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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Mar 10. 2021

억울한 나날들

1  얼마 전 밸런타인데이였다. 휴일이라서 집에서 보드게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말한다.

“어, 오늘 밸런타인데이네.”

평소 조공을 업으로 하기 때문에 딱히 돌아오는 걸 바라지 않고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에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친히 밸런타인데이라고 말하는 걸 보니 뭔가 준비를 하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마트를 간다거나 하는 액션을 보이지 않고 저녁이 되어갔다. 그때까지 아무런 액션이 없는 걸 보니 뭔가 미리 준비가 되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기대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저녁을 먹고 티비를 보고 있는데, 아내가 드디어 입을 떼었다.


 “내가 왜 오늘 초콜릿 하나 못 먹었지?”


?!!! 응? 아내 양반. 이게 무슨 말이오? 오늘 밸런타인데이인데 초콜릿을 바라고 계신 거란 말이오?


어이가 없어서 아내를 빤히 바라보고 있으니, 천진한 얼굴로 “어? 왜?” 이러고 있다. 친절하게 밸런타인데이의 선물 발송자와 수령자가 누군지 알려주니 막 웃으며 물개 박수를 치더니 지식 습득을 끝으로 이 상황을 마무리한다. 아니, 어떤 날인지 알게 됐으면 액션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영화 달콤한 인생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슬픈 꿈을 꾸었느냐?”

아닙니다. 달콤한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그리 슬피 우느냐?”

 “ 꿈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차로 처갓집에 가는데 아내가 길을 살짝 잘못 들었다. 고가를 타야 하는데, 타지 못하고 옆 길로 빠졌다. 빠진 옆길은 2차선으로 왼쪽, 오른쪽으로 빠지는 표시가 되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왼쪽 차선이 직직, 좌회전 차선이라 나중에 고가와 합류하면 될 것  같았다.

아내가 어떻게 하냐고 좌절하길래 직진해서 다시 만나면 된다고 말해주니 직진이 안 된다고 우긴다. 우기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너무 급한 상황이라 흥분했는지, 금기의 단어를 말하고 말았다.


"안돼 인마!!!"


인마? 인~마~? 급하게 말하느라 연우와 착각을 했다고는 했지만 아내에게 듣는 인마는 좀 느낌이 달랐다. 과연 진짜 착각을 하긴 한 것일까? 착각을 빙자한 것은 아닐까?

여튼, 인마는 잘못 나온 말이라고 정정을 하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직진이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냐며 구박을 멈추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뒤에서 장연우는 간신배처럼 아빠는 뭘 모른다고  엄마 편을 들고 있었다. 억울했지만, 도로교통법은 아내가 더 잘 아는 편이라 내 의견을 접고 구박을 당하는 와중, 도로 바닥에 직진+좌회전 표시가 딱 보였다.

'어 직진되는데?' 하면서 아내에게 따지려는 찰나, 아내가 말한다.


"어? 직진되네, 미안~~"


따지기도 전에 신속하게 이루어진 사과. 난 사과를 받긴 했지만, 계속된 구박에 이미 넝마가 된 후였다. 게다가, 신속하게 사과를 하더니, 재빠르게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꺼낸다. 사과를 날치기당한 이 기분. 사과를 받기는 했지만, 내 안의 억울함은 살아있었다.


살다 보면 하기 싫은데, 사과를 해야 할 일이 종종 생기곤 한다. 그럴 때, 이 방법을 추천해준다. 사과를 받은 상대방에게 분통을 선물해 줄 수 있다.

평화 유지의 비결~ 사과는 빛보다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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