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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원 Mar 24. 2021

타고난 사이드킥

전 부치기 사이드킥

우리 집은 명절 때 동생과 내가 전을 부친다. 물론, 식구가 조촐해서 많이 부치지는 않고, 갓 부친 따끈따끈한 전에 정종 한잔 하는 재미가 더 있다. 그래서, 차례주를 살 때는 두 병을 산다. 전 부치면서 마실 큰 병과 차례에 사용할 작은 병.

어릴 때부터 요리를 잘했던 동생이 메인 셰프를 하고, 나는 철저하게 보조로서 역할해왔다. 숟가락으로 전을 뒤집는다던가, 부재료가 모자랄 때 재빨리 채워놓는 그런 일 말이다.

이번 명절에는 코로나 때문에, 특히 내가 사는 동네에서 갑자기 확진자가 터져서 아쉽게도 모이지 못하고 각자 집에서 전을 나눠 부치기로 하였다. 나는 그동안 숙련된 솜씨로 전기그릴과 부재료들을 세팅하였고, 드디어, 메인 요리사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난 아직 준비가 부족하다는 것을.

처음 부친 연근까지는 괜찮았다. 꼬치산적을 부치기 시작하면서 점점 아내의 컴플레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을 10년을 부쳤는데 이렇게 못하냐고.

나는 당당했다. 어떻게 사람이 처음부터 잘하냐? 나는 10년을 보조만 했기 때문에 첫 메인 셰프로서 이 정도면 양호하다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옆에서 술 마시면서 볼 때와는 다르게 메인 셰프의 길은 쉽지 않았다. 볼 땐 참 쉬워 보였는데...

결국 부추전을 하나 두껍게 부친 후로, 아내가 내 자리를 차지하여 요리를 집도 하였고, 나는 평소대로 정종을 마시면서 보조를 하였다. 술이 취해서인지 눈치는 좀 덜 보였다.

사람은 자신이 무능력할 때까지 승진한다는 말이 있다. 이 기회에 동생의 소중함과 나의 능력의 한계를 알았다. 전은 꼭 모여서 부쳐야 한다. 동생과 함께.


설치계의 사이드킥

동생은 인터넷으로 여러 물건을 판매하는데, 겨울에는 전기벡터라는 난방용품을 메인으로 판다. 학교나 회사 등에 많은 물량을 납품할 경우 주말에 나를 알바로 부른다. 나는 군 시절 30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설병으로 설치, 보수업무를 하였기 때문에 노가다력이 굉장했었고, 그 지식을 동생에게 나누어 주며 능력을 키워준 스승 같은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이런 나에게 알바를 주는 동생을 보며, 많이 컸다고 생각은 하였지만 내심 나를 뛰어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이번에는 초등학교에 설치작업이 있었다. 초등학교 화장실에는 이미 라디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어 나는 그것을 해체하고, 그 자리에 동생이 백터를 설치하기로 하였다. 초등학교는 2동이었는데, 한 동은 쉽게 작업하였다. 그런데, 다른 동에 가니 라디에이터가 앙카볼트로 고정이 되어 벽에 붙어 있었다. 라디에이터는 제거하였지만, 앙카볼트가 남아 있어서 벡터 설치가 불가능하였다. 앙카볼트는 벽에 구멍을 내고 볼트를 박아 넣는 방식으로 절대로 그냥 빠지지가 않는다. 그라인더로 잘라 내야 할거 같은데 그라인더는 없었고, 주위에 마땅히 구할 곳도 없었다. 작업시간이 하염없이 길어질 거 같은 불길한 예감에 나는 핸드폰을 꺼냈다. 앙카볼트 제거법을 인터넷에 검색하니 튀어나온 앙카볼트를 잡고 위아래로 흔들어서 부러뜨리는 방법이 있다고 했다. 바이스 플라이어로 잡고 몇 번 흔들어 보았다. 흔들리기만 하고 변화가 없었다. 큰 힘을 주어서 흔드니 내 손이 부러질 거 같았다. 이 방법은 좀 아닌 거 같아서 유튜브를 검색해 보았다. 어떤 분이 앙카볼트를 양옆, 위아래를 망치로 몇 번 두들겨준 다음에 빼면 쉽게 빠진다고 하셨고, 1분도 걸리지 않아서 쉽게 제거하셨다. 그걸 보고 똑같이 따라 했지만, 너무나 강하게 박혀 있는지 흔들리기만 할 뿐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렇게 된 이상 나올 때까지 망치로 때려보겠다 하는 생각에 온 힘을 다해 망치를 휘둘렀고, 약 20여분을 망치질을 한 결과 땀범벅이 되어 하나를 겨우 빼낼 수 있었다. 잠깐 계산을 해 보았다. 한 화장실에 앙카 4개씩 박혀있고, 남녀 화장실 2개. 총 4개 층이니 32개가 박혀 있는 건데, 하나 빼는데 20분이면 오늘 집에 못 갈 거 같았다.

보스를 온 힘을 다해 겨우 이겼더니 잡몹인 거 같은 그런 절망감이 몰려왔다. 이쯤 되니 유튜브에서 본 그분은 미리 빼놓은걸 다시 집어넣고 쉽게 빼내는 거 같은 영상을 찍은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밀려왔다. 엄한 유튜버를 욕하고 있는 사이 동생이 올라왔다.

‘큰일 났어. 이거 작업현장이 장난이 아니야. 앙카 하나 빼는데 20분이야.’라고 사태를 설명해주자.

동생은 ‘앙카는 그냥 부러뜨리면 돼.’하고 쿨하게 말한다.

‘아냐 내가 해봤는데, 절~대 안 부러져 , 유튜브 보고 따라 하니까 빠지긴 하는데 20분은 걸리더라고.’

내 얘기를 다 들은 동생이 바이스 플라이어를 들고 앙카 앞으로 갔다. 그리고, 앙카 볼트를 잡더니 위, 아래로 강하게 몇 번 흔드니까 앙카볼트가 "똑"하고 부러졌다. 망연자실한 내 앞에서 나머지 2개를 부러뜨리더니 설치 작업을 시작하였다.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할 광경이었다. 내가 20여 분간 망치를 휘두르며 겨우 빼낸 그 앙카가 이렇게 쉽게 부러지는 녀석이었나? 절개도 없는 놈 같으니라고... 다른 화장실로 가서 동생의 방법대로 한번 시도해 보았다. 내가 잡고 흔드는 놈은 동생이 올 때까지 강철처럼 굳세게 버티었고, 동생이 흔드니까 나무젓가락처럼 부러졌다.

문제는 나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나의 미약한 힘은 더 이상 노가다 업계에서 쓸모없음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쓸쓸하게 부러진 앙카들과 쓰레기들을 정리하면서 이렇게 한 게 없는데 오늘 일당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은 동생이 다 한 덕분에 빨리 끝났고, 나는 지연을 이용하여 알바비를 받을 수 있었다. 다음에는 동생이 불러주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다음엔 청소부용 일당이 책정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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