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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Jan 06. 2021

마약왕 장연우

나라에서 허락한 유일한...

요즘 연우가 약에 심취하였다.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바로 음악이다.


이제 곧 고학년이 되는 장연우는 어릴 때와는 다른 행동양식을 보일 때가 많은데, 요즘은 음악에 꽂혀있다. 전에도 음악을 듣고는 했지만 휴대폰에서 바로 재생을 해서 낮은 음질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어서인지 자주 듣지는 않았다.

그러다, 줌 수업에 사용하라고 아내가 유선 헤드셋(헤드폰이 아니다.)을 사주었고, 그걸 쓰고 다니는 본인의 멋짐에 눈을 뜬 거 같다. 쓰고 있으면 -자기 생각에 멋도 있는데, 주위에 폐를 끼치지 않고 더 나은 음질로 음악을 들을 수 있으니 더 좋았나 보다.


나는 언제 음악을 열심히 들었나 생각해보니, 중2 때쯤 검은색 마이마이를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더 어릴 적엔 음악을 들으려면 한자리에 앉아서 TV나 카세트 데크로 들어야 했다. 그런데, 움직이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니! 당시에는 스마트폰 정도의 혁명적인 물건이었다.

워크맨이라는 일본 제품이 가장 인기였는데 주위 친구들 중 일본에 지인이 있는 아이들 정도만 소니 워크맨을 가지고 다닐 수 있었다. 오토리버스(이 기능이 없으면 테이프를 꺼내서 다음면으로 돌려 넣어야만 음악이 재생되었다.)라는 최신 기능을 가지고 있고, 디자인은 또 어찌나 멋지던지, 병헌이 형이 가장 완벽한 물질이라던 메탈 재질의 케이스에, 얇아서 뒷 주머니에 꽂고 다니거나 전용 케이스에 넣어서 허리띠에 차고 다닐 수도(그땐 멋져 보였다), 가방에 넣고 다닐 수도 있었다.

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아이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어찌나 멋있어 보였는지.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는 사람이 창 밖을 보고 있으면, 고독한 반항아 같았고, 책을 보고 있으면 공부에 집중하는 전교 1등 같은 느낌이었다. 중2라는 나이에 딱 맞는 필수적인 아이템이었다.


그리고, 나도 그 아이템을 손에 넣었다. 아쉽게도 일제 워크맨은 아니었지만, 마이마이도 괜찮았다. 어디서든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까. 이어폰을 끼고, 플레이 버튼을 누르면 이곳은 아까와는 다른 차원이었다.


그 당시에는 최신가요 모음 테이프를 쉽게 구할 수 있었다. 1,500원을 들고, 역 근처에 가면 길보드 차터들이 리어카에서 팔고 이었다. 한 면에 약 10여 곡이 있고, A면, B면 양쪽으로 약 2~30여 곡이 들어있다. 그중에서 나의 마음에 드는 곡이 가장 많은 테이프를 열심히 골라야 했는데 마음에 드는 곡이 꼭 하나씩 빠져있어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지금이야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 수 있지만, 그때는 테이프 제작자의 취향이 내 취향과 일치하기만을 바래야 했다.


마음에 드는 테이프를 골라서, 새로 산 마이마이에 집어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던 첫날밤. 귀로 직접 들어오는 음악소리와 함께 잠이 들었다. 다행히, 내 마이마이는 오토리버스가 되어 끝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비몽사몽간에 들려왔던, 015B의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지금도 기억난다.

이렇게 밤새 음악을 들으며 자 잔 거 같지 않았다. 피곤하게 몸을 일으켰지만, 그 비몽사몽 한 느낌이 좋아서 매일 밤 음악을 들으면서 잠이 들었다.


아마, 연우도 이런 상태가 된 거 같다. 아내가 쇼미 더 머니 9를 보는 것을 옆에서 훔쳐보더니, 머쉬베놈의 '고독하구먼'에 꽂히고 말았다. 게다가 헤드셋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장착한 연우는 어디에서든 헤드셋을 끼고, 고독하다고 외치고 다니기 시작했다. 카톡 프로필까지 헤드셋을 끼고 찍은 사진에 메시지 문구도 '고독하다'라고 바꾸었다.

여기서 조금 더 진행되면 항시 이어폰을 착용하고, 아빠가 뭘 아냐며, 부모와의 대화를 하지 않을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다행히 아직 중2가 되려면 조금 시간이 남아있다. 너무 빨리 음악에 눈을 뜬 게 아닌가 걱정도 되지만, 이왕 눈을 뜬 거 좀 더 편하고, 멋있는 아이템을 장착해주고 싶다. 다음 생일에는 무선 헤드폰을 사줘야겠다.


부끄러움은 늘 엄마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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