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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리 Jan 17. 2021

상실의 아픔과 외로움을 치유해줄 한 권의 책

꿀벌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깨달음에 대해서

1월의 어느 날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엄마는 나에게 새 해를 시작하면서 메러디스 메이의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를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추운 겨울날 마음이 따뜻해질 거라면서. 엄마의 추천에 읽고 있던 다른 책을 제쳐 두고 책의 첫 장을 펼쳤다.


이 책은 메러디스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다.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아빠, 스스로의 상실에 갇혀 자식을 짐짝처럼 취급하는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두둔하는 할머니 보호 아닌 보호 아래서 메러디스는 너무나도 외롭고 쓸쓸한 어린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왜 자신이 아빠와 떨어져 살아야 하는지, 엄마가 슬픔에 갇혀 방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이러한 일들이 왜 갑자기 그녀의 인생에 일어나게 되었는지 아무도 그녀에게 설명해 주지 않은 채 새로운 공간에서 삶을 시작한다.


그런 메러디스의 어린 인생에 양봉가 할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키우는 꿀벌이 나타난다. 꿀벌은 아직 여물지 않은 어린 소녀 메러디스에게 사회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고, 서로를 보호해주고 지켜주는, 또 민주적인 방식으로 의사결정을 하고 무엇보다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줄 수 있는 마음의 안정감에 대해 가르쳐준다. 메러디스의 삶에 뜻밖에 찾아온 큰 아픔과 외로움이라는 불청객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고, 위로해주고, 삶의 깨달음을 주었던 것은 꿀벌과 할아버지였다. 메러디스는 이 책의 초반부터 마지막 장까지 어떻게 자신이 꿀벌로부터 위안을 받았는지 세세하게 묘사하고 기록했다. 여물지 않은 시각으로 편견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깨달음을 촘촘하게 또 아름답게 묘사한 것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나는 기쁨과 슬픔 또 벅차오름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매러디스는 꿀벌 역시 사람처럼 감정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주었다. 꿀벌은 자신이 있는 공동체 안에서 사랑을 받으면 자연스럽게 안정감을 느끼면서 산다. 벌들은 행복하면 노래를 부르고, 새로운 밀원지를 발견하면 춤을 통해 다른 벌들에게 그곳에 가는 길을 알려준다. 또한 벌들은 슬픔의 감정이나 두려움의 감정도 느낄 수 있어서 양봉가를 포함해 벌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은 겁을 먹으면 안 된다고 메러디스는 설명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초등학교 시절 개나리가 활짝 피던 때에 꽃잎 위에 꽃가루를 몸에 잔뜩 묻히고 있는 벌을 보고 신기해하던 기억이 났다. 내 친구들은 벌이 무섭다며 그곳을 피했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내가 두려워하지 않고 벌들에게 친절하면 그들도 나를 친절하게 대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중에 프로방스의 라벤더 밭 사이에 있는 벌통 근처에 갔었을 때도 나는 벌들이 두렵지 않았었다. 내가 조심스럽게 다가가면 벌들도 내 주변을 빙빙 돌다가 다시 그들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벌이 많은 환경에 노출이 된 적이 많았지만 내가 그들을 믿었기 때문일까? 다행히도 나는 한 번도 벌에 쏘이지 않았고 이러한 이유로 벌이 무섭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메러디스의 이야기를 통해 벌도 감정이 있고, 두려움의 냄새를 맡는다는 걸 알게 되니 더욱더 그 당시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이 옳았다는 확신이 든다.


메러디스가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분 중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벌을 포기하지 않으며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꿀벌은 근면하고 성실함의 상징이기도 하지 않은가. 특히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꿀벌 집단에서도 다양한 일이 분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여왕벌은 알을 낳는 일을 담당하고, 일벌은 바깥에 나가 꽃가루를 먹고 꿀을 만들어낸다. 정찰벌은 위험을 무릅쓰고 좋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돌아다니고, 건축 벌은 사각형, 정삼각형, 육각형의 구조로 집을 짓고, 외역벌은 훌륭한 밀원지를 발견하는 입무를 띄고 모험을 한다. 유모 벌은 알에서 나온 애벌레들에게 열심히 꿀을 먹이는 엄마 역할을 하며, 수컷 벌은 그들 삶의 유일한 임무인 여왕벌을 임신시키는 일을 가열차게 하고, 일이 끝나면 그들의 중요 부위가 여왕벌 몸속에서 부러지기 때문에 교미가 끝나고 나면 죽게 된다.


이처럼 다양한 일을 담당하고 있는 벌들은 “자기 일에 집요하게 집중하고,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으며 절대 포기하지”않는다고 했다. 특히나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고 벌들을 관찰해 나가면서 메러디스는 벌들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각 벌들이 어떤 임무를 맡았는지도 구별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꿀벌 집단은 이런 개별적인 작은 노력을 한데 모아 집단적인 힘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꿀벌이 세상에 존재하는, 또 존재해서 감사한 가장 큰 이유는 전 세계의 모든 열매의 3분의 1이 꿀벌을 통해 수분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즉, 벌이 사라진다면 우리가 먹을 열매 역시 사라진다는 의미이다. 이런 꿀벌의 노력에 대해 메러디스는 “자기 존재보다 훨씬 더 웅대한 목적을 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켜주었다"라고 말했다. 또한  "꿀벌은 엄마처럼 벅찬 임무를 손에서 놔버리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대범하게 맞서 일어나 스스로를 꼭 필요한 존재로 만들었고, 꿀벌은 받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어줌으로써 자신의 생존을 보장받고 은총의 상태라고 부를 만한 단계에 도달했다”라고 설명하면서 부모역할을 잘하지 못하는 자신의 엄마와 꿀벌을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세상을 이해하고 깨달아갔다.


메러디스는 부모나 가족으로부터 받아야 하는 마땅한 사랑이나 보호의 빈자리를 꿀벌과 대화하고 꿀벌의 모습을 관찰함으로써 채워나갔다. 나는 그녀가 이 책을 쓴 한 가지 중요한 이유를 책의 말미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녀는 “꿀벌들이 건강하게만 지낸다면 다음 세대에 꾸준히 고대의 지혜를 전해 줄 수 있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절망에 빠지는 일을 겪더라도 자연이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줄 특별한 방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우리 시대의 모든 아이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혹여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자연이 그들을 지켜주고 치유해 줄 수 있도록 어른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꿀벌을 보호하고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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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해주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방식으로 엄마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더불어 요즘은 할머니의 역할까지도 가뿐하게 해내고 있는 엄마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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