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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라 Jan 30. 2022

벌새의 선물 4-빨강새와 파랑새의 진실

나의 벌새 이야기 15

벌새 다음으로 좋아하는, 아니 벌새가 나타나기 전까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새는 온몸이 빨간색 깃털로 덮인 카디널이다. 어떤 새들은 실제 몸색깔과 햇빛을 받았을 때의 몸색깔이 다른데 카디널 같은 경우에는 깃털에 붉은 색소가 있어서 햇빛을 받으면 좀더 밝게 빛날 뿐 그늘 속에서도 여전히 새빨간 빨강새이다. 햇빛 아래 예쁜 하늘빛을 자랑하는 블루제이 같은 경우 실제 깃털색은 회색이기 때문에 카디널과 대비가 된다. 


블루제이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고 그냥 그렇게 태어났을 뿐인데도 욕을 뒤집어쓰는 건, 블루제이가 매의 소리를 흉내내서 다른 새들을 쫓아낸 후 먹이를 독점하거나, 다른 새의 알도 훔쳐먹기 때문이다. 사실 다른 새들도 여러가지 소리를 내고, 자기보다 작은 새들의 알을 훔쳐먹는데 말이다. 내 생각엔, 그늘속에서 회색빛으로 돌아간 블루제이를 보고 실망감을 느꼈거나, 파랑새를 만난 줄 알고 블루제이의 깃털을 훔쳤는데 집 안에서 보니 회색 깃털이어서 화가 난 경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빨강새 이야기는 없어도 파랑새 이야기는 있는 건, 도저히 붙잡을 수 없는 그 깃털의 파랑이 부리는 신비 때문일지도 모른다. 


10여년 전에 내가 모 잡지에 기고했던 글 중에서 이런 부분을 발견했다. 


미국에 와서 처음 사귄 친구는 사람이 아닌 새였다. 말도 안 통하고 타고 나갈 차도 없어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있는 작은 마켓에 음료수를 사러 가던 길이었다. 넓은 잔디밭에 가로놓인 좁다란 아스팔트길을 걸어가는 동안 뭔가 잠시 나의 시야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잔디밭길이 끝나고 기찻길 옆 덤불이 늘어선 길로 접어들 무렵에야 그 겁 많은 스토커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흰색, 하늘색, 연한 파랑, 연보라색으로 이뤄진 깃털에 간간이 까만 선으로 포인트를 준, 세련된 빛깔의 새였다. 그 새의 이름이 '블루제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에 버드와처인 과 친구 케이시에게서 작은 도감을 얻은 후였다. 내가 블루제이의 아름다움을 칭송했을 때, 케이시는 그다지 동의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 새의 진짜 깃털 색을 당신이 몰라서 하는 소리야. 잠시 햇빛을 받을 때만 빛을 반사해서 그런 색깔을 낼 뿐, 비 오고 흐린 날이나 어둠 속에 있을 때 그 새의 색깔은 어두운 회색이지. 게다가 다른 새의 둥지에서 알을 훔쳐먹는 야비한 새라고. 몰래 매 울음소리를 흉내내서 다른 새들이 다 도망치고 나면 그때 딴 새들의 둥지를 덮치는 거지.


 차라리 카디널을 좋아하는 게 어때? 새빨간 색깔이 아름다운 데다, 부부금슬이 좋아 늘 함께 다니고, 울음소리도 특출 나게 아름답거든. 잘 들어봐. 맑고 낭랑한 음색으로 '아임 프리티 프리티 프리티∼'라고 노래하지. 좀 오만한 감은 있지만 예쁜 건 사실이잖아."


 케이시의 가르침 덕분에 카디널에 대해서도 확실히 알게 됐다. 심심할 때면 아파트 주변의 잔디밭과 숲을 산책하면서 카디널과 블루제이 찾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덩그러니 홀로 선 전나무 옆을 지나다 카디널 울음소리를 들었다. '암 프리티 프리티 프리티… 암 프리티 프리티 프리티….' 노래하듯 선명한 멜로디가 있는 그 소리는 분명히 카디널이었다.


 나는 살금살금 다가가 나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나뭇가지 속에 숨어 노래하던 새는 의외로 카디널이 아닌 블루제이였다. 가장 높은 음을 내야 하는 첫 번째 '프리티'를 할 때는 성악가처럼 가슴과 고개를 높이 쳐들며 반동을 줬다. 다른 새의 소리를 여러 가지로 흉내내는 새는 '모킹버드'이고, 블루제이가 흉내낼 수 있는 건 오로지 매뿐이라고 했는데…, 사람들은 블루제이에 대해 뭔가 오해를 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게다가 주변에 다른 나무도 새도 없는 곳에서 하필이면 카디널 소리를 흉내내다니.


이 글 속에 등장한 케이시의 말대로 나는 이후에 카디널을 좋아하게 되었고, 몸색깔이 파란 새에 대해서는 블루제이보다 이스턴 블루버드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I'm pretty I'm pretty~~"하고 울어대는 카디널의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경지가 되었다. 특히 조지아에 살던 무렵 우리집 뒤뜰 윈터베리숲에는 카디널 가족이 여럿 상주하고 있었다. 

 

암컷에게 해바라기 씨앗 껍질을 까서 먹이는 수컷 카디널(왼쪽의 빨간새가 수컷)

 

조심성이 많고 부부애와 가족애가 특출난 카디널은 자주 암수 한쌍 또는 부모와 자식이 함께 나타났다. 수컷 카디널은 식사를 하다가 종종 옆의 암컷 카디널의 입에 껍질을 발라낸 해바라기씨앗을 넣어주었고, 암컷 카디널은 스스로 까먹을 수 있으면서도 수컷이 넣어주는 해바라기 씨 알멩이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 모습은 마치 키스를 하는 것처럼 보여서 종종 로맨틱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비내리는 날에도 정분(?)을 나누는 카디널 부부

각자 서로 밥을 먹다가도 눈만 마주치면 수컷이 암컷에게 조르르 달려가 자기 입에 있던 먹이를 암컷 입에 넣어준다. 이들은 이미 백년가약을 맺었고, 암컷의 뱃속에는 알들이 생성되고 있으리라. 춥고 비오는 날에도 수컷은 이 키스를 빼먹지 않았다. 어찌나 다정한지...사이 나쁜 인간들이 좀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내 음식을 다른 새의 입에 넣어준다는 건, 내가 죽더라도 넌 살아야 한다라는 뜻일 테고, 그게 번식의 본능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자기 희생이 아니라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말 그대로 예쁨 그 자체인 카디널 수컷


우리집 뒤에 살고 있는 것 같진 않지만 한번씩 요란스럽게 깍깍 거리면서 방문하는 새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블루제이였다. 자주 방문하지 않기에 카디널처럼 사진을 제대로 찍어두지 못한 게 아쉽다. 행동거지도 별나서 풀쩍풀쩍 뛰어다니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초점 맞추기 어려웠다. 


그러나 나무 속에 숨어서 카디널의 노래를 흉내내던 블루제이를 본 후부터 블루제이에 대해서는 뭔가 누명을 뒤집어쓰고 미움을 타는 존재에 대한 연민 같은 걸 느꼈다. 그래서 나는 가끔씩 블루제이가 좋아한다는 땅콩을 제공할 때가 있었다. 다행히 블루제이를 사랑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사람 먹기에도 비싼 땅콩 사료를 매일 내놓는 곳이 있었고, 블루제이는 주로 그런 곳에 상주하는 것 같았다. 


블루제이의 깃털이 파랗게 보이는 건 햇빛 반사 때문이다. (이미지 출처:https://www.allaboutbirds.org/guide/Blue_Jay/photo-gallery)

미국인들은 블루제이가 "제이제이!"하고 울어서 이름이 '제이'라고 했는데,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냥 "까악까악"으로 들었다. 그러다가 10년 세월이 흐르자 자연스럽게 "제이제이"로 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버드와칭을 오래 하다보니 블루제이에 대한 또 한가지 진실을 알게 되었다. 블루제이가 다른 새의 둥지에서 알을 훔쳐먹는다는 설이 사실인지를 증명하기 위해 몇몇 과학자가 블루제이의 위장에 든 먹이들을 분석해보았는데, 그 결과 1%의 블루제이의 위에서만 다른 새의 알 성분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99%의 블루제이는 결백하다는 이야기이다. 


파란색 색소가 없고 햇빛을 푸른색으로 튕겨내는 프리즘효과로 파랗게 보인다는 점은 모두 마찬가지인데도, 이스턴블루버드나 인디고번팅은 작고 사랑스러운 외모 덕분에 칭송을 받는 반면, 블루제이는 조금 큰 몸집과 시끄러운 목청 때문에 밉상을 타게 되었다. 그게 얼마나 억울했으면, 내가 만났던 블루제이는 나뭇가지 속에 몸을 감춘 채 홀로 "아임 프리티~~아임 프리티~~"하고 카디널의 노래를 연습했을까?


언젠가 주차장에서 한점 빨강으로 누워있는 카디널 수컷을 발견한 적이 있다. 어떤 이유로 수명을 다한 모양인데 온몸에 흠결 하나 없었다. 나는 새의 몸이 훼손되는 것보다는 자연 속으로 돌아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휴지를 여러겹 접어서 새의 몸을 집어올려 뒤뜰 숲 그늘진 곳으로 옮겨주었다. 그때 생각한 것보다 새의 몸이 너무 가벼워서 놀랐다. 바람이 불면 그대로 날려가버릴 것처럼 가벼웠다. 그래서 새들은 날 수 있는 것이구나... 결국 새는 생명의 외피를 입은 한 점의 공기일 뿐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 눈에 보이는 많은 생명체들이 결국 물이거나 공기일 뿐인데, 얇은 외피를 보며 빨갛다 파랗다 예쁘다 밉다 판단을 한다. 예뻐하고 미워하는 이 모든 판단과 감정도 어쩌면 잠시동안의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무지개 너머까지 날아가는 새들이 일깨워주었다.    


땅콩을 좋아하는 파랑새 블루제이(사진 출처: https://www.reconnectwithnature.org/news-events/the-buz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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