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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리라 Jan 28. 2022

벌새의 선물 3-녹색제비떼의 방문

벌새와 나의 이야기 14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아무 대가 없이 어느날 갑자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과 같다. 잘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고, 세상은 나를 잊었으며, 나는 10년 묵은 묵은지처럼 익다 못해 푹푹 썩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내 집 뒤뜰에 날아온 반짝이는 새들은 그렇지 않다고, 누구에게나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준다. 


전날 밤 내내 비가 내리더니 아침에는 거의 겨울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었다. 추우면 짜증이 나야 정상인데, 창밖에서 들려오는 새로운 새들의 수다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1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먼저 2층 유리창으로 뒤뜰을 내려다 보았다. 한 일주일 가량 머무르던 노랑궁둥이 휘파람새(솔새) 무리들이 보이지 않았다.

휘파람새들이 어디로 갔는지 찾으려고 눈을 치켜뜨고 있는데 갑자기 한 마리 두 마리...그러다 수십 마리의 검은 새들이 하늘에 나타나더니 한꺼번에 뒤뜰 나무 위로 날아내렸다. 



나무에 새 열매들이 열린 것처럼 바글바글거렸다. 배는 하얗고 머리와 등은 반짝이는 청록색...어떤 각도에서는 연한 파랑색을 띠기도 했다. 각각의 새는 흐트러짐 없는 매끈한 모양새였다. 그들은 일제히 다시 날아올랐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잠시 후 나무 위로 내려앉기를 몇 시간 동안이나 반복했다. 나름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것 같았고, 우리집 뒤뜰에서 먹이를 발견하고 확인한 후 근처 다른 먹이가 있는지 찾으러 다니는 모양이었다.  


갑작스런 날씨 변화와 차가운 온도가 가져다 준 의외의 선물이었다. 벌새를 찍을 때는 벌새가 너무나 작아서 중심의 아주 작은 부분에 초점이 맞도록 카메라를 설정해두었다가, 조금 큰 새들을 찍으면서 초점 범위를 넓혀두었다. 이젠 새 한 마리에 집중해서 사진을 찍던 모드에서 갑자기 수십 마리의 새를 한꺼번에 찍는 모드로 전환해야 했는데, 새들이 갑자기 찾아와 움직이는 바람에 쉽지 않았다. 잠시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사이에 새들은 떠나버리고, 어쩌면 그 길로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초점모드를 바꾸지 못해서 원하는 선명도의 사진을 얻진 못했지만, 예상치 못한 기쁨을 맛본 터라 기분이 환해졌다. 찍어둔 사진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본 결과 새 이름이 '녹색제비(Tree swallow)'라는 것을 알아냈다. 



새들이 먹고 있던 나무열매를 자세히 보니 푸른 빛이 도는 회색열매였다. 붉은 열매가 열리는 윈터베리나무들과 섞여 있어서 윈터베리나무인 줄 알았는데 다른 나무였던 것이다. 이 나무 역시 인터넷을 뒤져보니 베이베리(Bayberry) 또는 왁스머틀(Wax Myrtle)이라 불리는 나무였다. 뒤뜰에서 울타리 노릇을 하는 윈터베리나무 숲에는 베이베리 나무와 잣나무가 여럿 섞여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깨달았다. 녹색제비들이 앉아 식사를 하는 곳은 정확히 베이베리 나무들이었고, 윈터베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보였다. 이들과 함께 5년을 살면서도 이런 나무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니... 


베이베리는 약효가 있어서 사람들도 약으로 활용하는 열매라고 했다. 잣나무에도 잣이 열리고 윈터베리나무에도 새들의 겨울음식이 되는 윈터베리가 열리는 데다, 내가 들깨까지 심었기 때문에, 우리집 뒤뜰은 다양한 새들을 유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60마리는 넘어 보이는 새들이 한꺼번에 앉아도 나무는 부러지지 않았고, 그 새들이 여러 번 달려들어 경쟁적으로 먹고도 남을 만큼 많은 열매를 매달고 있었다. 나는 새삼 이 서민 아파트의 울타리에 베이베리나무를 심어준 누군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사람은 어쩌면 나처럼 버드와처(birdwatcher. 새를 보는 것이 취미인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전날 찾아왔던 녹색제비떼가 동네에 머물렀는지 다음날 아침에도 우리집 뒤뜰에 식사하러 왔다. 이번에는 약간 여유로운 마음으로 카메라 초점모드를 조정해서 다수의 새들를 비교적 선명하게 담을 수 있게 되었다. 코넬대학교에서 만든 조류가이드에 보니 녹색제비를 'Handsome aerialists with deep-blue iridescent backs and clean white fronts'라고 표현해두었는데 너무나 적확한 표현이었다. 'iridescent'는 빛을 받으면 여러가지 색으로 반짝인다는 뜻이고, 'aerialist'는 공중곡예사를 의미한다. 진한 청록빛으로 반짝이는 등과 깨끗하고 새하얀 가슴을 가진 잘 생긴 공중곡예사들이라니! 새들은 다양한 자세로 날아올랐다가 하강했다가 바람에 따라 아크로바틱하게 몸을 꼬거나 뒤집으며 곡예를 보여주었다.  


하늘을 날면서도 제각각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녹색제비떼

코넬랩에 들어가서 녹색제비의 생태에 대해 읽어보다가, 이들이 왜 이렇게 산뜻한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의문이 풀렸다. 이들은 물 위를 스치듯 날면서 몸에 물을 끼얹어 목욕을 하고, 나뭇가지나 돌에 등을 대고 솟아오르면서 등의 털을 깨끗이 빗은 다음 남은 먼지는 몸을 재빨리 흔들어 떨어낸다고 한다. 새들 역시 가꾸고 다듬는 노력 없이는 이렇게 깨끗한 모습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 가까이서 관찰한 벌새들이 때로는 머리에 거미줄을 걸치거나 노란 꽃가루를 뒤집어 쓰고 있던 것이 기억났다.


녹색제비는 아크로바틱하고 빠르다는 점에서는 벌새와 비슷해서 날면서 묘기를 부리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진청색을 띠는 몸색깔을 보면 파랑새 무리에 끼워줘도 될 것 같았다. 카디널이나 하우스핀치처럼 빨간 새들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스턴블루버드나 블루제이, 녹색제비같은 파란색 새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녹색제비를 보고 괜히 행운이 찾아올 것 같은 흥분에 사로잡혔다. 따지고보면 녹색제비떼가 나의 작은 뒤뜰에 이틀이나 머물렀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히 행운을 맛본 것 같다. 



녹색제비들은 또한 봄과 여름에는 각자 흩어져서 둥지를 짓고 새끼를 기르며 살다가, 철새이동이 시작되면 무리를 지으며 함께 날아가는 사회성 좋은 새들이다. 그들이 저녁에 하늘 높이 솟아올라 군무를 추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는 또 존스노우를 생각했다. 벌새들도 이렇게 사회성이 좋아서 함께 날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새가 옆에서 넥타를 먹어도 싸우지 않고 사이 좋게 나눠먹고, 밤에는 같은 나무에 내려앉아 잠을 청하고...그러면 길도 잃지 않고 외롭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머리와 등이 청록색이라는 점에서 이들도 파랑새 무리에 넣을 수 있다. 

존스노우가 열어준 부엌 뒷문 유리창으로 녹색제비떼도 관찰할 수 있게 되다니! 아마 이 새들은 해마다 이맘때 내 집 뒤뜰의 베이베리 나무를 찾아왔는데 나는 지금까지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이것말고도 내가 놓친 것은 또 얼마나 많을까? 새 한 마리가 할 수 있는 것, 나무 한 그루가 할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거대했다. 베이베리 나무 한 그루에 60여마리의 녹색제비떼가 깃들 때 베이베리나무는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변신한다. 그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것만으로 신만이 누릴 수 있는 사치를 맛본 것 같았다.    


유학 첫해 겨울, 인디애나주 블루밍턴에서 버드와칭을 시작한 후였다. 하얗게 눈이 내린 날 오후 아파트 바로 앞에 서 있던 커다란 스윗검트리에 조롱조롱 노랑 등불이 달린 것을 발견했다. 너무나 놀라워서 자세히 쳐다봤더니 등불이 아니라 노란색 가슴을 가진 시더 왁스윙(Cedar Waxwing) 무리가 가지마다 내려앉아 석양을 되비추고 있었다. 헐벗은 겨울나무 가지가 환하게 빛을 내며 되살아난 모습은 너무나 경이로웠다. 


시더 왁스윙(Cedar Waxwings) 무리. 가슴이 노란색이어서 등불을 밝힌 듯하다. 

(출처: https://deweesislandblog.com/2020/02/12/cedar-waxwings-and-robins/)


왁스윙 무리가 다음날에도 그 나무 근처에 머무르는 걸 보고 나는 다른 한국인 친구 H에게 전화를 걸었다. 과학교사였던 H는 당장 달려왔고, 같이 스윗검트리 밑으로 걸어갔다. 바로 그때 H의 전화벨이 울렸고, H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잠시 후 거짓말처럼 시더 왁스윙들이 그 나뭇가지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소리를 내면 새들이 날아가버릴 것이기에 나는 말도 못하고 손짓으로 나무 위를 가리켰다. 그러나 H는 전화 내용에 집중하느라 돌아서서 아파트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새들이 바로 머리 위 나뭇가지에 앉아주어서, 나는 망원경 없이 육안으로 그들의 얼굴과 머리깃, 날개끝에 매니큐어를 칠한 듯한 새빨간 문양과 꼬리끝의 노란색 장식 깃털까지 관찰할 수 있었다. 나는 진심으로 H가 한번이라도 나무를 돌아봐주기를, 바로 머리 위 가지를 쳐다봐주기를 바랐지만, H는 그러지 못했다. H가 전화를 끊고 돌아섰을 때는 이미 새들이 다 날아가버린 후였다. 


시더 왁스윙(이미지 출처: https://ct.audubon.org/nature-notes/cedar-waxwing)


날개 달린 새들이 주는 기쁨은 예상하기 어렵고 마음대로 붙잡을 수도 없다. 운좋게 내 카메라로 포착할 수 있었던 장면들은 10%도 되지 않는다. 대체로 카메라를 잡는 동안, 카메라를 가지러 집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아무 대가 없이 어느날 갑자기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선물과 같다. 잘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고, 세상은 나를 잊었으며, 나는 10년 묵은 묵은지처럼 익다 못해 푹푹 썩어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 내 집 뒤뜰에 날아온 반짝이는 새들은 그렇지 않다고, 누구에게나 기적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해준다. 내가 새를 사랑하게 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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