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서 봄으로, 다시 가을로

by 자자카 JaJaKa

내가 뭘 하든 뭘 하지 않든지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계절이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된다.


가을이 깊어진 어느 주말 오후 우리 부부는 경의선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흐른 걸까. 내 눈에 나뭇잎마다 노랗게, 빨갛게 여러 가지의 색깔로 단풍이 든 풍경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어 그 풍경을 사진으로 담거나 그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여러 포즈를 취하는 모습 또한 볼 수 있었다. 우리도 핸드폰을 가지고 나왔다면 아마 한두 장의 사진을 찍지 않았을까.


단풍구경으로 유명하다는 곳은 가지 못했을지라도 공원에서 보는 소소한 단풍 구경은 절로 우리 부부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러나 설렘도 잠시 나무들은 긴 긴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나뭇잎을 떨구기 위한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양분을 비축하고 혹독한 겨울을 나기 위해 자연은 스스로가 소리 없이 준비를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만 보고 아름답다고 감탄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자연의 순환 법칙이 존재하고 있다.

언제 가을이 이렇게 깊어졌을까.

새삼스레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고 있자니, 그리고 떨어진 많은 낙엽들을 보고 있자니 가을의 한가운데로 성큼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어디선가 우수에 젖은 한 남자가 트렌치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채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인데, 실상은 여기저기서 마치 짠 듯이 똑같은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는 마실을 나온 동네 주민들의 모습이 대부분이다.


어찌 됐든 햇살이 살며시 비치는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나무들 사이로 걸어가고 있자니 마치 내가 한 폭의 그림 속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착각이 살짝 들긴 했다.


시간을 내서 낮에 산책 나오기를 잘했다는 얘기를 나누며 왠지 오늘 같은 날 커피 한잔이 생각이 나서 우리가 자주 가는 카페에 가니 우리와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이 많은지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산책하는 시간을 더 가진 뒤에 다시 찾은 카페는 다행히 우리를 위한 빈 좌석이 있었고 우리는 커피를 주문하고 누가 앉을 새라 비어있는 좌석에 얼른 앉았다.


나는 아메리카노, 아내는 카페라테를 앞에 두고 그윽한 향이 올라오는 커피를 조금씩 마셨다. 왠지 오늘따라 커피가 더 잘 어울리고 더 향기롭게 느껴지는 것은 단풍이 든 풍경을 보며 산책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카페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저마다 얘기꽃을 피우며 커피를 앞에 두고 대화에 열중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수많은 대화 소리가 그날따라 나에게는 얘기꽃처럼 느껴졌다. 마치 봄에 새싹이 돋아나고 이윽고 꽃이 피는 것처럼.


카페 밖은 가을일지라도 그 순간 카페 안은 나에게는 사방에 얘기꽃이 만발하게 피어있는 봄처럼 느껴졌다. 우리도 그 얘기꽃을 피우는데 동참을 했다.

카페 사장의 안주인이 주문하는 손님이 없는 틈을 내어 우리에게 말했다.

“두 분은 저에게 최애의 손님이에요. 최애는 최고로 애정 하는 뜻이랍니다.”

그 말을 듣고 우리는 어리둥절했다. 우리가 최애 손님이라고? 진짜?


“저희가 오래 앉아 있지 않고 커피를 일찍 마시고 가서 그런 가요?”


카페 안주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대답했다.


“아니요. 두 분이 커피타임을 즐기시고 커피를 마시며 조곤조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좋아 보여서요.”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우리가 그랬었나, 하고 잠시 생각을 했다. 내가 그분들이 커피를 타거나 커피를 건네주는 모습을 보듯이, 그분들도 바쁘지 않은 한가한 시간이면 카페 안의 손님들을 둘러보거나 손님들의 모습을 관찰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말을 처음 꺼내는 것이 어렵지 막상 말을 시작하니 우리 부부와 카페 안주인의 대화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동안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소탈하고 재미있고 유쾌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얘기꽃을 피웠던 것 같다.

봄이 와서 진짜 꽃이 핀 것은 아니지만 그날 카페 안은 얘기꽃으로 가득 피었고 나는 사람들의 풍성한 얘기꽃과 감미로운 음악에 둘러싸여 봄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느새 시간이 흘러서 그만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가게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순간 나는 다시 가을의 중심에 서 있었다. 코끝에 가을바람이 스치고 어디선가 굴러온 낙엽이 내 신발에 와닿는 가을의 한가운데로 나는 다시 돌아왔다.


마치 가을에서 봄으로, 다시 가을로 계절이 바뀐 것만 같은 착각을 느끼며 나는 아내의 손을 잡고 가을 속으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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