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컴퓨터를 바꾸었다.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내가 컴퓨터를 바꿨다는 것은 그 컴퓨터가 어떤 방법을 써도 살아나지 못하는 상태여야 했겠지만, 놀랍게도 컴퓨터는 (내 기준에는) 괜찮았다. 유튜브도 나오고, 문서작업을 하는데도 지장이 없었다.
다만, 아내가 그림을 그릴 때 컴퓨터가 자꾸 메모리가 부족하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반응 속도가 느려서 힘들다는 의견이 있었다. 시스템 종료를 눌러도 컴퓨터가 종료되지 않는 사소한 문제도 있었다. 갑자기 컴퓨터가 꺼져서 파일이 날아가는 이런저런 문제점들 때문에 평소의 나 같지 않은 과감한 결정을 하였고, 결과적으로 자꾸 아내의 장비는 좋아지고 있다. 우연이겠지?
예전에는 컴퓨터를 바꾸면 많이 떨렸다. 바로 전설의 게임인 와우를 새로운 환경에서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좀 더 좋은 그래픽에 끊기지 않는 게임 환경이 내 컨트롤을 좀 더 정교하게 만들어 주었고, 게임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주었다. 하지만, 지금 내 컴퓨터에는 와우가 깔려있지 않았고. 컴퓨터를 바꿔도 하나도 신나지 않는 희한한 상태가 되었다. 왠지 억울해서 와우 한번 깔아볼까? 하고 아내에게 말했다가 아내의 발 밑에 깔릴 뻔했다.
하긴, 지금도 취미는 플스 4 게임 구매이고, 정작 게임할 시간은 없다. 언젠가 경제적으로 안정이 된 상태로 은퇴해서 피지컬 받쳐준다면 그때는 원 없이 게임하리라... 는 작은 바램을 아내도 보라고 여기에 적어본다.
사실 아내도 게임을 좋아한다. 우리도 한때 같이 와우를 했었다. 썸도 타기 전에, 내가 하고 있던 서버에 아내가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었고 나는 아내의 퀘스트를 도와주었다. 아내보다 20랩정도 높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이었고, 나의 강함과 매력을 어필할 수 있었다.
그날도 아내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날의 적들은 정예 몹들이었다. 정예 몹은 같은 레벨의 적보다 훨~씬 강한 상태로 3~4명이 같은 파티를 이루고 잡아야 할 정도의 강적이다. 하지만, 아무리 정예 몹이더라도 랩이 깡패라는 믿음이 있었고, 강인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내 드루이드는 곰으로 변신해서 적들을 향해서 돌진하였다. 역시 정예 몹들은 강했다. 쉽게 죽지 않았고, 나는 화려한 컨트롤을 선보이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적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너무 이리 뛰고, 저리 뛰어서일까? 모든 적들이 나의 침입 소식을 모두 알게 되었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몹들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많은 적들을 만나니 내 피는 쭉쭉 빠졌고, 채팅창에 도망가라는 유언을 남기고 장렬히 전사하고 말았다. 강한 모습과 매력을 함께 발산하려고 했던 계획은 오히려 경솔함과 판단력이 부족한 모습을 보여주는 역효과로 나타났고, 한동안 놀림감이 되었다. 그나마 도망가라는 유언을 남겨서 아내를 살렸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이렇게 같이 게임을 하며 캐릭터도 키우다가 겸사겸사 사랑도 키웠다. 이런 사람들이 결혼을 했으니, 결혼생활의 대부분은 게임으로 이루어질 거 같았지만, 막상 결혼 후에는 여러 가지로 시간이 없어서 게임을 별로 못하고 있다.
때때로, 젊은 시절 와우를 하지 말고 자기개발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더 훌륭한 내가 되지 않았을까? 나이가 먹을수록 뭐든지 때가 있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사뭇 와 닿는다. 그때가 공부하기 좋을 때였는데... 하지만, 게임하기도 좋을 때였지. 지나간 일 아쉬워한다고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20대의 많은 페이지가 즐거운 추억으로 채워진 것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