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름다운 목소리는 지금도 들려

by 도비

그날...

혼자 창동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맞은편에서 그 친구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실...

그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하는, 친구라 칭하기도 친구 아닌 호칭을 붙이기도 어색한 그는 성악을 공부하고 있었다.

모임 때 낮고 깊은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주위의 모르는 분들까지 뒤돌아 보며 박수를 아끼지 않을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매력이 있었다.

당시 나는 가곡의 밤에서 만난 테너 엄정행 씨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빠져 있었고, 그의 청량감 있는 깊고 풍부한 감성표현의 가곡을 좋아해서 밤낮없이 작은 녹음기를 들고 다닐 때였는데, 그 친구는 엄정행 씨의 목소리를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런 그와 창동 네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말간 대낮에 '술 한잔 하고 싶다.' 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했던 나는 뜬금없는 술 한잔의 말에 주위를 둘러보았고, 언젠가 친구들과 함께 갔었든 칵테일 바의 어두운 조명 아래 맥주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나는 할 말이 없었고, 그는 맥주만 마셨다.

그러다 머뭇머뭇 그는 누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녀를 보내고 오는 길이라는 충격적인 말과 품속에 넣어둔 수첩에서 알아보기 힘든, 가늘고 떨리는 선이 아슬하게 이어져 써 내려간 '사랑'이란 글씨를 보여주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거라며, 그녀의 펼치지 못한 여리고 아름다운 감성과, 반대한 결혼생활의 어렵고 힘든 시간은 남편의 의처증과 폭력으로 이어지고, 누구에게도 말 못 할 괴로움에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억울하고 아픈 삶과, 그 결혼을 끝까지 말리지 못한 자책, 그녀의 삶을 살피지 못한 후회...

그녀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표정 없는 목소리로 이야기했었다. (그가 성악가의 길을 결심했을 때 그녀는 새벽 4시면 그를 깨워 집 뒷산으로 올라가서 발성연습을 시켰다했다. 엄격하고 혹독한 훈련 끝에 세 번의 피를 토하고서 목청이 틔였다며 그녀의 감춰진 감성과 재능을 이야기하는데, 그에게 그녀는 형제 또는 스승을 뛰어넘는 특별한 존재처럼 느껴졌다.)


깃털보다 가벼운 스물을 갓 넘긴 어린 그때,

그의 담담함 뒤에 억눌러진 아픔을 느끼는 것보다 그가 토해 내는 말이 무서웠으며,

그 말의 무게가 무겁게만 느껴졌다.

그날 그와 어떻게 헤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가끔 그 친구가 생각날 때면, 왜 하필 나에게 그랬을까?

갑갑한 의문에 나도 모르게 깊이 숨을 들이쉬곤 했었다.


세월이 흐른 후...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그는 단지 가슴속의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말하지 못하는 억울함, 털어버리고 싶은 분노, 감당하기 어려운 그 큰 슬픔을 누구에게라도 털어놓고 싶었을 것이다


언젠가 스치듯 그 친구의 소식을 들은 적 있다.

가정에 충실하며 친구들과의 만남자리에 잘 참석하지 않는다는...

내 기억 속의 착하고 여린 그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나의 고통이 족쇄처럼 그를 묶어 스스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치고 과거의 그를 자책하며 그리움에 외로워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그것이 그의 행복이라면......

그것으로 족할 것이다.

살면서 그를 만날 기회가 있을까만,

그 창동 네거리에서 마주쳤듯이, 여기서 가고 저기서 오는 길에 우연히 만난다면 말없이 그의 손을 잡아주고 싶다.

그날 그 아픔에 함께 분노하고, 함께 안타까워하며, 함께 울어주지 못한 손 마주 잡으며

깃털같이 가벼웠던 어린 나이의 마음속 무거움도 지우개로 지우고

친구의 아픈 무거움도 지워서...

다시 시간 흐르고 바람이 불면 그 바람을 타고, 그의 낮고 깊은 목소리의 감동처럼 아름답게 살고 있다는 소식 들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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