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남자_1화

2020년 8월에 쓴 단편소설입니다

by 자자카 JaJaKa

다시 찾아온 주말, 오늘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줄까? 그리고 오늘도 카운터 자리에 앉아 책을 읽는 그 남자가 또 올까?

민주는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에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는 음악을 틀어놓고는 카페의 출입문 바깥을 쳐다보았다. 화창한 토요일의 날씨는 당장이라도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을 일게 할 만큼 좋았다. 그녀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늘 사전에 준비해 놓아야 할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몇 개의 자질구레한 일을 하고 나니 어느새 시간이 흘러갔는지 그녀의 손목에 찬 시계가 오후 1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점심 식사를 한 사람들이 커피 한잔을 하러 오기에는 아직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민주는 출입문을 향해 눈길을 보냈다. 이제 곧 한 남자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올 것이다.

그 남자가 민주의 카페에 오기 시작한 것은 6개월 전이었다. 어느 토요일 그가 처음 그녀의 카페에 온 것은 지금과 같은 점심 무렵이었다. 그는 가방을 메고서 카페의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카페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는지 쓰윽하고 살펴보던 시선을 민주에게로 향하고는 이렇게 물었었다.

“저 혹시 커피 마시면서 책을 좀 읽어도 되나요?”


민주는 그가 말한 “책?”이라는 단어에 ‘어떤 책? 소설책을 말하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혹시 죽치고 앉아 공부하겠다는 건 아니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보았다.

나이는 30대 초반이나 중반 정도로 보였고 무테안경을 쓰고 깔끔하게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이 ‘나쁘지 않네. 좋게 보면 훈남 정도?’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가 “저기요?”하는 말에 혼자만의 생각에서 깨어났다.

“네? 아, 제가 잠시 딴생각을...... 책을 읽어도 되냐고 물어보셨죠? 편하게 읽으셔도 돼요. 하루 종일 앉아 있지만 않는다면 말이죠. 호호호.”


민주의 말에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서 커피를 주문하며 말했다.

“그럼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주세요. 그리고 카페 분위기가 마음에 드네요.”

그 말에 민주의 표정이 밝아졌다. 카페를 꾸밀 때 그녀가 얼마나 고심하며 신경을 많이 썼는지 그것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고 또 칭찬을 해주다니, 기분이 좋은 얼굴로 민주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였거든요.”


그는 가게를 둘러보다가 카운터의 두 자리 중에 입구 쪽이 아닌 벽 쪽의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민주가 준비한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가방에서 꺼낸 책을 펼쳐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책을 읽기 시작했다. 민주가 언뜻 보기에 소설책을 읽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들어오건 나가건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 간간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그의 모습에 자꾸 시선이 갔다. 뭔가 지적인 남자 같아 보였고, 요새는 종이책을 읽는 사람들을 보기가 흔치 않은데 커피 한잔을 앞에 놓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그의 자태는 매력적으로 보일 만큼 민주의 시선을 강탈하고도 남았다.


그는 약 1시간 정도 책을 읽고 나서 눈이 피곤한지 고개를 들어서 천장을 잠시 바라보다가 책을 가방에 넣고 커피 잔을 반납하고는 나가는 길에 민주를 향해 말했다.

“커피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또 오세요.”

“내일 또 와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커피만 마시고 가는 것이 아니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책을 읽어도요?”

“네, 괜찮아요. 책을 더 읽고 가고 싶으면 그렇게 하셔도 돼요. 제가 카페를 한 이후에 저희 카페에 와서 조용히 책을 읽고 가는 손님은 처음인 거 같아요.”


그는 다음 날인 일요일에도 같은 시간대에 와서 2시간 가까이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갔다. 그렇게 시작이 되어 그는 매주 주말이면 어김없이 민주의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매주 주말 12시 30분 언저리에 카페를 찾아오는 그가 올 시간이 가까워지면 민주는 자신도 모르게 출입문을 쳐다보며 그를 기다리게 되었다. 오늘도 곧 나타날 그의 모습을 궁금해하며 주방에 서서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조용히 기다렸다.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는 그리 크지 않았다. 카운터에 앉을 수 있는 자리가 두 자리 정도 있고 카운터 너머로 마주 보며 앉을 수 있는 자리가 세 자리가 있었는데 그리 넓지가 않았다. 동네에 사는 사람들이 오며 가며 잠시 쉬면서 음악을 듣거나 커피를 마시며 한가로이 얘기를 나누거나 휴식처처럼 편안하게 들를 수 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이제 카페를 연지 3년이 되어 가는데 그리 많은 손님들이 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꾸준하게 방문해 주는 손님들도 생기고 어느덧 이 동네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물론 이것저것 내고 나면 민주의 손에 그다지 많은 돈이 떨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 아끼고 절약하면 생활하는데 큰 문제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녀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민주는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다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과감하게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동안 모은 돈과 부족한 돈 일부는 대출을 받아 지금의 이 가게를 차렸다. 그녀는 커피를 좋아했고 커피 향을 좋아했고 아담하고 분위기가 있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며 얘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그녀에게 이 카페는 어쩌면 그녀의 삶에서 로망이었을지도 모른다.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그녀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메아리처럼 울리는 그 소리에 결국 그녀가 화답을 한 것이다.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실수를 연발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일도 있었지만 그런 시절을 겪으면서 한발 한발 앞으로 나가다 보니 이제는 어느 정도 손님을 상대하는 일에도, 커피를 만드는 일에도 여유가 생겼고 지금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게 되었다.


출입문이 열리는 소리에 민주가 상념에서 깨어나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계산대 앞으로 향했다. 매주 주말이면 오는 그가 오늘도 어깨에 가방을 멘 채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오늘 편한 베이지색 면바지에 검은색 폴로셔츠를 입고 무테안경을 한 손가락으로 밀어 올리며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오늘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예. 오늘은 손님이 아직 없네요.”

민주가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빈 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앞에 있는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 점심을 드실 시간이니 점심식사를 하시고 나면 손님들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 잘 모르겠네요. 오실 때는 한꺼번에 오시기도 하고 또 안 오실 때는 아예 손님이 없기고 해서.”


평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그는 민주의 얘기에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오늘도 따뜻한 아메리카노로 준비해 드릴까요?”

“네, 그래주세요.”

언제나처럼 그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날씨가 덥건 상관없이 늘 따뜻한 커피를 마시는 그에게 왜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다른 종류의 커피는 마시지 않느냐고 한 번쯤 물어보고 싶었지만 혹시나 실례가 될까 봐 민주는 아직 물어보지 못했다.


그가 내민 신용카드로 3500원을 결제하고 나서 신용카드를 돌려주며 민주가 물었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니요, 그냥 버려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맛있게 만들어 드릴게요.”


민주가 웃으며 인사를 하자 그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주말이면 늘 앉는 카운터의 두 자리 중에 입구 쪽이 아닌 벽 쪽의 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민주가 커피를 준비하는 동안 그는 가게에 울려 퍼지는 잔잔한 피아노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커피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민주가 그에게 “여기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뜨거우니 조심히 드세요.”라고 말하며 머그컵을 건네자 그가 “고맙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머그컵을 그의 앞에 놓고는 늘 그렇듯이 가져온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커피가 든 머그컵 옆에 올려놓았다.


그가 책을 펼쳐서 조용히 책을 읽어 내려가다가 손을 뻗어 머그컵을 쥐고는 호호 불어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민주가 티가 안 나게 훔쳐보았다. 매주 주말 어김없이 점심때에 와서 커피를 시키고 조용히 책을 읽는 저 남자가 어느 순간부터 너무 궁금해졌는데 말을 붙이기가 어려워서, 말을 붙일 타이밍을 잡지 못해서, 괜히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 여유롭게 책을 읽는 시간을 즐기는 그의 시간을 존중해주고 싶어서 민주는 여러 가지로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말을 아꼈다. 나중에 때가 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리라, 하고 생각만 하다가 시간이 지나가버렸다.


직장인인 거 같은데 그는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평일에는 어떤 일을 하다가 주말이면 이 카페에 와서 커피를 시켜놓고 책을 읽는 것일까? 여자 친구는 있을까? 아마 저 정도 스타일이면 여자 친구가 있지 않을까? 주말 낮에는 자기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이 되면 데이트를 하겠지? 6개월 동안 주말 낮에 빠지지 않고 매주 오는 것을 보면 주말 낮에 특별한 일이 있거나 약속이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이 아니라 언제나 단정하게 옷을 입고 오는 그는 그의 옷차림새만큼 단정하고 깔끔했다. 민주는 누구와 같이 온 적이 한 번도 없고 언제나 혼자 와서 조용히 책을 읽다가 가는 그가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책 읽는 남자_2화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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