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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Mar 17. 2021

꽃피는 봄에 입대

대체로 싫어하는 훈련소 이야기

나는 3월 봄에 입대를 하였다. 친한 친구들끼리 입대일을 맞춰서 1월, 2월에 2명이 가고 3월에 나와 다른 친구가 동반 입대를 했다. 그날이 마침 어머님 생신이셔서 생일 선물로 군대를 간다는 농담을 하곤 했다.

공군으로 입대를 하게 되어, 나와 친구, 친구의 부모님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공군 훈련소가 있는 진주로 갔다. 저녁을 사주셨는데, 사회에서의 마지막 식사 같은 비장한 기분만이 느껴질 뿐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저녁을 먹고 친구랑 모텔에 누워있다가 할 것도 없는데, 스타나 하러 가자고 PC방으로 나섰다. 지방의 피시방이라서 그런지 최신 버전의 스타크래프트 확장판이 없었다. 진주는 나에게 입대 전 스타 한 판 할 기회도 주지 않았고, 그냥 PC방 안의 민간인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만 보다가 과자를 몇 개 사서 쓸쓸히 모텔로 돌아갔다. 하지만, 과자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입맛도 없어서 거의 먹지 않았는데, 그때 안 먹은 달콤하고 부드러운 딸기맛 파이가 훈련소에서 내내 생각이 났다.



사회에서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방탕한 생활을 할 때는 하루가 너무 빨리 갔었다. 일어나서 비비적거리면 벌써 저녁이 되는? 그래서, 군대 30개월도 빠르게 지나갈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군대에서의 하루는 길었다.

아침 6시에 이상한 음악과 함께 눈을 뜨고, 여러 가지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훈련과 얼차려를 당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다.

지옥 안에서 먹고, 훈련받고, 얼차려 받고, 자는 생활 덕분에 처음의 나약했던 나의 몸은 점차 단련이 되어 갔고, 나중에는 어느 누구와 싸워도 지지 않을 거 같은 자신감이 차올랐다.

이게 군인의 전투력인가? 살이 쪘던 친구는 빠지고, 말랐던 친구는 단단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훈련소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훈련소에서의 가장 큰 낙은 아무래도 주말 종교 행사 참여였다. 첫 주에는 모태신앙에 맞게 천주교를 갔었다. 천주교에서는 초코파이를 줬는데, 저쪽 불교에서는 자유시간 초코바를 준다는 말을 들었다. 자유도 찾고, 누가 초콜릿의 달콤함을 맛보고 싶어서 그다음 주에는 불교를 찾아갔다. 그런데, 동기들 사이에서 기독교에서 마지막 주를 마치면 은으로 된 십자가를 준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장발장이 훔쳤던 그 은 십자가? 뱀파이어를 물리칠 수 있는 최소 손바닥 만한 은 십자가를 기대하고 마지막 대미는 기독교에서 장식했다. 그리고 돌아온 것은 손톱만한 은 십자가. 왠지 속은 듯한 허탈함과 손톱만 한 이득을 쫒아 종교를 옮겼다는 그런 자괴감만 얻을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거쳐 오지 않을 것 같았던 마지막 주가 왔다. 마지막 주에는 기지방어 훈련이 있었다. 엎드려 쏴 자세로 오지 않을 적들을 상정하며 기지 밖을 겨누고 대기하고 있는데, 부대에서 보이는 큰 길가 옆으로 벚꽃나무가 빼곡히 서 있었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흰색과 분홍색이 어우러진 그 모습은 왜인지 딸기 아이스크림의 달콤함과 솜사탕의 포근함을 전해주는 듯하였다. 바람이 부니 벚꽃들이 흩날렸고,  온 세상을 핑크빛으로 물들이면서 사회의 따뜻한 온기를 나에게까지 전달해주는 거 같았다.

평소 감정이 메말라 꽃구경의 이유를 1도 모르던 나였는데, 모든 욕구를 거세시킨 훈련소에서 벚꽃에 위로를 받게 될 줄은 몰랐다. 역시 사회는 벚꽃도 이쁘구나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그 모습을 계속 보기 위해서 훈련이 오랫동안 지속되길 바랬다.

삭막한 훈련소 생활의 마지막에 뜻하지 못한 위로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진주는 벚꽃으로 유명했다. 그 풍경이 머리에 남아서, 제대 후에는 꼭 다시 와서 민간인의 신분으로 벚꽃들을 보리라 하는 다짐을 하였지만, 아직도 그 다짐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진주는 너무 멀었다.


지금도 때때로 생각한다. 힘들고 메말랐던 마음을 위로해주던 그 풍성했던 벚꽃들을.

벚꽃에 위로받은 그날 하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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