는 없으니 블라인드를 시원하게 걷어올렸다. 캄캄한 벽이었던 공간에 유리창이 뚫린 것처럼 후련했다.
부엌문을 열고 나가서 좁은 테라스 바닥에 새 모이용 해바라기 씨앗을 골고루 뿌려두었다. 수박무늬 물그릇도 헹궈낸 후 깨끗한 물을 채웠다. 윈터베리 숲 속에서 모킹버드와 카디널들이 짹짹거리며 고개를 쏙쏙 내미는 게 보였다. 이제 막 들깨 씨앗이 열리기 시작한 깻잎 밭에도 한번씩 물을 주었다. 언젠가부터 나의 들깨는 새들의 가을 식량으로 변신했다.
집 안으로 들어와서 새로 뚫린 유리창으로 바깥을 내다보았다. 지금까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내려둔 블라인드가 사실 나를 구속하고 내 눈을 가렸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뒤뜰로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별로 없거니와, 우리집엔 들여다 본다 해도 훔쳐갈 만한 물건이 없었다. 거의 다 친구들에게 받았거나 중고샵에서 싸게 구입한 살림들이어서 누가 가져간다고 해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블라인드 하나 걷었을 뿐인데, 그 다음날부터 유리창은 나에게 놀라운 선물을 가져다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