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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ime Jul 12. 2023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태어난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나, 살아가는 것은 나의 의지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지금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가?


어릴 때는 그저 즐거움을 추구했다. 재밌는 이야기, 게임을 좋아했다. 자신의 안위와 자신의 즐거움만을 소중히 했다.


어떻게 해야 더 재밌게 인생을 살 수 있을까?


이야기는 참 좋았다. 그건 유명한 영화의 이야기든 옆의 사람의 이야기든 말이다. 이야기에는 힘이 있었다. 나를 빨아들이는 힘이 말이다. 그렇게 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이야기는 나의 인생을 너무 행복하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써보면 재밌지 않을까?


시간이 흘러 고등학생이 되자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만든 캐릭터에 몰입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의 한계에 부딪혔다. 깊은 이야기가 있는 등장인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탄탄한 배경도 만들지 못했다. 그저 신이 나서 적은 것뿐이었다. 그걸 알았을때 나는 글을 그만 적게 되었다. 행복보단 고통이 더욱 컸기에.


그 뒤로는 글을 접고 예체능의 미련을 못 버려 그림을 배웠다. 좋아하는 게임을 만들고자 그래픽 디자인 학과에 갔다. 하지만 대학 졸업 전에 인턴을 하면서 느낀 건 또 다른 고통이었다. 그림에도 재능은 없는 것 같다. 디자인적인 재능이 부족한 것 같다. 7년을 넘게 그림을 했는데 이렇게 밖에 못한다면 그만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림도 그만 그리게 되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인생을 포기했다.


그럼 지금의 나는 무엇을 추구하는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 나와 주변의 행복을 위해 살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꿈 또한 이전의 꿈들처럼 어려웠다. 나와 주변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진심을 다해 노력했다. 진심을 다해 다가갔다. 어떨 때는 행복한 일이 넘치다가도 금세 무너졌다. 가치관이나 주변 상황이 쉽게 평화를 허락하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 주변의 행복을 바라게 되었을까. 아마 부모님의 사랑을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이야기나, 영상물을 통해서만 공감하던 내가. 현실의 사람들에게, 부모님에게 느끼게 되면서 이렇게 변한 것 같다. 무작정 나만을 위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행복하려면, 즐거우려면 나 혼자 행복해서는 안 된다. 남들을 공감하기 시작한 나에게 더 이상 혼자만의 행복은 의미가 없다. 어머니가 우시면, 아버지가 우시면, 친구가 울면, 동료가 울면, 나도 울게 되니까. 그러니 주변과 같이 웃으며 행복해지고 싶다.


나의 진심이 늘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의 조언이, 나의 말이 상대방을 상처 주기도 한다. 그 사람이 보기 싫었던 것을 억지로 보게 할 수도 있다. 그 사람들을 진심으로 생각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관계가 가까워지고 깊어질수록 상처 주기 쉽다. 적당한 거리를 두며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나을 때도 있다.


나는 행복을 위해 산다. 나의 행복을 위해 산다. 나의 행복을 위해 주변을 행복하게 만든다. 주변이 행복해지면 내가 행복해지니까. 남들을 더욱 사랑하고 이해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매일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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