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어도 꾸준하게
연우 방 문틀에는 연우가 어릴 때 타던 그네를 지지하는 봉이 남아있다. 그네를 철거한 후에는 있는지도 모르다가 같이 일하는 동료가 집에 턱걸이가 있으면 지나가다 하나씩 할 텐 데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 존재가 생각이 났다.
나도 지나갈 때마다 하나씩 할까? 하는 생각에 매달려 봤는데, 너무 큰 욕심이었다. 하나를 하는 것은 고사하고 손바닥이 아파서 제대로 매달릴 수조차 없었다.
예전 한참 몸이 좋을 때에도 - 라고 쓰면 그런 시절의 존재 여부에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이해한다.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전혀 상상이 가질 않겠지. 하지만, 사람의 소중한 추억을 깨뜨리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지 않은가?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는데, 팩트로 때리면 안 된다. 그냥 문학적인 비유라고 넘어가 주자.
여튼 예전 몸이 한참 좋을 때도 턱걸이는 3개 이상 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 머릿속엔 턱걸이는 3개가 최대라고 고정되어 있었다.
나는 미화된 과거를 항상 그리워한다. 과거에는 머리가 좀 더 좋았던 것 같고, 머리가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또 좀 더 날씬하고 보기 좋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나는 내 머릿속에만 있는 것 같지만 그때를 그리며, 아쉬워하고 있다.
술 한잔 하며, 있지도 않은 화려한 과거를 그리다 보니 굉장히 루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왕년에 말이야~ 레퍼토리는 라때는 말이야~ 보다도 더 예전에 유행하던게 아닌가? 그 후, 술을 줄이고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손바닥이 아프지만 다시 철봉에 매달렸다.
나의 연약한 육신은 철봉에 몇 번 매달리자 손바닥에 굳은살이 배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굳은살이 배기는 것이 싫어서 장갑도 껴보고 굳이 턱걸이를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매달리는 것도 힘이 들던 내가 턱걸이 하나를 겨우 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를 성공하자 좀 재미가 있어졌다. 굳은살이 점점 두꺼워지면서 통증은 점점 사라졌다. 고통뿐이었던 시간이 지나고 처음 계획대로 문을 지날 때마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한 번씩 턱걸이를 하고 내려왔다. 그렇게 어느 정도 지나니 2개, 3개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3개를 해냈을 때, 더 이상 숫자를 늘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과거 전성기(?) 때에도 이게 한계였으니까. 그래서 딱 3개까지만 매일 했는데 어느 날, 3개를 했는데도 힘이 좀 남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 더 팔을 땡겨 보았더니 올라간다. 과거의 나를 극복하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4개, 5개까지 숫자는 계속 늘어갔다.
사실 턱걸이 3개나 4개나 무슨 차이가 있겠나? 둘 다 허약하기는 매한가지지. 하지만, 내가 한계라고 생각했던 것을 과거의 내가 아닌 현재의 내가 극복했다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컸다.
과거의 내가 모여서 만들어진 게 지금의 나다. 새롭게 태어날 수는 없으니 고쳐쓸 수밖에 없을 거 같다. 그 방법으로 오늘 오메가 3 한 알 먹고, 피곤하고, 아파도 턱걸이 한번 더 하는 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