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는 남자_2화
2020년 8월에 쓴 단편 소설입니다
by 자자카 JaJaKa Feb 10. 2023
그가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사이 점심식사를 하고 커피 한잔이 생각이 나서 온 손님들이 연이어 커피를 주문했고 민주는 커피를 만드느라 잠시 바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사람들이 오건 말건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책을 읽었다.
민주는 그가 무슨 책을 읽나 궁금해서 책 제목을 보려고 노력했던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책을 읽던 그가 화장실이 어디냐며 묻길래 화장실 키를 주면서 이 건물 1층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가 책을 덮고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민주가 고개를 쭉 빼서 그가 읽고 있는 책 제목을 보았다.
‘요노스케 이야기’
제목으로 미루어봐서 일본작가가 쓴 책인가 라는 생각을 하고는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니 요시다 슈이치라는 일본 작가가 쓴 책으로 이미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기사를 읽었다. 사람들의 평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되어 있었다.
‘아, 그는 이런 책을 읽는구나.’하고 민주가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 후에 그가 읽는 책의 제목을 볼 기회가 생겼을 때 민주가 느꼈던 것은 그는 여러 다양한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거였다.
예를 들어 모리사와 아키오의 '나쓰미의 반딧불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프레드릭 베크만의 '오베라는 남자', 장영희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포리스트 카터의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등.
1시간 정도 지났을 때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카운터로 와서 민주에게 신용카드를 내밀면서 말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 더 주세요.”
아마 오늘은 커피가 부족했는지 아니면 커피가 더 당기는 날인지는 모르지만 그가 커피를 더 마시겠다고 말한 것은 처음이었다.
“오늘 커피가 더 드시고 싶으신 거 같은데 제가 그냥 서비스로 드릴 테니 신용카드는 넣어두세요.”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민주가 그런 그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희 가게 단골이신데 가끔 이런 서비스는 해드려야죠.”
그가 내밀었던 신용카드를 다시 집어넣으며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는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는 읽다 만 책을 펼치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저 여기 따뜻한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그가 민주가 내민 머그컵을 받아 들며 지금까지 카페에 와서 지은 표정 중에서 가장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봤자 살짝 미소를 지은 것뿐이긴 하지만.
민주는 그의 얼굴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공짜는 표정 없는 저 남자의 얼굴에도 미소를 짓게 하는구나.’
시간이 오후 2시를 넘었을 때 그가 읽던 책을 다 읽었는지 책을 가방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평상시처럼 잘 마셨다는 인사를 하고는 가게를 나갔다. 오늘이 토요일이니 아마 내일 점심때도 그가 올 것이다.
그가 나가고 난 후 얼마 있다가 민주의 친구인 경미가 가게에 놀러 왔다. 민주가 남자친구가 없는 싱글이라면 경미는 남자친구가 있는 싱글이었다. 올해 33살, 결혼할 듯 말 듯 줄다리기를 하는지 경미는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와 5년째 연애만 하고 있었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결혼하고 싶어 하는 경미는 내심 만나고 있는 남자가 먼저 결혼얘기를 꺼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남자 쪽에서는 여자의 마음도 모르고 결혼에 관해서 느긋한 분위기였다.
“민주야, 오늘은 가게가 한산하네.”
“어쩐 일이야? 오늘은 데이트 없어?”
경미가 입을 삐죽이 내밀며 말했다.
“친구 결혼식이 있댄다. 맨날 친구 결혼식에만 다닐 것이 아니라 본인 결혼식은 왜 생각을 안 하느냐고.”
민주는 경미의 삐죽 대는 그 얼굴표정이 언제 봐도 참 웃겼다.
“너는 같이 안 갔어?”
“어, 내가 잘 모르는 친구라서. 나중에 오후에 만나기로 했어. 그래서 그전에 잠시 들렀어. 너 얼굴이나 보려고.”
“시간이 남아서 시간 때우러 온 거 같은데.”
“아냐, 얘. 너 얼굴 보러 온 거야.”
민주가 시원한 아이스 라떼를 만들어서 경미에게 내밀었다. 경미가 꽂혀있던 빨대로 몇 번 젓더니 이윽고 한 모금 빨아먹고서는 “아, 시원하다. 역시 지금 시기에는 누가 뭐래도 아이스지”라고 말했다.
아이스 라떼를 마시던 경미가 문득 생각이 났는지 민주에게 물었다.
“근데 주말이면 가게에 와서 책 읽다가 가는 남자가 있다고 했잖아. 요즘에도 와?”
“응. 왔다가 방금 전에 갔어. 점심 무렵에 오거든.”
민주의 말에 뭘 생각하는지 경미의 눈썹 사이에 주름이 생겼다.
“아, 아쉽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얼굴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근데 커피 마시면서 책만 읽다가 간다고 했지?”
“어.”
“그 남자가 여기 온 지 얼마나 되었지?”
“6개월 정도 되었어.”
“음......”
“왜?”
뭔가 생각에 잠긴 듯 경미는 입술로 빨대를 물고 있다가 이내 빨대를 뱉어내고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그 남자가 여기에 왜 오는 거겠어. 내가 너보다 남자를 좀 알잖니. 내가 생각해 보건대 너한테 마음이 있어서가 아닐까? 내 촉이 그렇다고 하네.”
민주는 경미의 얘기에 그저 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야, 니가 나보다 남자를 안다고? 그래서 아직도 프러포즈나 기다리고 있냐?”
“야, 너 왜 또 아픈 데를 건드려. 으이 씨. 가슴이 아려오잖아.”
“그 남자는 가게에 오면 나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아. 그저 조용히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다가 가. 아마 평일동안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그 남자는 그렇게 푸는 것 같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자세히는 모르지만 여자 친구가 있는지도 모르는 거고.”
민주의 말에 경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 생각에는 여자 친구는 없는 거 같아. 여자 친구 있는 사람이 무슨 주말마다 같은 시간에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러 오겠어. 책 읽는 동안 스마트폰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며. 누구와 사귀고 있는 중이라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남자친구의 취미생활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남자친구만의 시간을 존중해 주는 여자 친구도 있지 않을까?”
민주의 말에 경미의 표정이 대뜸 거봐, 넌 연애를 몰라, 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여자 친구가 있다면 진짜로 커피숍에 가서 커피만 마시며 책을 읽는지 궁금해서라도 메시지를 보내거나 통화를 시도할걸. 아니면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들른 것처럼 커피숍에 직접 찾아올 거 같은데. 남자친구가 뭐 하고 있나 확인하려고 말이야. 그런데 그 남자는 아주 여유 있게 책을 읽다가 간다며. 그럼 여자 친구가 없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
경미의 확신에 찬 말에 민주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 그 남자한테 관심 있잖아. 그치?”
훅하고 들어오는 경미의 말에 민주가 두 손을 흔들었다.
“아냐, 관심은 무슨. 그냥 자주 오는 단골손님이니 눈길이 간다, 그 정도지.”
경미가 민주의 말에 코웃음을 터트렸다.
“야, 내가 너를 모르니? 괜히 아닌 척 해도 넌 티가 다 난다고. 생긴 것도 괜찮다며? 너도 더 늦기 전에 괜찮은 남자와 연애도 좀 하고 그래. 너 세월 금방 지나간다.”
“야, 됐어. 나는 지금 이 카페를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생각 하나만으로도 머릿속이 꽉 차서 다른 일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니깐 그러네.”
민주의 말에 경미는 여전히 코웃음을 쳤다. 내가 너를 모르니? 하는 표정으로.
경미가 빈 컵을 민주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잘 마셨어.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내 님을 만나러......”
“그래, 어서 가봐라.”
민주에게 윙크를 보내며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던 경미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민주를 향해 말했다.
“그냥 내가 지나가는 말로 한 마디만 할 테니 듣던지 말 던지는 니가 알아서 결정해. 내가 그냥 지켜보고 있자니 답답해서 하는 말이니깐. 내일이라도 그 남자가 오면 커피랑 같이 먹으라며 마카롱이나 마들렌 같은 거 있잖아, 그거 예쁘게 담아서 슬쩍 내밀어. 선물로 들어왔는데 맛보라고 말이지. 그렇게 아주 얇게나마 끈을 이어나가는 거야. 너무 과한 것을 주면 부담스러워할 테니 처음에는 작은 것으로 시작을 해서 발전시켜 나가. 아무래도 내가 보기에는 그 남자가 말수가 없는 것으로 보아 너에게 먼저 말을 할 것 같지 않으니 네 쪽에서 먼저 시작을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야, 장경미.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가던 길 그냥 가세요. 네?”
“알았어. 어휴, 고집하고는. 나 간다.”
경미는 손을 흔들고는 출입문을 열고 나갔다.
책 읽는 남자_3화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