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나다
인류가 나아가야 할 가장 뛰어나고 바람직한 길은 인간의 생명 유지와 관련된 필수적인 욕구들을 지극히 단순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충족하는 것이다. 자신의 텃밭을 일구거나 혹은 자립성을 갖기 위한 모든 창조적 활동에 매진하는 것은 하나의 정치적 행위이자, 인간의 의존도와 종속성을 이겨 내는 하나의 저항 행위로 간주된다.
- 피에르 라비
소박한 삶. 간소한 삶. 물질적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현재 사회에서 선택적 소박함을 유지하며 산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아주 쉽게 물질 적인 편안함, 편리함에 익숙해지고 그러한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정말이지 어렵다.
나는 도시에서 자랐다. 서울, 북경, 심천, 파리 등을 이름만 대도 알법한 메가 시티는 곧 나의 삶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택한 콜마르라는 인구 6만 명의 작은 도시는 삶을 바라보는 나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내가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던 프랑스 동부에 위치한 작은 도시는 프랑스의 5대 산맥 중 하나인 보쥬 산맥을 끼고 라인강이 흐르는 길목에 있었다. 집 앞에는 사과나무가 가득한 작은 텃밭이 있었고 차를 타고 5분만 가도 포도가 주렁주렁 열린 와이너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노을을 보기 위해 보쥬 산맥에 올랐고 밤하늘의 은하수를 구경하기 위해 텐트를 치고 와이너리가 있는 동산에서 밤새 별을 보기도 했다.
도시에서의 삶은 빠르다. 그리고 무척 편리하다. 스마트폰 하나면 음식을 배달해 먹는 것은 기본이고 모든 것이 돈만 있으면 편리함쯤은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시골은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게 프랑스 시골이라면 더더욱. 프랑스에서 살았던 몇 년은 내 인생에 있어서 편리함과는 가장 멀었던 삶이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웠다. 행복함과 편리함은 같은 개념이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콜마르에 있는 동안 텃밭에서 내가 먹을 채소를 길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양의 매일 정해진 육체노동이 필요했다. 흙을 만지는 일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작은 벌레 하나 씨앗 한톨도 소중히 여기게 된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꽁꽁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하면 유리 온실에 씨앗을 심는 것을 시작으로 겨우내 얼까 봐 한쪽으로 정리해 놓았던 물통을 꺼내와 빗물을 받는 용도로 여기저기 설치하고 퇴비 더미를 뒤집는다. 일 년치 작은 텃밭 농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추수철이 되면 사과나무에는 새콤 달콤한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다. 나는 사과나무에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사과나무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은 선물을 준다. 땅에 떨어진 사과를 모아 근처에 있는 협동조합에 가서 주스로 만든다. 사과나무는 2년에 한 번씩 사과를 많이 맺는데, 풍성한 해에는 1리터짜리 주스 병이 100병 이상 나온다. 그럼 우리는 이웃 잔치를 열어 사과 주스를 선물하고 함께 식사를 한다.
이처럼 작은 사과 한 알 한알이 모여 이웃과의 정겨운 식사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삶은 나와 내 주변에 따뜻한 관심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한 관심은 마음의 여유에서 비롯된다. 내가 하고 있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만 추려내면, 생각보다 삶에는 여유가 넘처난다. 그럴 때 나의 관심을 주변 이웃에게 기울이면 이내 멋진 공동체적 삶을 살게 된다. 공동체 삶을 사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개인의 온전한 삶이 있고 마음의 여유와 주변을 생각하는 마음이 만나면 그게 바로 공동체가 아닐까.
콜마르에서의 삶은 늘 자연과 함께였다. 봄에는 배낭을 메고 라인강 근처 숲에 가면 명이 풀이 즐비하다. 너무 많아서 따다가 허리가 아프면 이내 집으로 돌아온다. 간장이나 식초에 절여 먹기도 하고 올리브 오일과 마을을 함께 넣어 페스토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 여름에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산으로 가 야생 블루베리를 가득 따와 쨈도 만들고 파이도 만들어 먹는다.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나면 장화를 신고 숲으로 가서 버섯을 채취한다. 여행 때 사 왔던 고소한 올리브 오일에 버섯을 넣고 볶아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내 손으로 먹거리를 재배하거나 자연에서 채취해 먹는 일은 정말이지 신난다. 자연과 어우러진 소박한 삶은 찬란한 햇빛처럼 마음을 밝게 빛나게 해준다.
2015년 여름, 나는 나보다 더 소박하고 독특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 한 달간의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다. 20대 중반의 청년 농부, 은퇴한 군인, 흙집을 짓는 여인, 이야기꾼, 정원관리사, 그리고 내가 존경에 마지않는 이 시대의 진정한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까지.
이들을 만나 삶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매일매일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들이 사는 삶은 소박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충만하고 아름다웠으며 사랑이 넘쳤다. 또한 내가 했던 여행 자체도 하나의 즐거운 모험이었다. 나는 작은 폭스바겐 멀티 밴을 타고 다녔으며 그 안에서 필요한 식사, 잠자리, 일 모든 것을 해결했다. 주차를 하는 곳이 그날 저녁을 보낼 최고의 안방이었다.
소박한 삶이란 무엇일까?
스스로가 선택한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킬 거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지극히 단순하고 건전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많은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